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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족10

서하(西夏)의 자칭국명 "방니정(邦泥定)" 및 "백상국(白上國)"은 어떤 의미였을까? 글: 오천지(吳天墀) 서하정권의 건립자인 척발원호(拓拔元昊)는 일찌기 북송에 보낸 국서에서 스스로 자신의 나라를 "방니정(邦泥定)"이라 칭한 바 있다. 그 내용은 권485 에 나온다. 그리고 서하는 스스로 "백상국(白上國)"이라 칭했고, 실물증거도 있다. 예를 들면, 감숙성 무위현문화관에 보존된 에는 음각으로 한문을 새겼는데, 첫행의 표제가 "백상호국사양주감응탑지비문(白上護國寺感應塔之碑文)"이라고 되어 있다든지, 1975년 9월 영하박물관은 은천시 서하란산 동록의 서하제릉구에서 2호릉(하인종의 능)의 동서비정(碑亭)을 정리했는데, 이미 부서진 서하문(西夏文) 전체비액(篆體碑額)의 위에 서하문전체와 병합해서 번역된 한문(漢文)은 바로 "대백상국호성성덕지의황제수릉지문(大白上國護城聖德至懿皇帝壽陵誌文)"이라는 .. 2023. 6. 8.
오호십육국의 오호(五胡)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글: 희랄인(嘻辣人) '오호십육국'은 혼란의 시기이다. 필자는 도대체 어느 16개국을 말하는지 항상 헷갈린다. 다만 '오호'가 나중에 어디로 갔는지에 대하여는 호기심이 많다. 265년, 사마염이 위원제를 핍박하여 선양하게 하고 스스로 황제를 칭하고 서진(西晋)을 건립한다. 291년, 서진에 '.. 2018. 11. 20.
서하황제(西夏皇帝): 수명은 짧은데 재위기간은 길다 글: 풍현일(馮玄一) 서하는 당항족(黨項族)이 건립한 국가이다. 당항족은 강족(羌族)의 한 갈래이며, 위진남북조시기에 소위 "오호(五胡)" 가운데 강족이 있었다. 16국의 하나인 후진(後秦)은 바로 강족이 건립한 정권이다. 일찌기 당나라말기에 당항족은 일부 할거세력을 건립하기 시작한.. 2018. 1. 19.
염민(冉閔): 민족영웅인가, 살인마왕인가? 글: 초상풍어(草上風語) 서진(西晋) 말기의 중국북방지구는 한 마디로 말해서: 난(亂)이었다. 먼저 내란(內亂)이다. 사마(司馬)씨의 자식들은 한대 한대 내려가면서 더 못해졌지만, 권력욕은 한대 한대 내려가면서 더욱 커졌다. 16년에 걸친 "팔왕의 난"은 결국 진왕조의 정기신(精氣神)을 .. 2016. 7. 9.
비장군 이광(李廣)이 평생 제후에 봉해지지 못한 이유는? 글: 진사황(秦四晃) 한나라장수 이광은 농서 성기(成紀), 즉 지금의 감숙성 태안 사람이다. 사마천은 그의 조적은 기실 섬서 흥평이라고 했다. 이씨가족의 조상은 전투를 잘 했고, 활쏘기는 가전의 절기였다. 진나라때 유명한명장을 배출하는데,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진나라가 연나라를 .. 2015. 3. 26.
황건적의 난 이후의 5년(2): 소란에서 내전으로 '황건'이후의 5년은 먼저 소란에서 내전으로 변화하는 5년이다. 동한의 변경지구와 소수민족의 반란(어떤 사람은 의거라고도 부르나 그건 각자 알아서 붙이면 될 일이다)은 건국이래 계속 있어왔다. 마원(馬援)의 이야기가 비교적 유명하다. 상대적으로 말해서, 전삼조의 상황은 기본적으.. 2014. 12. 12.
곽거병은 어떻게 흉노에 승리할 수 있었는가? 글: 몽고창랑 흉노는 유목민족이다. 어린아이도 어려서부터 말 등에서 자랐고,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했다. 중원의 한병(漢兵)과 비교하면 속도가 빠르고, 전투력이 강했다. 동시에, 흉노는 먹는 것도 육식위주였다. 그래서 말린 소고기 양고기를 군량으로 삼았다. 말린 소고기, 말린 양고.. 2013. 6. 10.
왜 당나라에서 중화문명의 전성기를 이루었는가 글: 정만군(程萬軍) 중국문명의 가장 휘황한 역사를 얘기하면, 지구인들은 모두 당왕조를 꼽는다. 의문의 여지없이, 당나라때의 중화문명은 봉건문명의 세계 최고봉에 올랐다. 만일 봉건문명의 최고봉을 꼽는다면 그 어느 국가도 감히 중국의 당왕조의 중화문명을 뛰어넘는다고 말하기 .. 2012. 3. 29.
요익중(姚弋仲) 오호십육국시대의 강(羌)족 영웅 글: 노위병(路衛兵) 오호십육국시대라는 이 특수한 역사시기에, 영웅은 많이 배출되었고, 정치가도 많이 배출되었다. 강족인 요익중(姚弋仲)이 바로 그 중의 한 명이다. 강(羌). 지금까지도 여전히 존속하고 있는 소수민족은 오호십육국시대에 그들의 역사상 유일한 정권을 수립한다. 바로 후진(後秦).. 2010. 8. 3.
강성했던 모용씨(慕容氏)는 왜 북방을 통일하지 못하였는가? 글: 노위병(路衛兵) 선비족(鮮卑族)이 중원에 들어온 것은 흉노족(匈奴族)과 갈족(羯族)의 뒤를 이은 것이다. 그러나 선비족은 부락이 아주 많고, 분포도 아주 넓었기 때문에, 시작은 비록 늦었지만, 중원에서 할거해서 차지한 기간은 가장 길었다. 가장 먼저 굴기한 모용씨는 한때 북방에서 가장 강성.. 2009. 6.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