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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중종33

역사상의 무측천: 공어심계(工於心計), 심한수랄(心狠手辣) 글: 고회민(高會民) 무씨(武氏), 통상적으로 무측천(武則天) 혹은 무후(武后)라고 칭하며, 당중종, 당예종때 황태후로 임조칭제(臨朝稱帝)하는 기간동안 이름을 "무조(武曌)"라 고친다. 그녀는 중국역사상 유일하게 군권(君權)을 장악하여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여황제이다. 무측천은 병주(.. 2015. 1. 14.
딩니라때 사람들은 상관완아(上官婉兒)를 어떻게 평가했는가? 글: 조염(趙炎) 차문도장리(借問桃將李), 상란욕하여(相亂欲何如) 이것은 무주(武周)시대 여관 상관완아의 응제시(應制詩)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1300년이 지난 오늘날, '당고소용상관씨묘(唐故昭容上官氏墓)'가 발굴되면서, 우리는 마찬가지로 묻고 있다. 상관완아, 도대체 어떤 여인인가?.. 2014. 4. 4.
당나라의 후궁관리제도 글: 문사열독(文史悅讀) 이런 말이 있다. 후궁분대삼천(後宮粉黛三千). 실제로, 역대후궁의 궁녀의 인원수는 이 숫자를 훨씬 뛰어넘었다. <수서>에 땨르면 수양제때 궁녀의 수는 십만에 이르렀다고 한다. 당나라가 건립된 후 초기에는 국력이 약하며, 인심을 다독이고, 비용을 줄.. 2014. 2. 10.
당나라 7명의 황제가 황후를 두지 않은 이유는? 글: 노군후(老君猴) 취처납첩(娶妻納妾)은 황제의 궁정생활에서 정상적인 현상이다. 황후는 황제의 정처(正妻)로서 후궁의 여러 비빈들의 주인이고, 황제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그 영향력으로 보면 절반의 황제라고 말할 수 있다. 황제에게 몇 명의 부인. 비빈, 세부(世婦), 어녀(御.. 2014. 1. 29.
무측천은 임종전에 무엇을 하였는가? 글: 복녕객(福寧客) 생명의 마지막 순간에, 무측천의 심정은 처량했을 것이다. 그녀가 여황제로 있을 때, 모든 것은 더할 나위없이 신비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무측천은 자신이 하늘과 통한다고 여겼고, 할 수 없는 일이 없다고 여겼다. 어찌된 일인지는 몰라도, 사서에서는 무측천이.. 2013. 12. 8.
"상관완아묘(上官婉兒墓)"에 대한 6가지 의문 글: 배광휘(裴光輝) 1. 장지(葬地)에 대한 의문 상관완아는 생전에 당중종의 소용(昭容), 즉 이현의 비빈이다. 경룡4년 육월 이일(710년 7월 3일) 이현은 위후에게 신룡전에서 독살당한다. 향년 55세이다. 십일월 당중종을 정릉(定陵, 지금의 섬서성 부평현 서북 15리에 있는 용천산 남록)에 장.. 2013. 1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