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릉10 건릉(乾陵): 당고종과 무측천의 합장묘 글: 손건화(孫建華) 세계에서 어느 황제의 묘가 가장 도굴하기 힘드냐고 묻는다면, 아무런 의문없이 당고종과 무측천의 "만년수역(萬年壽域)", 건릉을 가리킬 것이다. 건릉은 냉병기시대에 도검으로 파본 적이 있고, 열병기시대에는 기관총과 대포를 동원한 적도 있다. 1200여년동안, 도굴을 시도한 사.. 2009. 11. 23. 무측천(武則天)이 무자비(無字碑)를 남긴 이유는? 글: 침묵과담(沈默寡談) 산서성 건현(乾縣)의 현성 북쪽에 있는 양산(梁山)에 위치한 건릉(乾陵)은 당고종 이치와 여황제 무측천의 합장묘이다. 중국역대제왕의 능원중 유일한 부부황제 합장묘이다. 묘앞에는 두 개의 거대한 석비(石碑)가 세워져 있는데, 서쪽에 있는 것은 "술성기비(述聖記碑)"로 무측.. 2009. 2. 12. 신룡정변(神龍政變): 무측천의 최후의 나날 (II) 5 소위 "남총(男寵)"은 바로 면수(面首)이며, 자신의 몸을 가지고 권세를 가진 여자를 기쁘게 하는 남자를 말한다. 무측천도 정상적인 생리적 욕구가 있고, 거대한 심리적 압력을 받았다. 복잡한 정무를 처리한 후에는 그녀도 안위가 필요했다. 누군가 곁에 있어주어야 했다. 나이가 들면서, 무측천은 권.. 2008. 10. 8. 건릉(乾陵, 측천무후, 당고종의 합장묘)에 얽힌 이야기 (2) 건릉은 도굴된 적이 있는가? 1960년, 몇몇 농민이 폭약으로 돌을 깨다가, 부주의로 무척천의 묘도입구를 깬 적이 있다. 이 묘도입구는 참으로 국가의 절대기밀사항이었다. 도굴군들이 천여년간 찾을래야 찾을 수 없었던 것이었고, 황소(黃巢)가 40만대군을 시켜 수년을 팠지만 파내지 못했던 것이었다. .. 2006. 10. 20.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