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삼국)

육항(陸抗)과 양호(羊祜): 삼국말기 적이자 친구인 두 명의 위대한 모사(謀士)

중은우시 2016. 7. 17. 22:31

글: 정정(丁丁)


삼국시대 말기 모사라 칭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게다가 위대한 모사라고 불릴만한 사람은 더더욱 적다. 위대한 모사라고 이름붙일만한 사람을 억지로 찾는다면 4명정도가 있을 것으로 본다: 첫째는 당연히 동오의 육항이다. 둘째는 당연히 서진의 양호(이때는 이미 조위가 서진으로 바뀌었다)이다. 셋째는 촉한의 강유(姜維)이다. 넷째는 서진의 등애(鄧艾)이다. 그러나, 이 4명의 위대한 모사들 중에서 전설로 불릴 수 있는 인물은 육항과 양호이다. 그들은 전쟁터에서는 각각 모시는 주군이 있어 생사를 걸고 싸우는 적이지만, 전쟁터밖에서는 그들은 서로를 아끼는 친구였다. 만일 각각 모시는 주군이 다르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우의는 아마도 전설이 되어 중국에서 이천년간 전해져 내려왔을 것이다. 아쉽게도 전쟁은 그들을 적으로 만들었다. 다만 비록 그렇기는 해도, 그들간의 우정에 우리는 여전히 감탄하게 된다.


육항과 양호는 모두 명문집안 출신이다. 육항은 강동의 명문세가 출신이다. 육씨집안은 동한 이래의 거족이다. 부친 육손(陸遜)은 더더욱 삼국에 이름을 떨친 위대한 인물이다. 그의 재능은 주유보다 아래가 아니고, 노숙보다는 위였으며 삼국시대 저명한 3대전투중 하나인 이릉지전을 바로 육손이 지휘한다. 그는 3만대군으로 유비의 10만대군을 섬멸했고 칠백리연영을 불태웠다. 그것은 바로 육손의 장거이다. 당연히 손책의 외손자라는 신분도 무게를 더해 주었을 것이다. 육손이 죽은 후, 겨우 20살의 육항은 동오정권의 동량같은 인물이 된다. 동오정권의 후기에 만일 육항이 버텨주지 않았더라면, 동오는 일찌감치 멸망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바로 육항이 있었기 때문에, 바람앞의 촛불처럼 흔들리는 동오정권에 한줄기 빛과 같은 장거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서릉전투는 육항이 3만대군의 힘으로 양호가 이끄는 10여만대군(양호는 8만대군을 지휘하고, 동오에서 투항해온 장수 보천(步闡)이 3만대군을 지휘했다)을 물리쳤고, 이로 인하여, "육항이 있으면, 서진은 동오를 정벌할 수 없다"는 전설이 나왔다.


양호도 명문왕족(旺族) 출신이다. 위로 조상 8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모조리 최소한 2천석이상의 고관이다. 조부인 양속(羊續)은 동한 말기의 남양태수이고, 부친 양도(羊)는 상당태수를 지낸다. 모친은 더더욱 전설적인 채옹(蔡邕)의 딸이다. 중국역사상 몇 안되는 여상문학가 채문희(蔡文姬)는 바로 그의 이모가 된다. 그리고 양호는 황족인 사마씨와도 관계가 있다. 그의 누나는 사마의(司馬懿)의 아들 사마사(司馬師)의 처이다.


이처럼 이 두 명은 모두 명문집안의 후예이면서, 그들은 또한 당시의 미남자였다. 육항은 서생의 이미지로 풍도가 뛰어나, "서생배대장(書生拜大將)"이라고 불리웠다. 당연히 유장(儒將)이다. 양호는 키가 7척3촌에 이르러 키도 크고 잘 생겼다. 평소에는 장포를 입고 멀리서 보면 그냥 백면서생같다. 그러나, 그들은 각각 동오와 서진에 속했고, 모두 양국의 동량지재이다. 그리고 양국의 대체불가능한 장군이고 관직이 삼공(三公)에 이른 인물들이다. 이렇게 그들은 적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났다. 전쟁터에서 생사를 걸고 싸우는 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272년에 저명한 "서릉지전"이 발발한다. 육항은 소수로 다수를 이겼고, 양호에 완승을 거둔다. 육항의 동오에서의 지위는 날로 중요해진다. 그러나 양호는 이로 인하여 강등되었다. 이를 보면, 이 전쟁이 양국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전쟁으로 인하여 쌍방은 피차에 대한 견해를 바꾸게 된다. 쌍방은 모두 상대방이 있으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긴다. 이로 인하여 양국은 이후 여러 해동안 평안했고, 두 사람은 모두 전후로 사망한다.


다만, "서릉지전"이후에도, 양국의 적대적인 전투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양국의 전투는 결국 육항과 양호의 지혜를 다투고 용맹을 다투는 것으로 나타났다. 왜냐하면, "서릉지전"의 실패로, 양호는 전쟁으로 육항에게 승리하려면 그로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반드시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워야 했다. 그리하여 양호는 보보위영(步步爲營)으로 강동의 전략요지를 이용하여 5개의 성을 쌓는다. 이때부터 양대모사의 장기적인 대항이 시작된다. 양호는 한편으로 근거지를 기초로 바깥으로 한걸음 한걸음 펼쳐나가면서 비옥한 토지를 점거하고, 우대정책을 실힝하여, 오나라 군민들 중에서 어떤 사람이 투항을 해오면, 일률적으로 우대를 해주었다. 재능이 있으면 고관을 주고, 나머지에게는 일률적으로 상을 내렸다. 양호의 이 방식은 아주 효과적이었다. 일시에 동오에서 서진으로 투항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육항도 자연히 보통은 아니었다. 상응하는 대책으로 서진의 군심을 뒤흔든다. 이렇게 쌍방은 대치상태로 접어든다.


바로 두 사람이 장기간 지혜와 용기를 다투는 과정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 속에 위대한 이미지를 쌓게 된다. 피차간에 서로를 존경한다. 오늘날의 말로 하자면 서로의 팬이 된다. 모두 상대방의 모략에 감탄한다. 당연히 당시의 대결국면에서 서로 같이 술을 마시거나, 마음은 터놓고 얘기할 수는 없다. 그저 우의의 씨를 서로의 마음 속에 심을 뿐이었다. 이때부터 두 사람은 작전을 하면 모두 상대방에게 통지하고, 돌연한 급습을 한 적은 없으며 암중으로 기습한 적도 없다. 쌍방의 가족은 설사 포로로 잡히더라도 절대로 상처입히지 않는다. 한번은 양후이 수하가 두 명의 변경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붙잡아 온다. 물어보니 오나라군대의 대장의 아이였다. 양호는 즉시 사람을 시켜 돌려보내라고 명령한다. 양호의 부대는 오나라국경내로 들어가서 논밭의 곡물을 거두어 군량미로 쓰는 경우가 있는데, 매번 수확한 양에 따라 비단으로 상환했다. 양호는 자주 부대를 모아서 강면일대에서 사냥을 했는데, 범위는 왕왕 서진국경내로 한정했다. 만일 금수가 먼저 오나라사람에게 상처를 입은 후에 진나라병사들에게 붙잡히면, 양호는 일률적으로 돌려보내도록 명령했다. 바로 이런 심리상태로 양국의 국경에서 그들은 평화롭게 같이 살았고, 놀라울 정도로 조용했다.


양호의 이런 방식은 자연히 육항이 그를 존경하게 만든다. 일찌기 여러번 사람들 앞에서 양호의 덕행과 도량을 칭찬한 바 있다. "비록 악의, 제갈공명이라 하더라도 그보다 못할 것이다." 비록 양군의 총사령관인 양호와 육항간에는 교류가 없었지만, 양군의 교류는 아주 많았다. 한번은 진나라군대의 사자가 내방했을 때 육항은 양호의 일부 상황을 자세히 물어본다. 일시적으로 아끼는 마음이 솟아나서 두 사람이 현실적인 원인으로 함께 모여서 술을 마시고 얘기를 나누며 노래할 수 없다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육항이 사자에게 묻는다: "너희 총사령관 양호의 주량은 어느 정도인가?" 사자가 대답한다: "우리 총사령관의 주량은 괜찮은 편입니다. 다만 좋은 술만 마십니다. 일반적인 술은 마시지 않습니다." 육항은 그 말을 듣고 즉시 수하에게 술 한병을 가져 오게 해서 말한다: "이것은 내가 오랫동안 보관해왔던 좋은 술이다. 당신이 가져가서  당신들 총사령관에게 맛을 보시게 해라. 육모가 친히 담은 것이라고 말해주면서, 이것으로 그가 사냥물을 돌려준 인정에 대한 감사인사라고 말해달라."


사자가 군영으로 돌아온 후, 양호에게 자세하 방문상황을 보고하자, 양호는 술을 들도 크게 웃으며 말한다: "나를 아는 사람은 육항이로다." 그러면서 두껑을 열고 바로 마시려 한다. 그러자 부하가 급히 앞으로 나서서 말린다: "이 술에 혹시 장난을 졌을지도 모르니, 도독께서 먼저 마시지는 마십시오." 양호는 크게 웃으며 말한다: "육항이 독약이나 타는 소인이겠느냐? 너희가 걱정이 너무 많다." 그리고 술병을 들어 말리는 것도 듣지 않고 고개를 들어 깨끗이 다 마셔버린다.


한번은 육항이 병이들어 오랫동안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사자를 양호에게 보내어 약을 구한다. 양호는 그 말을 들은 후 육항의 병세를 자세히 물어보고나서 약을 정성껏 골라서 수하에게 신속이 약을 보내주라고 한다. 그러면서 말한다: "이는 내가 최근에 스스로 배합한 약이다. 아직 먹어보지 않은 것인데, 당신이 병이 났다는 말을 듣고 먼저 당신에게 보내는 것이다." 육항의 부하도 역시 약에 장난을 쳤을까 의심하여 육항에게 급히 먹지말것을 권한다. 그러나 육항은 믿어의심치 않으며 말한다: "양호가 어찌 남을 독살하는 자이겠는가" 고개를 들어 마셔버린다. 다음 날 육항의 병은 완쾌된다. 사람들이 속속 그를 찾아와 경하한다.


육항과 양호의 이런 기이한 관계는 나중에 동오의 후주 손호(孫皓)의 귀에도 들어간다. 손호는 당연히 이해못했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어 육항을 질책한다: 육항은 온 사람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자그마한 마을이나 도시도 신의가 없을 수는 없다. 하물며 큰 나라에서야. 신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바로 양호의 덕을 돋보이게 할 뿐이니, 양호에게는 아무런 해가 없을 것이다." 손호는 그 말을 듣고 할 말이 없었다.


바로 두 위대한 영웅이 서로를 아끼었기 때문에, 서진과 동오 양국은 그들이 살아있는 동안이 큰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 비록 서진조정에서 여러번 양호에게 남정하도록 재촉했지만, 양호는 항상 시기가 성숙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병력을 동원하지 않았다. 실제로 우리는 이렇게 상상해볼 수 있다. 양호는 차마 육항과 무기를 맞들고 싸우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같다. 왜냐하면 일단 전쟁을 일으키면 둘 중 하나는 패배해야 한다. 이는 누구도 원치 않는 결과이다. 이렇게 하여 육항의 일생동안의 전설은 완성되지만, "왜 하늘은 이 양호를 낳고 다시 육항을 낳으셨습니까"라는 한탄은 나오지 않았다. 274년에 이르러, 육항이 병사하고 양호는 비로소 동오를 정벌할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양호 자신이 죽을 때까지 그는 친히 병력을 이끌고 동오를 토벌하러 나서지 않았다. 두 명의 위대한 모사는 지하에서도 얘기를 오랫동안 나눌 거리를 마련했다. 이렇게 하여 삼국시대 말기의 위대한 전설이 쓰여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