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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소20

호해(胡亥)즉위문제: <사기>와 출토자료중 어느 것이 사실일까? 글: 난가인(爛柯人) 호해즉위건은 이천년동안 안개 속에 쌓여 있다. 역사학자들은 그가 황위를 찬탈했다고 보지만, 새로 출토된 자료는 그가 합법적으로 즉위했다고 말한다. 이 두 가지 설중 어느 것이 정확할까? 두 가지 설이 나오게 된 배후에는 어떤 역사적 이유가 있는 것일까? 1. 의 출토와 획기적 발견 2003년, 북경대학은 죽간(竹簡)을 기증받는데, 그 내용 중 일부는 였다. 는 이 책의 첫부분 "석자진왕조정출유천하(昔者秦王趙精出遊天下)"에서 나온 것이다. 진, 한 이전의 서적에는 이름을 지은 경우가 드물어, 서적의 첫마디를 가지고 명명하는 것이 하나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조정은 바로 진시황이다. 진시황의 성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진(秦), 조(趙)의 조상은 뿌리가 같아 모두 .. 2022. 8. 17.
진시황의 왕후는 어느 나라출신이었을까? 글: 해숙설춘추(海叔說春秋) 사서를 아무리 뒤져 보아도 진시황의 왕후에 대한 기록이 없다. 소위 진황한무당종송조(秦皇漢武唐宗宋祖)중 나머지3명의 왕후에 대하여는 모두 기록이 있다. 그러나 진시황은 중국역사상 아주 중요한 군주임에도 왕후에 대한 기록이 없다. 이는 기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록 현존하는 사서에서는 진시황의 황후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지만, 그 왕후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추측해보는 것은 아마도 가능할 것이다. 진시황의 앞 3대 즉, 진소양왕(秦昭襄王), 진효문왕(秦孝文王), 진장양왕(秦莊襄王)을 살펴보면, 진시황 가족내의 미묘한 관계를 엿볼 수 있다. 진소양왕이 가장 총애한 후궁은 초나라여인 미팔자(羋八子, 羋月)이고, 진효문왕이 가장 총애한 후궁은 화양부인(華陽夫人)이다. 이 두 명은 .. 2022. 7. 5.
공자 부소(扶蘇)는 왜 거짓조서를 받고 자살했을까? 글: 자요(子繇) 기원전210년, 진시황은 순유 도중에 급사한다. 사건은 너무나 돌연하게 일어났고, 나쁜 마음을 품고 있던 조고(趙高)에게는 다시 없을 기회를 가져다 준다. 조고는 먼저 이사(李斯)와 함께 진시황이 붕어했다는 소식을 감춘다. 이어서 진시황이 부소에게 보내는 조서를 위조.. 2018. 6. 26.
진시황이 죽기전에 나타난 3대이상징조(三大異兆) 글: 촉인삼척안(蜀人三隻眼) 중국역사상 최초의 황제인 진시황은 전설적인 색채가 짙다. 6국을 소멸시키고 중국역사상 최초의 대통일을 완성한다. 필생동안 고도의 권력집중을 추구했던 진시황에게는 더 걱정할 일이 없었다. 대통일후, 나이가 거의 반백이 된 진시황은 어떻게 하여야 장.. 2016. 7. 17.
[황자쟁위술] 광결붕당술(廣結朋黨術) 교장외위패(交將外圍牌) 병법에 이런 말이 있다: “장수는 밖에 나가 있으면, 군왕의 명도 받들지 않을 수 있다(將在外而君命有所不受).” 이는 봉건시대에 지방에 주둔하며 병사를 거느리는 장수의 권한은 공공연히 황제의 명에 항거할 수 있을 정도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당나라때가 최전성기인데, 그때의 지.. 2015. 8. 25.
[황자쟁위술] 부저추신술(釜底推薪術) – 알적장각패(挖敵墻脚牌) 옛말에 “지엽(枝葉)을 흔들려면 뿌리를 흔들어야 하고, 지엽을 튼튼히 하려면 뿌리를 튼튼히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기반을 튼튼히 다져야 한다. 반대로 생각하면, 경쟁자를 무너뜨리려면 그의 기반을 무너뜨리면 된다. 즉, 건물을 무너뜨리려면 벽 아래를 파.. 2015. 8. 4.
[황자쟁위술] 이세탈인술(以勢奪人術) – 적장신분패(嫡長身分牌) 맹자의 말에 “지혜가 있어도 기세를 이기지 못한다(雖有智慧, 不如乘勢).” 손자는 이런 말도 했다: “물이 거세면 돌도 쓸어갈 수 있다(激水之疾, 至於漂石)” 아무리 머리를 써도 도도히 흐르는 강물처럼 세는 어찌할 수는 없는 법이다. 황자들간의 황위다툼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요소.. 2015. 7. 28.
[황자쟁위술] 투량환주술(偸梁換柱術) – 교조모위패(矯詔謀位牌) <사기.진시황본기>에 보면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후, 신하들에게 제도를 정하게 명하고, 승상 위관, 어사대부 풍겁, 정위 이사는 백관들과 협의한 후, “….황제의 명은 제(制)로, 황제의 영은 조(詔)로 한다.”는 원칙을 정한다. 그 후 황제의 영은 “조서(詔書)”라 부르고, 특히 그 .. 2015. 7. 27.
진승,오광의 난은 실패한 것이 아니다. 글: 장부걸(張溥杰) 이천여년전에, 중국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농민의 난이 일어난다. 이 의거의 남자1호주인공과 2호주인공은 진승, 오광 두 사람이다. 현재 보편적인 견해는 진승오광은 농민의 난의 비조라는 것이다. 그들의 반란은 가가가읍(可歌可泣, 찬미하여 눈물을 흘릴만큼 감동적.. 2013. 11. 28.
미천백홍(彌天白虹): 부소(扶蘇)의 이야기와 전설 작자: 미상 1. 묘장의 수수께끼 1970년대말 고고학자들은 섬서성 진시황병마용박물관 삼호갱의 서쪽 개략 100미터 지점에서 고묘를 하나 발견했다. 이 고묘의 규모는 이미 발견된 진시황릉의 모든 배장묘들보다 규모가 컸다. 묘주인은 확실히 진왕조에서 지위가 상당히 높은 인물이라 할 .. 2013. 4.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