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륵16 진시황릉의 허실(10): 여산북록에는 진시황이 묻혀 있지 않다. 글: 진경원(陳景元) 숙후가 사망하고, 유명한 조무령왕이 즉위한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상산에 자신의 능묘를 '예수'하기 시작한다. <사기.조세가>의 기록에 따르면, 조무령왕은 "3년(기원전323년)부터 능묘를 만들기 시작했다." <사기.집해>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능묘의 위치.. 2018. 2. 7. 진시황릉의 허실(9): 진시황은 현지에 매장하는 것이 현명한 조치이다. 글: 진경원(陳景元) 진시황이 만일 함양에서 죽었다면, 역대제왕이 경성에서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조정에서 항상 마련해둔 냉장된 보관장소가 있고, 궁내에는 장례활동을 치르는데 필요한 각종 도구가 충분히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비불발상'을 할 때, 궁문을 걸어잠그고, .. 2018. 2. 7. 염민(冉閔): 민족영웅인가, 살인마왕인가? 글: 초상풍어(草上風語) 서진(西晋) 말기의 중국북방지구는 한 마디로 말해서: 난(亂)이었다. 먼저 내란(內亂)이다. 사마(司馬)씨의 자식들은 한대 한대 내려가면서 더 못해졌지만, 권력욕은 한대 한대 내려가면서 더욱 커졌다. 16년에 걸친 "팔왕의 난"은 결국 진왕조의 정기신(精氣神)을 .. 2016. 7. 9. 후조명제(後趙明帝) 석륵(石勒)과 고승(高僧) 불도징(佛道澄) 글: 유효(劉曉) 석륵은 오호십육국시대 후조의 개국군주이고, 시호는 후조명제이다. 석륵의 통치하에, 후조는 당시 북방에서 가장 강성한 국가가 되었다. 석륵이 이런 공적을 세울 수 있었던 데에는 고승 불도징과 관련이 있다. <고승전>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불도징은 서진(西晋), .. 2015. 11. 24. [황자쟁위술] 양차동풍술(亮借東風術) 양자입승패(養子入承牌) 재첨편외 <삼국연의>의 적벽대전때 ‘만사구비, 지흠동풍(萬事俱備, 只欠東風)’의 상황에서 제갈량이 차동풍(借東風)한 이야기는 아주 유명하다. 특히 무슨 일을 이루기 위하여 다른 조건은 갖추어져 있는데 중요한 한 가지가 빠진 경우가 있다. 그럴 때, 그 빠진 것을 채워주는 것이 왕왕 우.. 2015. 10. 11. 진무제(晋武帝) 사마염(司馬炎)의 세가지 정치적 실수 글: 황작비비(黃雀飛飛) 265년 8월, 사마소(司馬昭)가 병사한다. 아들 사마염이 부친의 자리를 이어 상국(相國), 진왕(晋王)에 오른다. 이 해에 그의 나이 겨우 19살이었다. 십이월, 사마염은 위나라의 황제 조환(曹奐)이 물러나서 선양하도록 강제하고, 스스로 등극하여 진(晋)왕조를 개창한.. 2013. 9. 14.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