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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애17

제갈량에게는 황위를 찬탈할 마음이 없었다 글: 제갈주(諸葛周) 권신(權臣)으로서, 제갈량의 경우는 조조와 극히 유사하다. 관직으로 보자면, 조조는 무평후(武平侯), 승상(丞相), 영기주목(領冀州牧)이고; 제갈량은 무향후(武鄕侯), 승상, 영익주목(領益州牧)이었다. 촉한에는 익주 하나의 주밖에 없었으므로, 제갈량의 권력은 조조.. 2013. 8. 18.
사마소: 삼국시대 가장 노련한 모사 이치아(李治亞) 삼국시대 후기, 조위의 사마의는 위나라를 대체하여 새로운 왕조를 개창하고자 했다. 그의 두 아들도 노모심산했다. 사마의가 죽은 후, 조위의 대권은 점차 사마씨에게 잠식된다. 사마사(司馬師)가 죽은 후, 사마소는 더더욱 용상에 앉고 싶어했다. 그러나 서쪽에는 촉한.. 2013. 8. 17.
주창(周昌): 사대부(士大夫)와 노재(奴才) 글: 후홍빈(侯虹斌) 한나라초기의 어사대부 주창은 말을 더듬는 버릇이 있었다. 말을 하다가 급하면, "기(期)....기(期)...."라고 하며 말을 끝맺지 못했다. 서진때의 등애(鄧艾)도 마찬가지로 말을 더듬었다. 말을 하다가 자주, "애(艾)....애(艾)...하고 했다. 두 명신을 합하면 바로 성어인 "기.. 2013. 8. 15.
강유는 어떤 점에서 제갈량만 못한가? 글: 염호강(閻浩崗) 강유(姜維)는 제갈량이 고르고 고른 유일한 적전제자(嫡傳弟子)이다. 제갈량이 제자를 받으려는 마음은 삼고초려에서 나올 때부터 있었다. 그러나 여러해가 지나도록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 그는 분명 마속(馬謖)을 진지하게 고려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큰 기대.. 2013. 6. 27.
위(魏)나라에 저항한 주력은 오(吳)나라이지 촉(蜀)나라가 아니다. 작자: 미상 비록 아래의 수치는 불확실한 곳이나 이견이 있는 곳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최종 결론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1. 도대체 누가 항위(抗魏)의 주력인가? 삼국시대, 위나라는 강하고, 오, 촉은 모두 약했다. 그래서 삼국정립의 전제는 오촉이 연합하여 .. 2013. 4. 13.
삼국시대 제갈가족의 비애 글: 추일운(鄒逸雲) 삼국시대 낭야(琅邪) 제갈가족의 형세 3명은 각각 다른 주인을 모셨다. 제갈근(諸葛瑾)은 오(吳)나라의 대장군으로 선성후(宣城侯)에 봉해졌고; 제갈량(諸葛亮)은 촉(蜀)에서 승상(丞相)을 지냈으며; 제갈탄(諸葛誕)은 위(魏)에서 정동대장군(征東大將軍)을 지냈고 고평.. 2013. 4. 13.
방통의 양모(陽謀)와 제갈량의 음모(陰謀) (II) 3. 방통은 유비를 잘 알았다. 그리하여 죽음으로 현자에게 양보한다. 용봉의 의견차이로 유비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한편으로 그는 방통이라는 능력이 뛰어난 모사를 아끼면서, 다른 한편으로 모든 앞일을 신처럼 예측하는 제갈량도 믿는다. 만의 하나 잘못을 범하지 않기 위하여 유비는 형주로 물러.. 2008. 1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