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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릉10

소태후(蕭太后): 무덤까지 혼외 애인을 데려가다 글: 장계합(張繼合) 1004년 겨울, 북풍이 몰아칠 때 밀물처럼 요나라병사들이 물려왔다. 유명한 소태후 소작(蕭綽)과 그녀의 친아들 요성종(遼聖宗) 야율융서(耶律隆緖)는 함께 전투에 참가한다. 이번에 주도적으로 전쟁을 일으킨 이유는 바로 실지수복(失地收復)이다. 즉 송나라의 손에서 .. 2018. 1. 31.
한무제(漢武帝) 무릉(茂陵): 도굴꾼들이 가장 탐내는 능묘중의 하나 글: 호북위성TV <대게비(大揭秘) 도굴을 얘기하자면, 중국고대의 장례습속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후장(厚葬)은 중국장례문화의 가장 전형적인 특징이다. 대량의 보물을 땅 속에 묻는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재물을 탐하는 자들이 노리게 되고, 이로 인하여 중국특색을 지닌 '도굴문화.. 2016. 12. 18.
무측천의 4가지 최고기록 글: 서문(瑞文) 기록은 경기장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다른 분야에도 여전히 각양각색의 기록이 존재한다. 중국통치자중의 하나의 특수한 사례로서 무측천 1인은 4가지 황제중의 기록을 세웠다. 국내에는 그 어느 황제도 깨지 못했을 뿐아니라, 세계적인 범위로 보더라도 여전히 기록.. 2015. 2. 10.
무측천은 임종전에 무엇을 하였는가? 글: 복녕객(福寧客) 생명의 마지막 순간에, 무측천의 심정은 처량했을 것이다. 그녀가 여황제로 있을 때, 모든 것은 더할 나위없이 신비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무측천은 자신이 하늘과 통한다고 여겼고, 할 수 없는 일이 없다고 여겼다. 어찌된 일인지는 몰라도, 사서에서는 무측천이.. 2013. 12. 8.
무측천의 건릉도굴시 나타난 괴현상 글: 예방육(倪方六) 무측천과 그녀의 남편인 당고종 이치가 합장된 묘인 건릉(乾陵)에 대하여 최근 매체에서 보도가 있었다. 전해지는 바로는 관련 전문가가 최근 들어, 국가문물국, 섬서성문물국, 건릉박물관등 부분에서 건릉의 문화유적을 발굴할 것인지를 놓고 다시 연구하고 .. 2012. 1. 13.
무측천과 후계자문제 글: 성공인(誠公人) 무측천은 말년에 아주 골치아픈 문제를 떠안게 된다. 그것은 바로 유산을 계승할 후계자문제이다. 그녀의 유산은 바로 그녀가 피바람을 겪으면서 건립한 대주왕조의 황제 자리이다. 여인으로서 그녀는 중국역사상 유일한 여황제이고, 이 기업은 정말 쉽지 않게 얻은 것이다. 당태.. 2011. 7.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