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29 촉한(蜀漢)을 멸망으로 몰아간 5명의 반도(叛徒) 글: 정회역사호(情懷歷史號) 219년, 유비는 조조를 격패하고 한중(漢中)을 차지한다. 같은 해 유비는 유봉(劉封), 맹달(孟達)을 파견하여 상용(上庸)등의 군(郡)을 차지한다. 그때에 이르러 촉한은 형주(荊州)와 익주(益州)를 차지하고 있었으니, 촉한의 전성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관우가 부주의로 형주를 잃고, 이릉전투에서 패한 이후 촉한은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그리하여 삼국중 가장 먼저 멸망한 나라가 된다. 그때 5명의 반도는 자연히 촉한이 급속히 구렁텅이에 빠지도록 만든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1. 미방(麋芳) 미방(생졸년 미상), 자는 자방(子方)이고, 동해군(東海郡) 구현(胊縣)(지금의 강소성 연운항시) 사람이다. 유비의 미부인의 남자형제이다. 미방은 원래 서주목(徐州牧) 도겸(.. 2023. 4. 20. 하후패(夏侯覇)의 인생궤적 글: 흑미애여행(黑米愛旅行) 삼국시대 여러 명장들 중에서, 하후패는 비교적 특별한 존재이다. 먼저, 그는 하후연(夏侯淵)의 차남이고, 조씨(曹氏)와 하후씨(夏侯氏)의 관계 및 하후연이 전장에서 사망하여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공로로 인하여, 하후패는 조조(曹操), 조비(曹丕), 조예(曹叡)시기에는 비록 크게 뜨지도 않았지만, 조상(曹爽)이 집권한 기간동안에는 점차 중용되게 된다. 다음으로, 장비(張飛)의 처는 하후패의 당매(堂妹)이다. 그래서 그는 촉한의 후주인 유선(劉禪)의 외숙이 된다. 고평릉사변후 사마의(司馬懿)가 군대내의 조씨세력을 몰아낼 때, 하후씨는 가장 먼저 제거대상이 된다. 우장군(右將軍) 하후패는 그리하여 전선에서 촉한으로 도망친다. 하후패의 이런 인생경력은 삼국시대에 유일무이한 경우.. 2022. 11. 29. "이사쟁공(二士爭功)": 위나라가 촉과 오를 멸망시킨 후 왜 두 공신의 다툼이 일어났을까? 글: 역사대학당(歷史大學堂) 삼국시대 말기에 사마소(司馬昭)가 주도한 조위(曹魏)가 촉한(蜀漢)을 멸망시키는 전쟁이 성공한 후, 종회(鍾會)와 등애(鄧艾) 두 공신간에 서로를 공격하는 '이사쟁공'의 비극이 일어난다. 이 이야기는 후세에 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고, 오늘날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그뿐아니라, 사마소의 아들인 진무제(晋武帝) 사마염(司馬炎)이 주도한 서진(西晋)이 동오(東吳)를 멸망시키는 전쟁에 성공한 후, 다시 한번 두 공신 왕혼(王渾), 왕준(王濬)간에 서로 반목하여 원수가 되어 다시 '이사쟁공'의 일막이 벌어진다. 유사한 상황이 유사한 과정을 거쳐서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왜 사마씨가 주도하는 촉과 오를 멸망시키는 전쟁이 성공한 후, 항상 공신.. 2022. 7. 26. 촉한(蜀漢)에서 강유(姜維)의 북벌을 반대한 세 사람은..... 글: 구개명(瞿凱明) 제갈량은 생전에 계속 북벌을 주장했고, 정사기록에 따르면 전후로 5회에 걸쳐 북벌을 진행한다가 오장원에서 병사한다. 그는 진정 "국궁진췌(鞠躬盡瘁), 사이후이(死而後已)"를 실천했다. 제갈량의 사후, 강유는 제갈량의 계승자로서 계속 북벌을 주장하고 한실의 부흥을 도모했다. 그러나, 강유의 북벌에 대하여 3명이 강력하게 반대한다. 그리고 이 세 사람은 촉한에서 아주 중요한 사람들이다. 비록 그들이 강유의 북벌을 강력하게 막았지만, 강유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고 북벌을 감행한다. 강유의 북벌을 반대한 첫번째 인물은 비위(費褘)이다. 비위는 관직이 대장군에 이른다. 보정(輔政)기간동안 강유가 매번 북벌할 때마다 비위는 제한한다. 강유에게 제공한 병력은 만명을 넘지 않았다. 비위는 강유에게.. 2021. 12. 1. 유비는 익주(益州)를 취한 후 한중(漢中)을 형주(荊州)보다 중시했다. 글: 지역사(知歷史) 유비는 214년 익주를 취한다. 그후 215년 제1차 형주위기가 발생한다. 즉 손권이 유비에게 형주를 돌려달라고 한 것이다. 당시 조조는 한중의 장로(張魯)에 군사행동을 취한다. 유비는 익주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우려하여, 동오의 요구를 받아들여 형주를 재분배하고, .. 2020. 4. 2. 촉한(蜀漢)이 멸망한 후 유선(劉禪)의 아들 7명은 어떻게 되었는가? 글: 정회역사(情懷歷史) 유선(207-271)은 형주 강릉 사람으로, 촉한 회제(懷帝(재위223-263)이다. 후주(後主)라고도 부른다. 자는 공사(公嗣)이고, 아명은 아두(阿斗)이다. 촉한 소열제 유비의 아들이다. 모친은 소열황후 감씨(甘氏)이며, 삼국시대 촉한의 제2대황제이다. 재위41년으로 삼국시기.. 2019. 7. 5.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