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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획6

칠종칠금(七縱七擒)(II): 맹획은 남만의 오랑캐가 아니다. 글: 의사리(衣賜履) 건흥3년(225년)의 봄날, 제갈량은 병력을 세 갈래로 나누어 남하한다: 문하독(門下督), 파서군(巴西郡, 사천성 낭중시)사람인 마충(馬忠)이 장가군(牂牁郡, 귀주성 복천현)을 공격하고, 내항도독(庲降都督) 이회(李恢, 이때의 이회는 평이현에 주둔하고 있었고, 평이현은 장가군 소속이며 귀주성의 필절시이다)은 익주군을 공격하고, 제갈량은 직접 대군을 이끌고 수로를 통해 월전군(越嶲郡, 사천성 서창시)으로 들어갔다. 동시에 건위군태수이자 광한 사람인 왕사(王士)를 익주군태수로 임명한다. 오랑캐왕 고정(高定)은 모우현(旄牛縣, 사천성 한원현 동북), 정작현(定筰縣, 사천성 염원현), 비수현(卑水縣, 사천성 소각현)의 일선을 따라서 내려오며 많은 보루에 주둔시켰다. 제갈량은 고정의 인마가 .. 2021. 10. 25.
칠종칠금(七縱七擒)(I): 제갈량은 왜 직접 남정에 나서야 했을까? 글: 의사리(衣賜履) (제갈량의 "칠종칠금"은 삼척동자도 아는 유명한 이야기이다. 제갈량은 일곱번이나 소수민족의 우두머리인 맹획을 붙잡은 후, 잘 먹이고 대접한 다음 보내주고 다시 싸운다. 맹획은 결국 제갈량에게 완전히 굴복한다. 그때부터 촉의 남쪽에 있는 소수민족은 더 이상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 제갈량과 맹획은 마치 민족융합을 상징하는 천고의 아름다운 한쌍인 것처럼 전해지고 있다. 그럼 실제 상황이 그러할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유비가 사망하기를 전후하여, 익주의 남부지역에서는 여러번 반란이 일어난다. 유비의 후사를 처리한 후, 관료들을 정돈하여 조정의 상하관계를 바로잡은 후 제갈공명은 남부지역에 손을 쓰기로 한다. 다만 그 전에 반드시 해야할 일이 하나 있었다. 동오와의 연합 유비가 .. 2021. 10. 23.
촉한(蜀漢) 멸망시, 맹획(孟獲)등 남방부락은 왜 구원하러 오지 않았는가? 글: 춘지와(春之蛙) 263년, 위나라는 대장 등애(鄧艾)를 파견하여 촉한을 정벌한다. 위군의 기세가 대단하여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왔다. 금방 성도성 아래까지 간다. 그러나 촉한정권이 멸망하려 할 때, 서남지구에 있는 오랑캐족부락은 왜 병력을 보내어 촉국을 구원해주지 않았을까? 오.. 2018. 8. 2.
"칠종칠금(七縱七擒)"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글: 호각조(胡覺照) 2년을 준비한 후, 원래 이엄(李嚴)이나 다른 장수가 맡으려던 남정(南征)업무를 제갈량은 "여러 장수들의 재능이 나만 못하다"는 것을 이유로, 친히 나서기로 결정한다. 이에 대하여, 심복인 왕련(王連) 마저도 상소를 올려 제지한다: "이곳은 불모의 땅이고, 전염병이 .. 2015. 2. 10.
칠종칠금(七縱七擒) 배후의 진실 글: 호각조(胡覺照) 2년간 준비를 마친 후, 원래는 이엄(李嚴)이나 다른 장수가 담당할 예정이었던 남정(南征)업무를 제갈량은 "여러 장수들의 재능이 나보다 못하다"는 이유를 들어 친히 나서게 된다. 이에 대하여 심복인 왕련(王連)은 글을 올려 반대의사를 표시한 바 있다: "이 곳.. 2011. 10. 27.
제갈량의 “칠종칠금”은 역사상 존재했는가? 글: 문재봉(文裁縫) “칠종칠금(七縱七擒)”은 <삼국연의>에서 대서특필한 부분이고, 역대이래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 내용은 동한 말기, 위, 촉, 오의 삼국이 천하를 셋으로 나누어 가졌는데, 촉의 승상 제갈량은 유비로부터 자식을 부탁한다는 임종유언을 받아 북벌을 하여 한실을 부흥시키기로.. 2011. 3.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