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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남북조)

북제(北齊): 황실 여인들의 잔혹한 운명

by 중은우시 2017. 12. 27.

글: 김릉물(金陵物)





북제는 겨우 28년간 존속했던 단명왕조이다. 그러나 이 짧은 28년동안에 6명의 황제가 등극한다. 이 6명의 황제는 모두 잔혹하고 황음무도하며 변태적인 것으로 세상에 유명하다. 문선제(文宣帝) 고양(高洋)은 형인 고징(高澄)의 정실부인 원씨(元氏)를 간음했고, 무성제(武成帝) 고담(高湛)은 형인 고양의 정실부인 이씨(李氏)를 간음한다. 인덕이 있기로 유명한 고연(高演)은 조카를 죽이고 황위를 빼앗았으며, 고위(高緯)의 황음한 정도는 가히 걸주(桀紂)에 비견할 만하다.  만일 칭제(稱帝)하지 않은 고환(高歡)이 효장제(孝莊帝), 효명제(孝明帝), 광평왕(廣平王), 임성왕(任城王), 성양왕(城陽王)등의 황후 왕비를 강제로 간음한 것을 빼고 본다고 하더라도, 고징이 고중밀(高仲密)의 처를 차지하고, 부친의 비들과 사통하고, 부치의 비인 유연공주(柔然公主)를 취하였다. 한인왕조와 비교한다면, 북제는 강상이 무너졌고, 황음무도하니 금수왕조라고 할 만할 정도이다. 그렇다면 북제시대에 살았던 황실의 여인들은 어떠했을까?


1. 누소군(婁昭君): 황태후까지도 어찌할 수 없었다.


 고환은 조조와 비슷하다. 비록 황제를 칭하지는 않았지만, 위대한 업적은 나중에 아들 고양이 황위를 찬탈하는 기반이 되었다. 그리고 누소군은 고환의 결발처(結髮妻)로서 고환의 필생사업에 크나큰 공헌을 한다.


고환이 일개 회삭진의 사병일 때부터 누소군은 영웅을 알아보는 혜안이 있었다. 한눈에 고환을 알아본다. 누소군은 명문출신으로, 우연한 기회에 고환을 보고는 바로 이렇게 내뱉는다: "이 사람이야말로 나의 남편감이다!" 그후 누소군은 고환에게 시집간다. 그에게 마필을 주어 고환이 일개 사병에서 대장이 되도록 해주고, 북위의 육진기의(六鎭起義)떄 두각을 나타내어, 천하의 호걸들과 사귀게 하여 최종적으로 이주씨(爾朱氏)를 격패시키고 동위(東魏)의 권신이 된다. 이 모든 것은 누소군의 내조와 지지 덕분이다. 누소군의 신분과 지위는 북제에서 지고무상이다. 고환마저도 그녀를 공경하고 어느 정도 양보하였다. 그러나 고환의 처로서 누소군도 부득이 어려운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545년, 고환은 유연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 서위(西魏)에 대항하기 위하여, 부득이 유연칸 아나괴(阿那瑰)의 딸인 유연공주를 부인으로 맞이한다. 유연공주는 성격이 강했고, 평생 한어를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고환은 유연과의 우호를 유지하기 위하여 다 받아주고 유연공주를 다독인다. 자연히 누소군은 찬밥신세가 된다. 누소군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저 대범한 모습을 보이며 고환에게 이렇게 말한다: "유연공주가 불쾌해할 수 있으니 나를 보러 오지 말라."


누소군은 고환과의 사이에 6남2녀를 낳는다. 고환이 죽은 후, 자신의 황태후로서의 권력을 지키기 쥐하여 누소군은 고연의 정변을 지원하고, 고담이 황제를 칭하는 것을 지지한다. 그리하여 북제의 권력이 자신의 아들들 수중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려 했다. 자신이 태황태후로 물러나서 다른 외척이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막으려 한 것이다. 그러나 누소군은 아마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자신이 낳은 아들들이 하나같이 못난이들이었다. 미친 고양같은 경우는 누소군을 선비노비에게 시집보내겠다는 말까지 하였고, 고연은 누소군의 뜻을 거슬려 고은(高殷)을 죽여버린다. 누소군이 죽기 전에 이런 노래가 나온다: "구룡모사부작효(九龍母死不作孝)" 과연 누소군이 죽은 후 아홉째아들인 무성제 고담은 전혀 비통해하지 않고 그저 자시 하고싶은 일만 한다.


누소군의 전반생은 이리저리 떠돌아다녔고, 후반생은 북제의 권력을 장악했다. 그녀는 여치(呂稚, 유방의 처인 여후)와 닮은 인물이다. 그러나 정략결혼을 한 남편과 몇몇 미치광이같은 아들들을 그녀로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엄히 가르치고 단속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드러나게 혹은 드러나지 않게 아들들의 각종 정변을 도와주어야 했다. 그렇게 하여 북제는 점점 쇠약해져 갔다.


2. 최화작류(摧花斫柳): 가련한 미녀들


누소군과 같은 국모도 어찌할 수가 없었으니, 고씨집안의 다른 왕비 황후들이야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원중화(元仲華): 원중화는 동위의 괴뢰황제 원선견(元善見)의 여동생이다. 원씨집안은 비록 황실이지만, 고씨집안과는 전혀 상대가 되지 못했다. 원중화는 예쁘게 생겼고, 성격이 온화했지만, 지위가 없었다. 아주 어렸을 때 고징(高澄)에게 시집을 간다. 만일 고징의 총신인 최섬(崔暹)의 보호가 없었더라면, 원중화는 일찌기 폐위되었을 것이다. 고징은 항상 둘째동생 고양을 못마땅히 여겼다. 고징이 죽은 후, 고양은 복수를 위하여, 술에 취해서 원중화의 재산을 약탈하고, 그녀를 욕보인다.


이조아(李祖娥): 북제의 모든 여자들 중에서 가장 비참했던 여인은 아마도 이조아일 것이다. 이조아는 고양의 처이다. 고징이 빼앗아 차지한 고중밀의 처인 이창의(李昌儀)는 바로 그녀의 고모이다. 고징이 죽기 전에, 고양은 말잘듣고 착한 것처럼 위장했다. 고징의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심지어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멍청하게 있으면서 말한마디 하지 않은 적도 있다. 그리고 하루종일 콧물이 흐르는데도 닦지 않은 적도 있다. 그래서 고징은 항상 이 동생을 무시했으며, 동생이 이처럼 예쁜 부인을 맞이한데 대하여 질투했다. 그 가장 직접적인 결과는 고징이 수시로 이조아를 데리고 놀고, 고양이 그녀에게 준 선물들을 빼앗았다.


550년, 고양이 황위를 빼앗아 등극한다. 이조아는 황후가 된다. 고양은 술을 좋아하여, 한번은 술에 취해서 주정을 부린다. 이조아의 친정으로 쳐들어가서 장모 최씨(崔氏)에게 활을 쏘아 상처를 입히고, 그녀에게 채찍을 수백대 때린다. 이조아의 언니이자 안락왕(安樂王) 원앙(元昻)의 처인 이조의(李祖猗)를 손에 넣기 위하여 고양은 원양에게 활을 쏘아 고슴도치로 만든다. 나중에 누소군이 간여하여 이조의를 궁으로 데려오는 것은 막는다.


고양이 재위할 때도, 이조아는 가족들을 지켜내지 못했으니 고양이 죽자마자 이조아는 더욱 비참해진다. 고양이 죽은 후, 이조아는 자신과 아들 고은(高殷)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하여, 양음(楊愔), 정이(鄭頤)등과 연합하여 정변을 일으켜, 고연, 고담 두 왕을 업성에서 쫓아내고, 누소군을 허수아비로 만들고자 한다. 그러나 밀모가 사전에 누설되어 양음등이 피살되고, 고은은 폐위된다(나중에 고연에게 죽임을 당한다). 고연이 황제를 칭하니 이조아는 남은 유일한 아들인 고소덕(高紹德)과 서로 의지하며 지낸다.


561년, 고담이 즉위하자 이조아의 미색에 침을 흘린다. 그리하여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아들을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여 이조아를 손에 넣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조아가 임신을 해서 배가 점점 불러온다. 아들 고소덕이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할 수 없이 아들과 만나지를 않는다. 고소덕은 비분강개하여 문밖에서 크게 욕을 하고, 이조아는 수치에 어쩔 줄을 모른다. 딸을 하나 낳은 후에 이조아는 자신의 손으로 딸을 죽여버린다. 고담이 대노하여, "내 딸을 죽여버리다니, 내가 네 아들을 죽여버려야겠다!" 그리고는 이조아가 보는 앞에서 고소덕을 때려죽인다. 이조아는 비통하여 통곡을 한다. 고담은 그녀를 발가벗겨서 채찍으로 마구 때린 후에 그녀를 하수구에 버린다. 이조아는 목숨이 질겨서 깨어난 후에 출가하여 비구니가 된다.


북제의 깊은 궁궐에서 이조아는 마치 늪에 빠진 어린 양처럼 그저 절망만이 가득했다.


3. 음란의 극치


호태후(胡太后), 목황화(穆黃花): 역사상 음란한 여자를 얘기할 때, 호태후를 2위에 놓는다면 1위에 놓을 여자가 없다. 호태후는 고담의 처이고, 음란한 것으로 유명했다. 북제가 아직 멸망하기 전에 대신인 화사개(和士介), 화상(和尙)인 담헌(曇獻)등과 사통한다. 북제가 멸망한 후에는 호태후가 사람들이 입을 딱 벌릴만한 일을 저지른다. 장안성에서 기녀가 된 것이다.


당당한 황후, 태후가 길거리의 기녀가 되다니, 이는 그녀가 망국의 여인이라는 것도 관계되지만, 더더욱 그녀의 음란한 본성과 관련이 있다. 더욱 믿기 어려운 점이라면, 그녀와 함께 기녀가 된 여인중에는 고위(高偉)의 황후 목황화도 있다는 것이다. 호태후와 목황화는 일찌기 모두 한 나라의 국모였고, 신분이 지극히 높았다. 그러나 스스로 타락하여 기녀가 되다니 실로 탄식을 금하기 어렵다.


피비린내나고 황음한 북제왕조에서 여인들은 더욱 비참했다. 고양 한 사람만 하더라도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고 참혹하기 그지없는 여인살해기록이 있다. 강간을 시도하다가 실패한 후 죽여버린 이주영아(爾朱英娥), 부친을 위하여 관직을 부탁했다가 성공하지 못하고 죽임을 당한 설씨(薛氏),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 바로 죽임을 당한 최섬의 처인 이씨(李氏), 아들인지 딸인지 보고싶다고 배를 갈라 죽여버린 임산부, 그리고 그에게 강간당한 많은 고관의 딸들. 고양의 죄상은 끝이 없다.


북제는 신기한 왕조이다. 고환부터 고징까지, 고양부터 고위까지 고씨들은 모두 정신상태가 불안정했거나 혹은 거의 변태적은 극도의 향락주의자들이었다. 그러니 이 제국의 여인들이 편하게 생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