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아시삼갑제사명(我是三甲第四名)
육법화(陸法和)는 생졸년이 불상이다. 남조(南朝) 양무제(梁武帝) 소연(蕭衍)의 통치후기에 역사서에 등장한다. 성씨를 보고 어떤 사람은 육법화가 남조의 저명한 명문세가인 오군 육씨(吳郡 陸氏)출신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기실 그렇지 않다. 그의 내력은 수수께끼랄 것도 없다. 육법화라는 이름도 스스로 칭한 것이다. 이 사람은 외계인처럼 양나라 형주(荊州) 문양군(汶陽郡) 고안현(高安縣) 자석산(紫石山)(지금의 호북성 원안(遠安))에 나타났다. 의식주행이 고행승과 같았고, 머리를 기르고 수행하는 거사의 신분으로 현지의 오랑캐족들에게 불법을 전수했다. 그는 의술에도 정통해서, 누군가 병에 걸리면 약을 캐서 무료로 치료해 주었다. 세번만 먹으면 완전히 낫곤 했다. 오랑캐족들이 그의 약을 많이 먹었으며 속속 그를 스승으로 모셨다.
양무제 중대통(中大通) 초년, 자석산에 거주한지 오래된 육법화는 아무런 이유없이 떠나서 거처를 강릉(江陵, 지금의 호북 지강(枝江))부근의 장강의 가운데 있는 섬 백리주(百里洲)로 옮긴다. 중대통4년(532년) 문양의 오랑캐족 추장인 문도명(文道明)이 북위 형주자사 하발승(賀拔勝)의 선동으로 반란을 일으키는데 기세가 대단했다. 양나라의 형주자사인 상동왕(湘東王) 소역(蕭繹)은 왕승변(王僧辯), 순우량(淳于量, 수나라의 개국공신)이라는 두명의 장군을 파견하여, 1년여를 토벌한 끝에 비로소 평정한다. 문양의 산지역은 병마의 피해를 입어, 평민들중에서도 사상자가 많았다. 육법화와 현지 오랑캐족의 양호한 관계로 보면, 그는 분명 오랑캐족이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을 것이 틀림없다. 이것이 바로 육법화가 처음 마술을 보여준 것이다. 형주의 한족들은 이때부터 그가 미래를 예측한다고 여기기 시작한다.
양나라의 간문제(簡文帝) 소강(蕭綱)의 대보(大寶) 2년(551년) 강동의 번화한 지역을 석권한 후경(侯景)의 군대가 양나라 종실중에서 실력이 가장 강한 형주자사 소역을 공격한다. 그리고 주력으로 파릉(巴陵)을 포위한다. 그후에 후경은 대장 임약(任約)으로 하여금 정예병사 5000명을 이끌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 병력이 약한 형주의 수도 강릉을 치도록 했다. 소역은 이전에 내부투쟁시 조카인 상주자사(湘州刺史) 소예(蕭譽)를 죽였다. 소예의 동생인 옹주자사(雍州刺史) 소찰(蕭詧)은 숙부인 수역과 물과 불의 관계였다. 그리하여 원수지간인 서위와 힘을 합쳐서 형주와 싸운다. 소역은 앞뒤로 적을 맞이하게 되니, 병력이 부족했고, 상황은 아주 긴박했다.
후경이라는 과실이 잘 익기를 4년이나 기다려온 육법화는 마침내 이 중요한 순간에 하산한다. 그는 강릉으로 가서 소역을 만난다. 그리고 왕을 도와 임약을 물리치겠다고 말한다. 소역은 자연히 육법화가 형주에서 명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육법화 대사가 친히 출전한다면 그의 '미래를 예측한다'는 명성으로 자신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전해주는 정보는 '소역이 반드시 이기고, 후경이 반드시 질 것이다'라는 것이다. 하물며 육법화는 그에게 병졸이나 양식, 무기를 요구하지 않았으니, 이는 설중송탄(雪中送炭)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비록 이미 화급한 순간이기는 했지만, 소역은 그래도 수완을 부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는 즉시 육법화에게 신주자사(信州刺史)라는 공수표를 준다. 신주자사는 백제성을 통치하는데, 소연의 여덟째아들인 익주자사 무릉왕(武陵王) 소기(蕭紀)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스스로 병력을 모아서 호승우(胡僧佑)와 함께 임약을 막으라고 명한다. 육법화는 자신의 오랑캐족 제자들 중에서 800명의 정예장병을 선발하고, 호승우의 부대 1000여명과 회합한다. 노장인 호승우는 이 2000명도 되지 않는 오합지졸에 대하여 아무런 믿음도 없었다. 출발전에 가족들과 곡을 하며 이별한다. 이번 전투에서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와 선명하게 대비되는 것은 처음 병력을 이끌고 전투에 참가하는 육법화는 낙관적이기 그지없다는 것이다. 그는 배에 오른 후 양나라군대를 보고 크게 웃는다: "빈도(貧道)에게는 무량병마(無量兵馬)가 있노라!"
육법화가 군사들의 사기를 돋구는 마술은 이런 것뿐만이 아니다. 강릉일대에는 많은 사당이 있고, 형주 사람들은 자주 이곳에서 기도를 하곤 했다. 알려진 바로는 아주 영험하다고 했다. 육법화가 군대를 이끌고 출발한 후에는 한번도 영험하지 않았다. 그래서 군대내에는 이런 소문이 돌았다. 이들 신령들이 모두 육법화를 따라 전선으로 갔다고. 육법화가 병력을 이끌고 전투하면서 사냥과 살생을 금지시킨다. 만일 누군가 위반하면, 맹수가 한밤중에 나타나서 그를 습격하거나, 혹은 그의 배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임약의 군대는 이런 소문을 듣고나서 육법화의 '신력(神力)'에 대하녀 반신반의하게 된다.
육월 초이틀, 육법화와 오랑캐의 연합군와 임약은 적사호(赤沙湖)에서 결전을 벌인다. 전투전에 육법화는 갑옷을 입지 않고, 빠른 배를 타고 강을 내려간다. 임약의 군영과 1리 떨어진 곳까지 간 다음에 되돌아온다. 이곳은 이미 활과 노(弩)로 쏠 수 있는 거리였다. 육법화가 총사령관의 신분으로 이런 위험을 무릎쓰는 행위흘 하자 장병들의 사기는 크게 오른다. 육법화는 쇠뿔도 단김에 뺀다고, 적정을 정찰한 자신의 행위를 신비롭게 포장한다: "물 위에서 전투를 벌이려면 반드시 용신(龍神)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오늘 빈도가 가까이 가서 관찰해보니 상대방의 용신은 이미 잠들었다. 아군의 용신은 기세가 등등하다. 반드시 이런 좋은 기회를 틈타서 진공해야 한다. 내일 시작하더라도 괜찮다. 그래도 한 명도 다치지 않고 승리를 거둘 수 있다. 다만, 천도는 공평하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전체 전투에서 우리가 치러야할 대가는 아주 크다." 그 후 육법화는 자신이 상류에 있다는 이점을 고려하여, 화선(火船)을 선봉으로 하여 총공격을 감행한다. 이 명령을 듣자, 원래 사기가 올라 있던, 양군(梁軍)은 멍해진다. 왜냐하면 그들은 적벽대전의 손.유 연합군보다 더 골치아픈 문제에 부닥친 것이다. 즉 이때 비록 바람이 불기는 했지만, 자신들을 향하여 불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풍에 화공이라니, 불타는 것은 아군이 아니겠는가. 그것도 천문에 정통한 육법화를 어쩌지 못했다. 그는 스스로 몸을 드러내어 법술을 쓴다. 백우선을 몇번 휘두르자, 바람의 방향은 즉시 역전된다.
육법화를 만난 것이 임약에게는 불운이었다. 이 백전노장은 육법화의 마술에 놀라서 어쩔 줄 모른다. 상대방이 호풍환우하는 것까지 보았고, 일부 양나라병사들은 물 위를 걸어서 자신들을 향해 돌진해 왔다. 이런 모습을 보자 임약의 전군은 완전히 붕괴된다. 5000 정병이 깨끗이 전멸한 것이다. 물 위를 걷는 재주는 신기할 것도 없다. <사조영웅전>에에는 물속에 말뚝을 박아두고 자신의 탁월한 경공을 뽐낸 늙은 사기꾼 구천장(裘千丈)도 있지 않은가. 인력, 물력을 가지고 지리상황을 잘 알고 있는 육법화에게 있어서 이런 마술쯤은 아이들 장난같이 할 수 있었다.
전투가 끝난 후 양군이 전쟁터를 정리하는데, 임약이 보이지 않았다. 살아있으면 사람을 찾고, 죽었으면 시신이라도 찾아야 하는데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육법화가 나서서 예언을 한다: "내일 정오에 반드시 그 자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예언한 시간이 되었는데도 임약을 찾지 못했다. 누군가 육법화에게 이번에는 맞지 않는 것같다고 말한다. 그러자 육법화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미소를 짓는다: "적사호에는 모래섬이 있다. 몇년전에 물이 얕아졌을 때 빈도는 모래섬위에 불탑을 하나 만들었다. 이 불탑을 만든 것은 바로 현재 임약의 소재를 표시하기 위함이었다. 단월(檀越, 시주. 불교의 스님이 속인을 지칭하는 말)들은 거기로 가서 찾아보라." 육법화는 귀신처럼 알았다. 임약은 북방에서 온 자로 물을 잘 몰랐다. 그저 이 불탑의 꼭대리를 붙들고 물 속에 숨이 있었다. 코만 수면 위로 내놓고 숨을 쉰 것이다. 양군이 몰려가서 그를 생포한다. 임약은 자신이 남하한 이래 많은 나쁜 짓을 저질러 분명히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살려달라고 빌지는 않고, 그저 육법화에게 이렇게 말했다: "소인은 졌다는 것을 완전히 인정합니다. 대사께서는 시원하게 죽여주시기 바랍니다." 육법화는 오히려 그를 위로한다: "시주의 관상을 보니, 칼에 죽지는 않겠습니다. 그리고 시주는 상동왕과 인연이 있으니, 그가 당신을 죽이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기회가 있으면 그를 위해서 일해주십시오." 그리고 육법화는 다른 사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임약을 강릉으로 압송한다. 소역은 과연 임약을 죽이지 않고, 그를 감옥에 가두고 끝낸다.
소역이 얼마나 잔인한지를 알면 이러한 조치가 놀라울 것이다. 여러해동안 그의 심복으로 있던 왕승변은 말한마디 잘못했다가 바로 칼을 맞아 중상을 입는다. 참모인 소분(蕭賁)은 소역이 부친을 구하지 않았다고 풍자하다가 살해당한다, 공신 서문성(徐文盛)은 소역에게 대들었다가 임약과 같이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최종적으로 굶어죽는다. 심지어 이번에 육법화와 함께 싸운 호승우도 이전에 오랑캐족의 반란을 진압할 때 소역이 모조리 죽이라고 한 밀지를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힌 바 있다. 다만 상황이 긴급해지자 풀어줘서 전투에 참가하게 한 것이다. 그런 소역이 남조 양나라의 군인과 백성들을 수도 없이 죽이고, 관직이 후경의 사공에 이르른 임약을 죽이 않고 살려두는데 대하여 깜짝 놀란다. 육법화는 그야말로 신인이로구나라고 감탄한다.
이것이 바로 육법화의 독심술이다. 뛰어난 통찰력으로 그는 이미 소역의 심리를 연구하여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소역은 비록 웅재대략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사서를 많이 읽었고, 권모술수를 쓸 줄 알았다. 임약은 용장이고, 얻기 힘든 인재이다. 그는 원래 서위의 장수로서 중도에 후경에게 투항한 것이다. 그리고 후경의 심복도 아니다. 이제 임약은 남에도 북에도 아무런 근거가 없다. 소역이 그저 사면이라는 자그마한 은혜만 베풀면 충성스러운 부하를 하나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좋은 거래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육법화의 이런 조치는 소역에게 큰 선물을 안겨준 것일 뿐아니라, 형주의 관리들에게도 자신을 드러내고, 임약에게는 크나큰 은혜를 베푼 것이 된다. 자신으로서는 맹우를 한명 얻은 것이다. 그러니 이는 일거다득이라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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