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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성11

제갈량 vs 이엄 (2): 양자간의 싸움 글: 의사리(衣賜履) 이엄은 원래 유장(劉璋)의 사람이었는데, 유비가 익주를 쳐들어왔을 때, 이엄이 무리를 이끌고 투항했다. 그리하여 유장에게 큰 타격을 준다. 유비는 이엄을 크게 환영했다고 할 수 있다. 그후, 유비는 이엄을 보내 유봉(劉封), 맹달(孟達)을 따라 상용군(上庸郡, 호북성 죽산현 서남의 전가패)을 공격하게 했다. 그후 이엄은 건위군(사천성 팽산현) 태수에 부임하고, 이어서 두 건의 반란을 평정한다. 이는 그가 상당한 군사적 재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에 따르면, 이엄과 제갈량, 법정, 유파, 이적(伊籍)의 다섯 명은 공동으로 촉한정권의 법령을 정비했다. 이는 이엄이 법률전문가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법정은 220년에 사망한다. 그렇다면 이엄은 개략 건위군태수의 직위에서, 겸직으로.. 2022. 3. 8.
역사상 유비와 제갈량의 관계는 어떠했을까? 글: 야독사서(夜讀史書) <삼국연의>를 읽은 사람이라면 유비와 제갈량이라는 군신에 대한 인상이 아주 깊을 것이다. 유비는 일찌감치 사람들에게 '유황숙'으로 불리웠지만, 처지는 비교적 비참해서, 반평생을 여기저기 떠돌며 지냈다. 그리고 시종 자신의 근거지를 확보하지 못했다. .. 2019. 7. 2.
제갈량 사후 유선이 30년이나 촉한을 통치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글: 지역사(知歷史) 유비(劉備)의 아들 유선(劉禪)을 얘기하면 세상사람들은 모두 멸시한다. 왜냐하면 세상사람들의 눈에 유선은 "도저히 안되는 아두(阿斗)"이기 때문이다. 심한 사람은 그를 "망국(亡國)의 혼군(昏君), 상방(喪邦)의 용인(庸人)"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진실한 유아두는 도.. 2018. 11. 15.
삼국소인물(9): 진도(陳到), 융중대(隆中對)의 발명자 글: 진창(陳創) 진도(180-230), 자는 숙지(叔至), 여남(汝南) 사람이다. 그는 촉국에서 조운(趙雲)보다 뛰어난 맹장이다. 그는 유비의 근위통령이었으며, 유비의 안전을 책임졌다. 그는 삼국시대 5대정예부대중 하나인 백이병(白毦兵)을 훈련관 겸 지휘관이다. 그가 이 강력한 부대를 훈련시킨.. 2018. 6. 28.
백련교(白蓮敎)는 사교집단인가? 글: 이안루(李顔壘) 영화 <황비홍의 남아당자강(男兒當自强)>에서 가장 많은 장면은 우매하고 무지하며 무고한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백련교이다. 그들은 중국인의 민족주의 정사와 낙후함과 우매함을 이용하여, 교회를 불지르고, 철로를 파괴하며, 대사관을 부수고, 항구를 빼앗으.. 2018. 1. 12.
백제성(白帝城) 탁고(托孤)의 진정한 의미는? 글: 장봉(張鋒) 유비, 이 동한말기 소위 '대한황숙'은 기실 가장 힘들게 살았다. 조조와 비교하자면 그의 영토는 훨씬 작았고, 실력도 가장 약했다. 설사 적벽대전이후라 하더라도 형주4군과 남군을 얻고 다시 사천으로들어가고, 한중을 얻었다. 한중에서 칭왕을 한 때 비로소 고개를 빳빳.. 2017. 2. 1.
조조, 유비, 손권의 세 영웅은 왜 후반에 평범해졌을까? 글: 정정(丁丁) 삼국시대를 읽다보면, 최종적으로 칭웅(稱雄)하는 조조, 손권, 유비의 3애영웅이 필자에게 주는 가장 큰 공통된 인상은 바로 성장단계에서 모두 크게 위대하고, 백절불굴하며 패배해도 실력을 보존하고, 이길 때는 일거에 상대방을 격패시키며 자신의 최종적인 칭웅의 기.. 2016. 6. 26.
백이병(白毦兵): 삼국시대 신비한 촉한의 특수부대 글: 유려평(劉黎平) 특수부대는 현대의 군대에 비로소 생긴 병종은 아니다. 냉병기시대에도 전투력이 출중하고 공격방어 돌파능력이 남다른 특수한 부대가 있었다. 이들은 전쟁에서 중요한 순간에 사용하거나 혹은 제왕이나 대장등 중요인물의 안전을 보호했다. 동한 말기와 삼국시대에.. 2016. 6. 1.
삼국시대 가장 용맹했던 5개의 정예부대 글: 복녕객(福寧客) 난세삼국에 각지의 세력은 아주 복잡했고, 군대도 아주 많았다. 이름을 날리고 후세에 이름이 전해지는 부대도 적지 않다. 오늘 얘기할 이 다섯 개의 정예부대는 대부분 유비와 관계가 있어서, 아마도 한켠으로 치우친 것같다는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다. 그러나 생각.. 2015. 5. 3.
제갈량의 황제꿈 글: 호각조(胡覺照) 제갈량은 황제꿈을 꾸었다. 이 말이 잘못되었는가? 아니면 제갈량을 모욕하는 것인가? 아니다. 여기에 많은 사실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첫째, 구년여동안 보정(輔政)을 하고, 권력을 돌려주지 않았다. 유비가 백제성에서 탁고하였을 때, 유선은 이미 17세였다. 전제사회.. 2012. 8.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