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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지치11

한혜제(漢惠帝) 유영(劉盈)은 6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왜 동생 유항(劉恒)에게 황위가 넘어갔을까? 글: 조문사(朝文社) 한혜제 유영이 재위하던 기간동안 비록 명목상으로 황제였지만, 사실상 권력자는 모친인 여후(呂后)였다. 유영이 사망한 후, 전소제(前少帝) 유공(劉恭), 후소제(後少帝) 유홍(劉弘)이 전후로 즉위한다. 비록 이들 둘은 허수아비라고 하기에도 부족하지만, 어쨌든 황제에 오르긴 한다. 사료에 따르면, "밤에, 각각 사람을 나누어 양왕(梁王), 회양왕(淮陽王), 상산왕(常山王)과 소제(少帝)를 자택에서 주살했다." 바꾸어 말하면, 유영의 6명 아들 중에서, 2명은 황제에 올랐다. 전소제 유공을 제외한 나머지 5명은 모두 반여집단(反呂集團)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 마지막에는 반여집단의 진평(陳平), 주발(周勃)등의 옹립하에, 한문제(漢文帝) 유항(劉恒)이 즉위한다. 그렇다면, 왜 유영의 남은 .. 2020. 11. 25.
역사상의 "태종(太宗)": 모두 "내로부정(來路不正)"한 황제들이다 글: 청풍명월소요객(淸風明月逍遙客) 중국 수천년의 왕조사에서 묘호(廟號)는 아주 연구할 가치가 있는 문제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묘호"와 "시호(諡號)"는 모두 어느 정도에서 황제일생의 공과시비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다만 후세의 황제는 시호의 수가 늘어나서, 자손들이 조상을 위하여 시호를 정할 때 어떻게 평가했는지 알기 어려워졌다. 다만 '묘호'는 '시호'를 대체하여 황제에 대한 개관정론(蓋官定論)의 중요한 근거이다. 가장 원시적인 묘호는 상(商)나라때 건립된다. 당시에는 단지, "태(太)", "고(高)", "세(世)", "중(中)"의 4종이었다. 그리고, "조유공이종유덕(祖有功而宗有德)", 조는 공이 있는 황제에게, 종은 덕이 있는 황제에게 붙인다는 기준으로 조종의 묘호를 정했다. 나중에 왕조가.. 2020. 10. 26.
미중쟁패: 한흉(漢匈)쟁패역사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글: 공손책(公孫策) 미국이 중국에 정식으로 무역전을 전개한 후, 중국의 태도는 양보하지 않았지만, 마음 속으로는 대항하기에는 힘이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관찰가들은 대부분 현단계에서 장악하고 있는 자원과 가용한 무기/수단을 가지고 분석한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역사의 경험을 가지고 장기간으로 종심을 늘이는 방법을 시험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양강쟁패의 가능한 결과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한흉쟁패100년 여기에서 비교대상으로 삼을 시기는 기원전200년부터 기원전100년까지의 100년간이다. 배경은 흉노칸국과 진,한제국의 쟁패이다. 그 이전에 중국은 전국시대였고, 북방초원민족은 '호(胡)'로 통칭되었다. 진(秦), 조(趙), 연(燕)은 모두 장성을 건설하여 호인을 막았다. 진시황은 천하를 통.. 2020. 10. 9.
삭번(削藩), 조반(造反), 그리고 성세(盛世) 글: 육기(陸棄) 중국역사상 두번의 황제의 삭번, 번왕 조반의 전쟁이 있었다. 다만, 전쟁의 결과는 완전히 달랐다. 서한(西漢)왕조의 한경제(漢景帝)의 삭번때는 칠왕지란(七王之亂)을 진압함으로써 끝나고, '문경지치(文景之治)'의 한경제 시대를 이어갔다. 대명왕조의 건문제(建文帝)의 .. 2019. 3. 20.
진양성(晋陽城): 중국에서 풍수가 가장 뛰어난 도시 글: 천지사화(天地史話) 중국에 이런 용흥지성(龍興之城, 개국황제가 태어난 곳)이 있다. 춘추시기에 성이 만들어진 후, 여러 황제를 배출했다. 그러나 송나라에 이르러 철저히 파괴된다. 춘추말기, 진(晋)나라의 대경(大卿) 조간자(趙簡子)의 가신 동안(董安)은 태원분지의 북단 진수(晋水.. 2019. 1. 30.
허부(許負): 한고조 유방이 19살의 그녀를 제후로 봉하다. 글: 효풍모우(曉風暮雨) 한나라5년(기원전202년), 유방이 황제를 칭한 후, 공신들에게 봉상을 내린다. 이때 나이 겨우19살의 여인이 명자정후(鳴雌亭侯)에 봉해진다. 이 여자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왜 한나라의 개국공신들과 함께 제후로 봉해질 수 있었을까? 이 여자의 이름은 허부이다... 2018. 10. 22.
누가 한무제를 황제로 만들었는가? 글: 후홍빈(侯虹斌) "만일 아교를 부인으로 맞이할 수 있다면, 황금으로 집을 만들어 살게 하겠습니다." 이 귀에 익숙한 '금옥장교(金屋藏嬌)'의 이야기는 야사 <한무고사>에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아름다운 이야기의 뒷면에는 소리장도(笑裏藏刀)의 탈적(奪嫡)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2014. 7. 17.
식량(食糧): 진정한 역사의 조타수 글: 왕효명(王曉明) 이런 말이 있다. '백성들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民以食爲天)". 중화대지의 양식을 이해하여야 우리는 비로소 중국의 고대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 양식이 있어야 사람은 생존을 위한 조건을 갖추는 것이다. 사람이 생존해야 경제가 발전할 수 있고, 세금을 .. 2012. 1. 30.
한양릉(漢陽陵): 한경제의 무덤 글: 장명(張鳴) 몇년전에 한 친구가 나를 보러왔다가, 헤어지면서 나에게 지전(地磚)의 부스러진 조각을 몇개 주고 갔다. 한양릉에서 나온 것이라면서. 친구가 떠난 후, 나는 자세히 이미 낡아빠진 깨진 부스러기조각을 들여다 보았다. 비록 잔편(殘片)이기는 하지만, 위에는 정교한 꽃무늬가 있었다. .. 2010. 3. 16.
한무제의 어머니 이야기 글: 아체(阿杕) 이천여년전 한문제(漢文帝) 시절의 이야기이다. 당시의 수도 장안의 부근에 장릉이라는 곳이 있었다. 이곳에는 아주 보통사람이 하나 살고 있었는데, 성이 김(金)이었다. 김씨집안에 남자가 하나 있는데, 김왕손(金王孫)이라고 했다. 그는 금방 혼인을 하였는데, 왕(王)씨성의 여인을 부.. 2010. 3.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