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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위19

육법화(陸法和): 중국고대에 마술(魔術)로 전쟁을 이긴 사례... 글: 아시삼갑제사명(我是三甲第四名) 육법화(陸法和)는 생졸년이 불상이다. 남조(南朝) 양무제(梁武帝) 소연(蕭衍)의 통치후기에 역사서에 등장한다. 성씨를 보고 어떤 사람은 육법화가 남조의 저명한 명문세가인 오군 육씨(吳郡 陸氏)출신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기실 그렇지 않다. 그의 .. 2017. 7. 6.
서소패(徐昭佩): 서낭반로(徐娘半老) 풍운유존(風韻猶存) 글: 조염(趙炎) 553년의 가을날, 후량(後梁)의 수도인 강릉(江陵, 지금의 호북성 형주)의 대로에는 도처에 쇠잔한 낙엽이 쌓여 있었다. 몇몇 내시 복장을 한 사람들이 마차를 하나 끌고 나타났다. 마차위에는 물기에 젖어 있는 여자의 시체가 누워 있었다. 그들은 시중(侍中)인 서곤(徐緄.. 2014. 1. 14.
서문장(徐文長): 세번이나 자살미수한 명나라의 화가 글: 이주즙(李舟楫) 1665년, 45세의 서문장은 <자위묘지명(自爲墓誌銘)>을 썼고, 3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자살의 방법도 모두 상당히 잔인했다. 먼저 도끼로 자신의 얼굴을 내려찍어 얼굴에 온통 피가 흘렀고, "두개골이 모두 부서지고, 만지면 소리가 났다" 이어서 회.. 2013. 11. 23.
북제(北齊): 금수왕조 글: 악망(樂奀) 1. 역사상의 북제정권 남북조(420-589)는 중국역사상의 분열시기이다. 유유(劉裕)가 동진(東晋)을 멸하고 황위를 찬탈하여 남조 송(宋)을 건립할 때로부터, 소나라가 남조 진(陳)을 멸할 때까지, 남조는 송, 제, 양, 진의 4왕조를 지난다. 모두 한족이 건립한 정권이다. 북조(.. 2013. 9. 14.
중국인들은 왜 글에 자신의 서명을 남기지 않았을까? 글: 주운(周雲) 자신이 글을 쓰면서, 다른 사람의 이름을 쓴다? 이런 일은 계속 있어왔다. 그리고 고대에는 현대보다 더욱 자주 나타났다. 아주 보편적인 현상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장지동(張之洞)은 그래서 이런 말도 했다: "진위를 한번 나누기 시작하면, 고서의 절반은 버려야 한다.".. 2012. 5. 2.
우문태(宇文泰)와 소작(蘇綽)의 대화: 탐관오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우문태(507-556): 자는 흑랄(黑獭), 대군 무천사람(지금의 내몽골 무천 서쪽). 선비족. 서위(西魏)왕조의 건립자 겸 실제통치자. 북주(北周)개국의 기반을 닦은 인물. 서위가 북주에 선양한 후, 문왕에 추존되고 태조가 됨. 무성원년(559년), 문황제에 추존됨. 걸출한 군사가, 군사개혁가. 그는 조조를 모방하.. 2011. 7. 5.
서위사맹수(西魏四猛獸): 후삼국시대의 절세용장 작자: 미상 난세는 영웅을 낳는다. 이 말은 전혀 틀리지 않는다. 위진남북조시대는 바로 대난세였다. 당연히 영웅이 배출되었다. 사람들은 위오촉(魏吳蜀)의 삼국정립(전삼국)은 잘 알지만, 주제진(周齊陳)의 삼분천하(후삼국)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여기서는 간략히 후삼국의 역사를 기술해보기.. 2008. 6. 24.
남북조시대 고환(高歡)과 우문태(宇文泰)의 대결 남북조때의 전쟁은 동위(東魏)와 서위(西魏)의 전쟁이 가장 재미있다. 쌍방은 서로 공격하였으며, 많은 전투는 이후의 전범이 될만하다. 당시 고환은 동위의 대권을 장악하고 있었고, 우문태는 서위의 대권을 장악하고 있었는데, 두 사람 모두 천하통일의 야망을 품고 있었다. 그리하여 두 호랑이는 반.. 2007. 12. 7.
금병매(金甁梅)의 진정한 저자는 누구인가? <<금병매>>는 명대사대기서(明代四大奇書)의 하나이고, 청나라때 소설점평가(小說點評家)인 장죽파(張竹坡)에 의하여 "제일기서(第一奇書)"로 칭송되는 작품이다. <<금병매>>는 <<수호전>>에서의 "무송살수(武松殺嫂)"의 장면에서 서문경(西門慶)을 주인공으로 하는 시정의 생.. 2006. 1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