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장봉(張鋒)
유비, 이 동한말기 소위 '대한황숙'은 기실 가장 힘들게 살았다. 조조와 비교하자면 그의 영토는 훨씬 작았고, 실력도 가장 약했다. 설사 적벽대전이후라 하더라도 형주4군과 남군을 얻고 다시 사천으로들어가고, 한중을 얻었다. 한중에서 칭왕을 한 때 비로소 고개를 빳빳이 들 수 있었다. 다만, 금방 관우가 형주를 잃는다. 조비가 황제를 칭한 후에 그도 급히 황제를 칭하고 얼마후 이릉지전을 일으킨다. 그리고는 대패하여 백제성에서 병사한다. 이 고난의 경력에서 황제로 있었던 기간은 3년에도 못미친다. 손권과 비교하더라도, 차이가 크다. 손권은 재벌2세이다. 비록 황제를 칭한 것은 늦었지만, 가장 오래 살았다. 동오정권은 가장 마지막에 멸망한다.
유비의 인생에서 가장 중대한 전환점, 심지어 삼국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백제성 탁고(유언으로 아들을 맡기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후 제갈량이 실질적으로 촉한의 대권을 장악하게 되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삼국정립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당연히 유비에 있어서, 이 전환점은 너무 급박하게 왔다. 전환후에 바로 죽는다. 그렇다면 당시의 그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특히 이때는 이릉지전에서 패배하여 촉한의 원기를 크게 상한 후였다.정말 삼국연의에서 말하는 것처럼 군신일체 상하동심이었을까?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어떤 때는 믿음과 희망이 인생의 동력이다. 다만 절망도 왕왕 사람들에게 각성과 깨달음을 준다. 유비는 시종 자신만만했다. '제적부한(除賊扶漢)'이건 아니면 언젠가 스스로 왕이 되는 것이건 그는 항상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도 그렇게 되었다. 다만 형주를 얻은 후, 약간의 일들이 점점 미묘하게 변화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제왕욕이 점점 팽창한 것이다. 그 자신이 점점 제왕처럼 바뀌어 버린다. 고금이래로 일단 세를 얻은 군왕이 가장 범하기 쉬운 잘못은 기실 모두 비슷하다. 그것은 바로 강퍅자용(剛愎自用)이다. 관우, 장비가 연이어 죽은 후, 유비는 기실 갈수록 고독해진다. 조운은 버리고 쓰지 않고, 제갈량에 대하여도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관계를 유지한다. 그는 갈수록 자신을 얻은 것같았다. 스스로 한번의 전투로 천하를 평정할 수 있다고 보았다. 기실 관우의 복수를 한다는 것은 겉으로 내세운 것일 뿐이다. 아쉽게도, 역사의 대세는 그의 의지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는 패배한 것이다.
그것도 일패도지한다. '위급존망지추'에 이르러 유비는 비로소 깨닫는다. 그리고 절망한다. 실제로 백제성에서는 탁고가 아니라, 실제는 촉한을 제갈량에게 넘긴 것이다. 어쩔 수 없어서 그랬건, 아쉬워하면서 그랬건, 결국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유선은? 아마도 유비가 일찌감치 얘기했을 것이다. 그리고 제갈량에게는 얘기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다만 부자는 마음이 통했고, 유선은 부친의 뜻을 알아들었다.
그래서 그후, 대소사를 모조리 "제갈량에게 물어서 결정한다" 유선은 그저 충실하게 명목상의 '국가원수'로 지낸다. 후인들중 많은 사람들의 유선에 대한 평가는 도와줘도 안되는 아두라는 것인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허군실상(虛君實相)'은 기실 아주 좋은 정치체제이다. 당연히, 전제는 재상이 권력을 빼앗지 않아야 하고, 두 사람이 싸우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유선과 제갈량 두 사람은 묵계가 잘 되어 있었고, 잘 이행했다. 그래서 촉한은 전대미문의 발전을 거두는 것이다. 당연히 제갈량의 사후, 유선의 부패와 타락은 별론으로 하고...
그래서, 백제성 탁고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유비와 제갈량의 군왕은 군왕이 아니고, 신하는 신하가 아닌 애매한 관계를 끝내고, 진정으로 공명과 유선의 '군명신충(君明臣忠)'의 어수시대(魚水時代)를 열게 된다. 마찬가지로, 더욱 중요한 것은 제갈량에게 마침내 포부를 펼칠 플랫품을 마련해 준 것이다.
다만, 삼국시대에 제갈량느 시대를 만나지 못했다. 제갈량이 그 기세를 펼치지 못하자, 촉한은 가장 먼저 멸망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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