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종의(鍾義), 청풍(淸風)
천고영웅 악비는 당시 권력이 조야를 뒤흔들던 남송의 간신 진회(秦檜)에 의해 모함받았다. 그는 재판을 담당하는 관리들이 악비가 모반했다는 거짓증거들을 잘 엮어서 판결을 내리게 해야 했다. 그러나 심리를 맡았던 관리들은 서로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주삼외(周三畏). 그는 하남 개봉 사람이고, 소흥11년(1141년), 송고종과 진회는 그에게 최고법원의 법관으로서 악비사건을 심리하도록 명받는다. 그는 심리과정에서 악비의 진술을 들은 후, 집으로 돌아가 관직을 버리고 떠난다. 비록 주삼외는 직접 진회와 싸우지는 않았지만, 그는 회피를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명리와 정의의 앞에서 이성적인 선택을 했던 것이다. 나중에 주삼외는 백로산(白露山)에 은거했고, 사후에 백로산 자락에 묻힌다. 후인들은 그를 기념하여 "충은암(忠隱庵)"을 건립한다.
하주(何鑄). 그는 더 대단한 인물이다.
원래 하주는 진회 진영의 인물이다. 그는 악비사건을 맡은 후, 악비에게 왜 모반했는지 심문한다. 이때 악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옷을 벗어 등을 보여준다. 등에는 네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정충보국(精忠報國)". 이는 하주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그는 자세하게 사건기록을 살펴보았고, 악비가 모반했다는 아무런 증거도 찾아내지 못한다. 그리하여 그는 진회에게 이치를 들어 다투게 된다.
<송사.하주전>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하주가 말하기를 강적(금나라)의 위협이 아직 없어지지 않았는데, 큰 공을 세운 장수를 아무런 잘못없이 죽여버린다면, 반드시 병사들의 마음을 잃게 될 것이니, 이는 사직의 장래를 위해 좋지 않은 일입니다."
진회는 결국 하주를 조정에서 쫓아내게 된다. 하주는 비록 진회의 편에 붙었던 인물이지만, 나라의 운명에 관련된 큰 결정을 함에 있어서는 자신의 양심을 따랐고, 진회의 진영에서 빠져나온다. 하주는 악비사건을 억울한 사건이라고 인정함으로써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하남 탕음편의 악왕묘(岳王廟)에는 "오대현신(五大賢臣)"의 한명으로 모셔지게 된다.
만사설(萬俟卨). 만사설은 진회의 "막수유(莫須有)"의 의도에 맞추어 그의 손으로 악비가 모반죄를 저질렀다는 판결문을 쓴다. 그렇게 하여 악비는 풍파정(風波亭)에서 죽음을 맡고, 천고에 걸쳐 손가락질을 받는 '천고기원(千古奇寃)'이 만들어진다.
'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 > 역사인물 (악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악비(岳飛)의 앞에서 우리는 모두 진회(秦檜)이다 (3) | 2024.10.28 |
---|---|
악비(岳飛)의 죽음: 1142년의 만화경 (0) | 2022.07.24 |
악비부인묘를 둘러싼 수백년 소송 (0) | 2020.09.25 |
악비 <만강홍(滿江紅)"의 진위 문제 (0) | 2018.11.29 |
악비의 앞에 몇명이 무릎꿇고 있는가? (0) | 2018.09.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