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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고종51

대초황제(大楚皇帝) 장방창(張邦昌) 작자: 미상 정강2년(1127년), 금나라군대가 개봉성을 점령하면서, 북송왕조가 멸망했다. 금나라군대는 장방창을 괴뢰황제로 세우고, 국호를 "대초(大楚)"라 한다. 금나라사람들은 왜 장방창을 괴뢰황제로 세웠을까? 장방창은 어떤 인물인가? 사서 기록에 따르면, 장방창(1083-1127)은 자가 자능(子能)이고, 북송말기 영정군(永靜軍) 동광(東光, 지금의 하북성에 속함) 사람이다. 진사출신이며 관직은 사성(司成)에 이르렀다. 훈도에서 실수를 저질러, 제거숭복궁(提擧崇福宮)으로 좌천되고, 광주(光州), 여주(汝州) 두 개주의 지주(知州)를 지낸다. 정화말년, 홍주지주(洪州知州)에서 예부시랑(禮部侍郞)이 된다. 선화원년(1119년), 상서우승(尙書右丞)이 되고 다시 좌승(左丞)이 된다. 그후에 중서시랑(中書侍.. 2023. 5. 11.
중국역사상의 태상황(太上皇) (3) 글: 장명양(張明揚) 당나라때 태상황으로서는 되돌아보기도 싫은 '완전은퇴'시대를 겪은 후, 태상황들의 운명은 송나라때부터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게 된다. 송, 명, 청 3왕조에 걸쳐 모두 6명의 태상황이 배출돈다. 당나라때 유행한 '핍궁(逼宮)'과 비교하면, 이들 태상황들은 자원하여 태상황으로 물러난 경우가 많았으며, 현무문사변이나 마외지변같은 궁중투쟁장면은 연출되지 않았다. 나라가 망하게 된 송휘종(宋徽宗)과 정신이상이 온 송광종(宋光宗)을 제외하면, 이 시기의 태상황들의 은퇴생활은 아주 여유있었다. 황제의 눈치를 보지 않았을 뿐아니라, 연금생활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권력도 대부분 황제보다 컸다. 정치생활에서 왕왕 전형적인 "퇴이불휴(退而不休)"였다. 명영종(明英宗) 주기진(朱祁鎭)의 태상황생활은 그다.. 2023. 5. 1.
남송(南宋)이 항주(杭州)를 도읍으로 정한 이유는....? 글: 심경독사(深更讀史) 정강지치(靖康之恥)이후 북송(北宋)이 멸망하고, 황족은 일망타진된다. 송휘종(宋徽宗)의 아홉째아들이자, 송흠종(宋欽宗)의 동생인 강왕(康王) 조구(趙構)만이 유일하게 그물에 걸리지 않은 물고기(漏網之魚)가 되었다. 그는 대신들의 옹립으로 하남(河南) 상구(商丘)에서 황제로 등극하니 그가 바로 송고종(宋高宗)이다. 그러나, 상구에서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금나라병사들이 쳐내려오기 때문에 황급히 양주(揚州)로 도망쳐야 했다. 다시 금나라군대가 양주로 쳐들어오자, 그는 다시 낭패하여 장강을 건너 진강(鎭江)을 거쳐, 항주(杭州)로 간다. 그러나, 항주도 안전하지 않았다. 1129년(건염3년) 구월, 금나라군대가 다시 장강을 건너 남으로 쳐내려온다. 송고종은 즉시 신료들을 데리고 남으로.. 2023. 2. 16.
대리국(大理國)은 얼마나 강대했을까? 글: 자귤(紫橘) 대리국을 얘기하자면,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바로 김용의 소설 일 것이다. 소설중 단예(段譽)는 대리국의 후계자이고, 대리국은 송(宋), 요(遼), 서하(西夏), 토번(吐蕃)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국가이다. 모용복(慕容復)은 한때 단연경(段延慶)을 부친으로 인정하면서 대리국의 병력을 빌어 송을 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역사상 대리국은 정말 그렇게 강대했을까? 1. 대리국의 건립 902년, 서남을 통일했던 남조국(南詔國)이 멸망하고, 남조국의 구귀족들은 속속 병력을 이끌고 자립한다. 강대한 군벌들이 연이어 장화국(長和國), 천흥국(天興國), 의녕국(義寧國)을 세운다. 의녕국시기에, 국왕 양간정(楊干貞)은 권력을 집중시키기 위해 반대파를 제거하고 이성귀족들의 권한을 약화시키기 시작한.. 2023. 2. 6.
악비(岳飛)의 죽음: 1142년의 만화경 글: 왕서지(王犀知) 그해 악비는 전선에서 철수해야 했다. 수십차례의 금패(金牌)에 의해 불려온다. 그는 몰랐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멸정지재(滅頂之災)일 줄은. 그는 병권을 박탈당하고, 임안부(臨安府)의 감옥에 갇히며,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다. 이 모든 절차를 거치는데 1년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진술서에는 단지 "천일소소, 천일소소(天日昭昭, 天日昭昭)"라는 여덟글자뿐이었다. 1 사서기록에 따르면, "천하가 그의 죽음을 원통해했으며, 그 소식을 듣는 사람은 모두 눈물을 흘렸다(天下寃之, 聞者流涕)" 일반적으로 악비의 이야기는 그의 죽음에서 끝난다. 오늘 필자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그 사건의 배후에 있는 몇몇 작은 인물들의 서로 다른 선택이다. 악비의 죽음은 하나의 만화경과 같다... 2022. 7. 24.
악비(岳飛)사건을 심리한 남송의 법관들... 글: 종의(鍾義), 청풍(淸風) 천고영웅 악비는 당시 권력이 조야를 뒤흔들던 남송의 간신 진회(秦檜)에 의해 모함받았다. 그는 재판을 담당하는 관리들이 악비가 모반했다는 거짓증거들을 잘 엮어서 판결을 내리게 해야 했다. 그러나 심리를 맡았던 관리들은 서로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주삼외(周三畏). 그는 하남 개봉 사람이고, 소흥11년(1141년), 송고종과 진회는 그에게 최고법원의 법관으로서 악비사건을 심리하도록 명받는다. 그는 심리과정에서 악비의 진술을 들은 후, 집으로 돌아가 관직을 버리고 떠난다. 비록 주삼외는 직접 진회와 싸우지는 않았지만, 그는 회피를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명리와 정의의 앞에서 이성적인 선택을 했던 것이다. 나중에 주삼외는 백로산(白露山)에 은거했고, 사후에 백로산 자락에 묻힌.. 2022. 7.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