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진령일백(秦嶺一白)
진패선의 일생은 그의 이름과 마찬가지로 패기가 넘쳤다. 가난한 집안 출신의 그는 귀인의 도움과 스스로의 노력으로 마침내 남조의 권력최고봉까지 오르게 된다. 그러나 천도는 다시 윤회하는 법. 보복이 빠지지 않았다.
남량(南梁)의 무제(武帝) 소연(蕭衍)의 전반생은 사람을 죽이고도 눈하나 깜작하지 않는 살인마왕이었으나, 황위를 찬탈한 후에는 완전히 사람이 바뀐다. 그는 정말 칼을 내려놓으면 바로 성불할 수 있다는 말에 부합했다. 그는 달마를 불러서 가르침을 받았다. 이 양무제 소연이 목탁을 두드리고 있을 때, 종결자 진패선이 세상에 태어난다.
어렸을 때의 진패선은 무슨 잠재능력이 드러나지 않았다. 아마도 너무나 가난해서 그랬을 것이다. 그는 먹고살기 위하여 나무를 하고, 물고기를 잡으며, 양을 쳤다. 무슨 험한 일이든 마다하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도 어떤 여자도 그와 어울리려 하지 않아, 오히려 그는 글을 읽는데 많은 힘을 쏟는다. 그리고 남은 힘은 모조리 검술을 익히는데 쓴다.
진패선은 비록 가난했지만, 성격은 호탕했다. 그래서 그는 자주 홀아비나 과부를 위하여 나무를 해다주고, 물을 길어다 주었다. 당시 젊은이들은 대부분 도시로 나가서 병사가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평이 좋았던 진패선은 남은 촌민들의 추천을 받아 이사(里司, 촌의 하급관리)가 된다.
나중에 양무제의 조카인 소영(蕭映)이 마을에 왔을 때, 진패선은 시골에서 채취한 토종꿀로 접대한다. 소영은 진패선과 얘기를 나눠본 후에 찬탄한다: "이 사람은 앞으로 크게 될 것이다!" 소영은 남경으로 돌아가면서 진패선을 데려간다. 그리고 진패선은 창고를 관리하는 직위를 맡는다.
사람이 가난하더라도 약간의 재주는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귀인의 도움이 없으면 그저 가난뱅이의 재주에 머물 뿐이다. 소영은 진패선에게 첫번째 귀인이었따. 그는 구석진 시골에 있던 그를 도성으로 데려온다. 처음으로 도성에 온 진패선은 격동한다: "감사합니다. 뭐든지 시키는대로 하겠습니다."
소영은 광주자사로 나간다. 37살의 진패선도 그를 따라 참군(參軍)이 된다. 그는 이제 천천히 시골의 티를 벗기 시작했고, 관료사회의 방식에 익숙해졌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는 그저 차를 마시고, 보고서를 읽으며,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승진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 월남의 이분(李賁)이 반란을 일으키고, 양무제는 노자웅(盧子雄)을 보내어 반란을 평정토록 했으나, 패배한다.
승패는 병가지상사이다. 그러나, 양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남조의 사백팔십개 절을 보수하였을 뿐아니라, 자주 출가소동을 피웠다. 그리하여 대신들은 국고를 모조리 털어서 그를 다시 속세에 불러냈다. 그는 부처에게 이렇게 많은 보호비를 지급했으니, 당연히 나라가 보호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졌다는 것은 장수가 적과 내통해서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노자웅을 죽인다.
가련한 노자웅은 반군에게 목숨을 거의 잃을 뻔하다가 겨우 살아서 돌아왔는데, 돌아와서는 황제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다. 부하장수들은 불만이 컸고, 이에 진짜로 반란을 일으킨다. 그리하여 광주성을 포위한다. 소영은 급히 진패선에게 연락한다: 위급하니 빨리 와서 도와달라.
소영의 위기는 진패선의 기회였다. 그는 삼천의 정예병을 이끌고 밤낮을 달려 광주로 가서는 포위하고 있던 반군을 물리치고, 반군 부장(副將)을 생포한다. 이 전투로 양무제는 진패선을 다시 보게 된다. 여기서 진패선은 두번째 귀인을 만나게 된 것이다.
소영이 병사한 후, 진패선은 비통했다. 만일 그가 없었더라면 자신은 아직도 시골에서 썩고 있을테니. 사람이 살아있으면 아직도 할 일이 남아 있는 법이다. 양무제는 그로 하여금 이분을 치도록 명한다. 진패선은 3년간 혈전을 벌이면서, 이분의 반란을 평정하고, 북월남을 수복한다. 이로 인하여 그는 양무제의 하늘에 뜬 가장 빛나는 별이 된다.
출가하지 못한 황제는 좋은 스님이 아니다. 후경(侯景)은 채식하며 염불이나 하는 양무제는 별 게 아니라고 생각하여, 반란을 일으킨다. 그 결과 양무제는 86세의 고령으로 대성에 구금되어 결국 굶어죽는다. 그가 부처를 만나러 갔는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다.
이때의 진패선은 소영과 소연 두 귀인의 도움으로 일찌감치 가정을 이루고 고위직에 올라 있었다. 그는 양무제의 일곱째아들을 새 황제로 옹립한다. 그리고 인생에서의 두명의 적수를 만난다.
진패선은 먼저 후경을 처리하려 했다. 죽은 스님황제를 위한 복수인 것이다. 그가 왕승변(王僧辯)의 군대와 힘을 합칠 때, 왕승변의 부대는 군량이 제대로 보급되지 않아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왕승변은 진패선이 자신의 부대를 집어삼킬까 걱정하고 있는데, 진패선은 먼저 그에게 30만명분량의 군량미를 보내준다. 왕승변의 군대는 배불리 먹은 후, 진패선의 군대와 합쳐서 후경을 물리친다. 이렇게 진패선은 첫번째 적수를 제거한 것이다.
2년후, 서위(西魏)가 남량을 공격하여, 양원제(梁元帝)를 죽인다. 황제는 죽었지만 걱정할 게 없었다. 소씨집안에는 아들이 많이 남았다. 새로운 황제를 누구로 추대할 것인지를 놓고 진패선은 왕승변과 의견차이가 있었다. 영원한 벗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다. 그저 이익과 권리만 있을 뿐이다. 진패선은 왕승변도 죽여버린다. 이렇게 두번째 적수도 제거한다.
신황제는 그저 허수아비일 뿐이다. 진패선은 조정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는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이 윗사람은 천추만대를 그대로 내려가기 바라지만, 아랫사람은 항상 밀고 올라오고싶어하는 법이다. 진패선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항상 신경써야 했다.
왕승변의 옛 부하가 반란을 일으킨다. 진패선은 패기있게 쳐서 반란을 진압한다. 이웃한 북제(北齊)는 진패선이 반란을 평정하러 나간 틈을 타서, 도성을 공격한다. 진패선은 몇 개의 성을 함락시킨 후 일거에 북제의 천척에 가까운 배를 불태워버린다.
소발이 광주에서 반란을 일으킨다. 그러나 1개월만에 소발은 부하에게 피살된다. 소발의 반란을 평정한 왕림이 다시 반란을 일으키나, 진패선에 의하여 10만대군이 얼마 남지 않게 되자, 왕림은 장사로 돌아간다.
진패선이 바쁘게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소방지(蕭方智)는 불안했다. 그들 둘은 누가 누구를 위하여 일하는지 모를 정도였다 .국면이 안정되자, 진패선은 소방지를 찾아가서 얘기한다:
소방지: 왔습니까?
진패선: 왔습니다.
소방지: 갈까요?
진패선: 가시지요.
557년 소방지는 진패선에게 황위를 선양하고, 진패선은 남진(南陳)을 개창한다. 사서에서는 이 진무제(陳武帝)를 무척이나 칭찬한다: 가난한 집안의 아이가 기회를 잡고 열심히 노력하여 마침내 자신의 왕조도 개창하며, 재위기간동안 정무에 힘을 써서 백성들이 살기 좋게 하는 공적을 세웠다고.
여기서 또 하나의 사건을 볼 필요가 있다. 소방지는 선양한 후에 강음왕에 봉해지는데, 다음해에 진패선에 의하여 피살된다. 이때 나이가 15살이다.
559년, 진패선이 병사하니 향년 56세이다. 30년후,남진은 수나라의 양광에게 멸망한다. 왕승변의 아들이 부친의 옛 부하들을 끌어모아서, 진패선의 무덤을 파헤ㅈ친다. 그리고 관을 열어서 유골을 꺼내 불태워 버린 후에 유골은 연못에 뿌려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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