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이치7 급암(汲黯): 한무제에게 감히 대들었던 인물. 글: 이중천(易中天) 모두 알고 있다. 한무제는 대들기 힘들다는 것을. 예를 들어, 사마천은 몇 마디 다른 의견을 얘기했다가, 결과가 어찌되었는가? 잘렸다. 더 이상 남자도 아니게 되었다. 다만 한 사람이 있다. 굳이 한무제에게 대들었던. 그리고, 말도 아주 심하게 했다. 예를 들어,한무.. 2018. 12. 12. 한무제의 독존유술(獨尊儒術) 글: 이중천(易中天) 한무제는 하나의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파출백가(罷黜百家), 독존유술(獨尊儒術). 이것은 천추만대에 영향을 끼친 중대사이다. 이때부터, 중화제국은 국가의식형태가 생기고, 변함없는 핵심가치가 생기게 된다. 제국은 하나의 제도로서 이천여년간 안정적으로 연속.. 2014. 7. 17. 한고조 유방의 유언 분석: 환환상구(環環相扣), 백밀무일소(百密無一疎) 글: 하목풍(何木風) "유씨가 아니면서 왕이 되면, 천하가 모두 그를 쳐라." ---<사기.여태후본기> "여후가 고조에게 물어 말하기를: 폐하가 세상을 떠난 후 소상국이 죽으면 누가 대신합니까. 황상이 말하기를: 조참이 괜찮다. 그 다음은 누구입니까라고 물으니 답하기를: 왕릉이 괜찮다.. 2013. 12. 21. 진무제(晋武帝) 사마염(司馬炎)의 세가지 정치적 실수 글: 황작비비(黃雀飛飛) 265년 8월, 사마소(司馬昭)가 병사한다. 아들 사마염이 부친의 자리를 이어 상국(相國), 진왕(晋王)에 오른다. 이 해에 그의 나이 겨우 19살이었다. 십이월, 사마염은 위나라의 황제 조환(曹奐)이 물러나서 선양하도록 강제하고, 스스로 등극하여 진(晋)왕조를 개창한.. 2013. 9. 14. 명십삼릉중 왜 12개는 무자비(無字碑)가 세워졌을까? 작자: veryhope 명십삼릉에는 괴이한 현상이 있다. 이는 사릉(思陵)을 제외하고 명십삼릉의 나머지 12개릉은 비록 모두 명나라때 건조되었지만, 모든 릉에는 당시에 문자를 새기지 않은 석비가 세워져 있다. 사람들은 이를 "무자비"라고 부른다. 이들 석비는 왜 당시에 문자를 새기지 않았을.. 2013. 4. 13. 한족에게는 왜 서사시가 없는가? 글: 정비범(鄭非凡) 서사시(Epic)는 서방에서 유래한 개념이고, 전통적인 정의와 기준은 고대 그리스의 호메로스 서사시에서 유래한다. 말 그대로 ‘서사의 시’이다. 일반적으로는 영웅의 전설이나 중대한 역사소설을 서술하는 장편시를 말한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인 일리아드, 오딧세이는 길이가 2800.. 2010. 11. 29.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