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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검영24

모택동은 왜 화국봉을 후계자로 선택했는가? 글: 축을(丑乙) 모택동의 첫번째 후계자는 유소기(劉少奇)였는데, 모택동에게 타도당하고, 옥중에서 죽었다. 두번째 후계자는 임표(林彪)였는데, 역시 모택동에게 타도당하여, 놀라서 도망치다가, 비행기가 추락해서 죽었다. 이것이 "임표반혁명사건"이다. 임표사건은 모택동에게 회복할 수 없는 상처.. 2009. 11. 14.
모택동의 정치유언 전혀 중요하지 않은 문제가 왕왕 역사의 발전이나 방향을 뒤바꿔놓는다. 젊은이들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강청의 시대에 이런 일이 발생했었다. "사인방"은 모주석이 "기존에 정한 방침대로 하라(按旣定方針辦)"고 하였다고 하고, 화국봉은 모주석이 "과거의 방침에 따라 하라(照過去方針辦)"고 하였.. 2007. 1. 8.
진석련(陳錫聯) : 모택동 말년의 4 총신(寵臣) 진석련 이 사람은 당내에서 계속 “쌍면호(雙面狐)”로 불리운다. 한 측면으로는 그가 전쟁시대때 보인 모습과 건국후기의 모습이고, 다른 측면으로는 이 때 이 사람에 대하여는 이렇고, 저 때 저 사람에 대하여는 저렇다는 점이다. 사람됨이 매우 매끄러웠고, 심지어 교활하다고까지 할 수 있을 정도.. 2006. 12. 18.
왕동흥(汪東興) : 모택동 말년의 4 총신(寵臣) 왕동흥은 모택동의 곁에서 30년간 경위(警衛)로 지낸 유일한 인물이다. 기등규(紀登奎)는 모택동의 옛친구의 신분으로 외부에 알려져 있다. 오덕(吳德)은 동필무가 죽은 후에 전국인민대표대회의 실질적인 주재자가 되었고, 주덕이 죽은 후에는 중공전국인민대표대회당조 서기가 되어 인대를 3년간 장.. 2006. 12. 18.
등소평에 대한 7번의 암살시도사건 국가주석 호금도는 2개의 비밀기록자료를 비밀해제하였다. 그 중의 하나는 '기밀'로 분류된 자료로서 1949년부터 1977년까지의 국민경제, 재정상황통계숫자와 그 감사후의 기록자료이다. 비밀해제후 성, 지급의 당정부문, 경제, 학술, 과학연구부서에 개방하였다. 다른 하나는 '절대기밀'로 분류된 자료.. 2006. 9. 19.
주은래(周恩來)의 육무(六無) 주은래(쩌우언라이)는 중국 인민의 가슴 속에 영원한 총리로 남아 있다. 그와 관련한 얘기나 그의 영향은 중국 곳곳에 남아 있지만, 그러나 그는 또한 다른 사람이 가진 여러 가지를 가지지 않고 있다. 첫째, 사불유회(死不留灰) 죽어서 유골을 남기지 않았다. 주은래가 사망한 시점은 역사의 격변기였.. 2005. 9.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