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중종33 상관완아(上官婉兒)의 묘지명(墓誌銘): 드러난 역사의 진실 글: 오붕(吳鵬) 2022년 4월 28일, 당나라의 상관완아묘지명이 섬서고고박물관에서 처음으로 일반대중에게 전시되기 시작했다. "건괵재상(巾幗宰相)"이라고 불리던 상관완아의 신세내력은 수수께끼로 휩싸여 있으나, 재주와 학문은 남자들에 못지 않았고, 운명은 기구했다. 그녀의 조부인 상관의(上官儀)는 무측천을 축출하려다가 죽임을 당했으나, 그녀는 무측천의 심복이 된다. 그녀는 정치적으로 이당황실의 편에 섰으나, 오히려 당시 임치왕(臨淄王)이던 당현종(唐玄宗) 이융기(李隆基)에게 피살당한다. 전통적인 정사와 세상에 전해져 내려오는 야사에서 상관완아의 본모습은 가려져 있었다. 새로 출토된 묘지명은 아마도 상관완아에 대한 이미지를 역사에 가깝게 환원시켜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여성참정의 역사적 진전을 이루었고, .. 2022. 5. 24. 무유서(武攸緖): 무측천의 가족중 유일하게 화를 피한 인물. 글: 덕혜(德惠) 무주(武周)왕조를 건립한 무측천은 중국역사상 유일한 여황제이다. 그녀는 재위시에 불교를 대거 숭상했고,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 전후로 적지 않은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였다. 무측천이 살아있을 때 무씨가족에게 대거 작위와 상을 내렸으나, 그녀가 죽은 후 무씨세력은 차례로 제거당한다. 당시 무씨가족중 세력이 가장 컸던 사람은 무삼사(武三思)이다. 그는 양왕(梁王)에 봉해졌고, 그의 아들 무숭훈(武崇訓)은 안락공주(安樂公主)와 결혼한다. 그러나 신룡3년(707년), 부자는 모두 처형당한다. 태평공주(太平公主)의 남편인 무유기(武攸曁)마저도 묘가 파해쳐지고, 둘 사이에 낳은 아들 둘도 살해당한다. 나머지 봉상(封賞)을 받았던 무씨가족들은 속속 강등당하거나 탄압받았다. 다만, 무씨가족.. 2022. 4. 11. 당중종(唐中宗) 이현(李顯): 4명의 여자들 손아귀에 쥐어지낸 황제 글: 청림지청(靑林知靑) 당나라때의 황제들 중에서 이현은 사람들이 무시하는 인물이다. 범문란(范文瀾) 선생은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했다: 당중종은 당고종보다 더욱 유약하다. 이 말을 보면 범문란 선생은 이현도 무시했지만, 이치(李治, 당고종)도 멸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현은 후세인들이 "육미지황환(六味地黃丸)"으로 불린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황제일 뿐아니라, 부친, 동생, 아들, 조카가 모두 황제이다. 더더욱 불가사의하게도 그의 모친 또한 황제이다. 바로 역사상 유일한 여황제 무측천이다. 아마도 이런 인물은 역사상 유일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의 부친과 동생 이단(李旦)도 역시 '육미지황환'이라고 말한다. 다만 만일 당나라 황제세계표를 본다면, 그가 이런 칭호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 2021. 5. 24. 태평공주(太平公主): 지나친 사랑은 사람을 망친다. 글: 청림지청(靑林知靑) 공주당년욕점춘(公主當年欲占春) 예전에 태평공주는 봄날까지도 독차지하고 싶어했지. 고장대사압성갑(故將臺榭壓城閘) 그래서 넓은 땅을 차지해서 온갖 건물을 지었고, 장안성을 압도했다. 욕지전면화다소(欲知前面花多少) 지금까지도 꽃을 보면서 왔는데, 앞으로 얼마나 먼데까지 꽃으로 뒤덥혀 있을까 직도남산불속인(直到南山不屬人) 종남산에 이를 때까지 이 땅은 다른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모두 태평공주의 땅이다 태평공주를 묘사한 시 중에서 한유(韓愈)의 이 시는 가장 유명한 것일 것이다. 시가 비록 짧지만, 이 여인이 점유한 땅이 얼마나 넓은지, 그녀가 지은 정자 누각이 얼마나 장관인지, '욕점춘'이라는 세 글자로 다 표시했다. 그녀의 광망한 심리상태와 사치와 허영을 엿볼 수 있다. 단순한 몇 마.. 2020. 7. 15. 포스트 무측천시대의 여성정치참여현상 글: 정아여(鄭雅如) 705년 2월, 여황 무측천(武則天)이 병이 들어 상양궁(上陽宮)에 드러누웠다. 재신(宰臣) 장간지(張柬之)등은 그 기회를 틈타 여황의 총애를 받아 권세를 쥐고 있던 장역지(張易之) 형제를 주살하고, 여황을 퇴위하도록 핍박하여 태상황(太上皇)으로 밀어내고, 황태자를 .. 2019. 11. 15. 당나라때 사람들은 "무측천시대"를 언제부터 언제까지로 보았는가? 글: 독사품생활(讀史品生活) 모두 아는 바와 같이, 무측천의 인생궤적은 여러 중요한 시간들이 있었다. 638년 입궁하고, 649년 감업사로 출가하였으며, 655년 황후에 오르고, 674년 천후(天后)에 올랐으며, 다시 683년 임조칭제(臨朝稱制)하고, 690년에는 처음으로 황제를 칭한다....이렇게 말할 .. 2019. 5. 28. 이전 1 2 3 4 ··· 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