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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비6

해독이 어려운 건릉(乾陵)의 무자비(無字碑) 글: 중원수장대강당(中原收藏大講堂) 섬서에 위치한 건릉은 당고종 이치와 여황 무측천이 묻혀 있다. 그래서 중국역대제왕릉중 유일하게 두 황제가 합장된 묘이다. 능원내성 주작문밖의 사마도 서쪽에 당고종 이치의 문치무공을 칭송하는 공덕비인 "술성기비(述聖記碑)"가 세워져 있다. 그런데 동쪽에 나란히 서 있는 비는 바로 그 유명한 "무자비"이다. "무자비"는 완전한 거석을 조각해서 만들었다. 높이는 7.53미터, 너비는 2.1미터, 두께는 1.49미터, 총중량은 98.84톤에 달한다. 비의 윗쪽에는 8마리의 용이 서로 얽혀 있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비신(碑身)의 양측에는 '승룡도(昇龍圖)'가 새겨져 있다. 용의 몸은 튼튼하고, 자태는 신선처럼 표일하다. 전체적으로 비는 웅혼하고 조각도 정교하여 황실의 위엄을.. 2021. 4. 21.
무자비(無字碑): 무측천 이외의 황제들도 있었다. 글: 마랄역사강당(麻辣歷史講堂) 무측천의 무자비는 유명하다. 기실 무측천의 비문은 처음부너 무자비는 아니었다.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바에 따르면, 이 무자비의 면에는 많은 방격자(方格子)가 있는데, 이들 글자가 없는 빈 격자는 분명히 거기에 글자를 새기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 2019. 1. 19.
무측천은 하야후에 어떻게 여생을 보냈을까? 글: 두문자(杜文子) 무측천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도 갈수록 허약해졌다. 신룡원년에 무측천은 이미 병으로 침상에 누워서 일어나질 못했다. 오랫동안 병을 앓아서, 무측천의 모든 것이 귀찮아 아예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 그저 장역지(張易之), 장창종(張昌宗) 형제만이 그녀를 곁에서 .. 2018. 7. 27.
명십삼릉중 왜 12개는 무자비(無字碑)가 세워졌을까? 작자: veryhope 명십삼릉에는 괴이한 현상이 있다. 이는 사릉(思陵)을 제외하고 명십삼릉의 나머지 12개릉은 비록 모두 명나라때 건조되었지만, 모든 릉에는 당시에 문자를 새기지 않은 석비가 세워져 있다. 사람들은 이를 "무자비"라고 부른다. 이들 석비는 왜 당시에 문자를 새기지 않았을.. 2013. 4. 13.
무측천(武則天)이 무자비(無字碑)를 남긴 이유는? 글: 침묵과담(沈默寡談) 산서성 건현(乾縣)의 현성 북쪽에 있는 양산(梁山)에 위치한 건릉(乾陵)은 당고종 이치와 여황제 무측천의 합장묘이다. 중국역대제왕의 능원중 유일한 부부황제 합장묘이다. 묘앞에는 두 개의 거대한 석비(石碑)가 세워져 있는데, 서쪽에 있는 것은 "술성기비(述聖記碑)"로 무측.. 2009. 2. 12.
중국역사상 세 개의 무자비(無字碑) 건릉(무측천)에 있는 무자비 중국역사에 무자비(無字碑)를 세운 인물로 유명한 사람은 세 명이 있다. 무자비는 비석만 세우고, 그 비석에 아무 글도 적지 않은 것을 말한다. 첫째, 사안(射安). 동진(東晋)의 "비수지전([水+肥]水之戰)의 주장으로, 교만하기 이를데 없던 부견(符堅)을 격패시켜, 동진의 강.. 2005. 8.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