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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친왕28

도광제(道光帝)는 왜 60이 되도록 후계자를 정하지 못했을까? 글: 소몽(蕭夢) 도광제는 60세가 될 때까지 비밀입저(秘密立儲)를 하지 못했고, 선택을 망설였다. 그 이류를 알아보면 실로 가슴아프다. 1. 앞의 세 명의 황자가 전후로 죽었다. 도광제는 모두 9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장남 황장자(皇長子) 혁위(奕緯)는 가경13년에 태어났고, 11살때 패륵(貝.. 2018. 9. 14.
함풍제는 왜 숙순(肅順)을 중용했을까? 글: 왕개새(王開璽) 북경사범대학 역사학원 교수 역사학자들은 이런 말을 많이 한다. 재원(載垣), 단화(端華), 숙순등은 북경에 있을 때, 함풍제가 중시한 대신들이다. 함풍제를 따라 열하(熱河)로 도망친 후에는 다른 왕공대신들도 없고하니, 재원등 그 중에서도 특히 숙순이 함풍제의 신.. 2017. 3. 29.
[황자쟁위술] 이세탈인술(以勢奪人術) 적장신분패(嫡長身分牌) 동치제편(1) 함풍제는 황위계승자문제에 대하여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아들이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즉, 서태후(자희태후)가 낳은 재순(즉, 나중의 동치제)뿐이다. 그러므로, 옹정제때 만든 비밀건저(秘密建儲)도 실시할 필요가 없었다. 함풍제는 조부인 가경제처럼 후계자를 느긋하.. 2015. 10. 11.
[황자쟁위술] 투량환주술(偸梁換柱術) 후전황지패(后傳皇旨牌) 서태후편 청나라말기 중국을 반세기동안 통치했던 서태후 예허나라씨(葉赫納拉氏)는 원래 수녀(秀女)선발로 황궁에 들어가 함풍제(咸豊帝)를 모셨다. 그녀는 총명하여 점차 함풍제의 총애를 받는다. 마침 황후는 아들을 낳지 못하여, 하마터면 함풍제는 대가 끊어질 뻔한다. 함풍제가 아들을 학수.. 2015. 10. 11.
청나라황실(4): 황족은 실질적으로 어떻게 구분되는가? 글: 귤현아 청나라때의 종실은 제도적인 구분이 있다. 즉 각라, 종실로 나뉘고, 다시 종실은 원지종실, 근지종실, 근파종지등으로 나뉘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상의 구분은 앞에서 설명했다. 그외에 청나라황족은 실질적으로 구분할 수도 있다. 아래에서 설명하기로 한다. 첫째, 소위 "세직.. 2014. 7. 17.
인삼장원(人蔘狀元) 옹동화(翁同龢) 글: 유계흥(劉繼興) 옹동화는 청나라말기의 역사에서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청나라 함풍6년(1856년)에 장원급제하여 한림원수찬이 된다. 그후에 동치제, 광서제 두 황제의 스승이 되었다. 형부,공부,호부상서, 협판대학사, 군기대신, 총리각국사무대신등의 직위를 지낸다. 당시의 사람들.. 2014. 6.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