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애17 관우가 형주를 지킬 때, 그의 문신무장(文臣武將)은 누가 있었을까? 글: 이치아(李治亞) 유비(劉備)가 형주를 차지한 후, 서천(西川)을 칠 때, 제갈량(諸葛亮)으로 하여금 형주를 지키게 한다. 당시 형주에는 많은 명장이 있었다. 제갈량이 형주의 수비총사령관이고, 관우(關羽)는 양양(襄陽)의 요충지를 지키고 있었다. 장비는 영사군순강(領四郡巡江)이었고.. 2018. 7. 21. 하후패(夏侯覇): 하후연의 아들은 왜 부친을 죽인 원수에게 투항했을까? 글: 지역사(知歷史) 하후연(夏侯淵)은 삼국시대초기의 수퍼맹장이며, 조조의 심복이다. 남정북전에서 혁셕한 전공을 세운다. 한마디로 말하면 "호보관우(虎步關右)"이다. '호보'는 휩쓸고 다닌다는 뜻이고, '관우'는 동관의 서쪽 즉, 장안을 비롯한 관중지역을 말한다.다만, 정군산(定軍山).. 2017. 10. 11. 삼국의 지장(智將) 랭킹 글: 무릉산인(茂陵散人) 인터넷에서 삼국에 관한 글들을 많이 보면서, 스스로의 견해도 말하고 싶어졌다. 이 랭킹은 정사(正史)만 고려한 것이고, 삼국연의는 고려하지 않았다. 만일 연의를 고려한다면 제갈량이 당연히 랭킹 1위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정사를 보면, 필자의 생.. 2017. 8. 6. 육항(陸抗)과 양호(羊祜): 삼국말기 적이자 친구인 두 명의 위대한 모사(謀士) 글: 정정(丁丁) 삼국시대 말기 모사라 칭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게다가 위대한 모사라고 불릴만한 사람은 더더욱 적다. 위대한 모사라고 이름붙일만한 사람을 억지로 찾는다면 4명정도가 있을 것으로 본다: 첫째는 당연히 동오의 육항이다. 둘째는 당연히 서진의 양호(이때는 이.. 2016. 7. 17. 제갈량에게는 황위를 찬탈할 마음이 없었다 글: 제갈주(諸葛周) 권신(權臣)으로서, 제갈량의 경우는 조조와 극히 유사하다. 관직으로 보자면, 조조는 무평후(武平侯), 승상(丞相), 영기주목(領冀州牧)이고; 제갈량은 무향후(武鄕侯), 승상, 영익주목(領益州牧)이었다. 촉한에는 익주 하나의 주밖에 없었으므로, 제갈량의 권력은 조조.. 2013. 8. 18. 사마소: 삼국시대 가장 노련한 모사 이치아(李治亞) 삼국시대 후기, 조위의 사마의는 위나라를 대체하여 새로운 왕조를 개창하고자 했다. 그의 두 아들도 노모심산했다. 사마의가 죽은 후, 조위의 대권은 점차 사마씨에게 잠식된다. 사마사(司馬師)가 죽은 후, 사마소는 더더욱 용상에 앉고 싶어했다. 그러나 서쪽에는 촉한.. 2013. 8. 17.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