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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희당(三希堂) 역사상 삼희당은 자금성 양심전(養心殿)내에 있었다. 삼희당이라고 이름을 붙인 이유는 건륭(乾隆)이 삼희(三希, 세 가지 희귀한 물건)라고 불렀던 왕희지의 <<쾌설시청첩(快雪時晴帖)>>, 왕헌지의 <<중추첩(中秋帖)>>, 왕순의 <<백원첩(伯遠帖)>>의 세가지 서예진품을 보관하였.. 2006. 1. 20.
천년고수위의가(千年古樹爲衣架) 명나라때의 양신(楊愼)은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이름이 높았다. 한번은 그가 연못에서 수영을 하고 있다가, 현령이 지나가는데, 미처 피하지를 못하였다. 현령이 사람에게 명하여 양신의 옷을 오래된 나무에 걸게 한 후에 양신에게 말했다. "내가 대자(對子)를 낼 터이니, 네가 제대로 댓구를 맞춘다면 .. 2006. 1. 15.
녕박(寧铂): 중국제일신동의 출가 중국은 1978년에 천재소년들을 모아서 중국과기대학에 소년반 대학생을 모집한 바 있다. 당시의 소년반 천재아동들은 어떤 사람은 출가하고, 어떤 사람은 정신병에 걸렸고, 어떤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1978년에는 모든 중국 신문, 잡지, 티비는 녕박을 보도했다. 보도에 의하면 녕.. 2006. 1. 15.
장작림(張作霖), 장학량(張學良)의 가족 1. 장작림의 부인. 첫째부인 조(趙)씨. 장녀 관영(冠英), 장남 학량(學良), 차남 학명(學銘)을 낳았으며, 일찌기 사망했다. 둘째부인 노(盧)씨. 차녀 회영(懷英), 사녀 회경(懷卿)을 낳았다. 1974년 5월 천진에서 사망. 셋째부인 헌(憲)씨. 서로 감정이 맞지 않아 결혼후 얼마되지 않되어 집을 떠나 불문에 들어갔다. 넷째부인 허(許)씨. 삼자 학증(學曾), 사자 학사(學思), 삼녀 회동(懷瞳), 오녀 회희(懷曦)를 낳았다. 칠칠사변후 미국으로 이민갔다가 해방후에 중국으로 돌아왔다. 1976년 북경에서 사망. 다섯째 부인 수(壽)씨. 오자 학삼(學森), 육자 학준(學俊), 칠자 학영(學英), 팔자 학전(學銓)을 낳음. 여러 부인중 가장 총애를 받음. 능력있고, 총명하며, 학식이 있었음. 집안의 .. 2006. 1. 15.
항우(項羽)는 아방궁(阿房宮)을 불태웠는가? 당나라때 두목이 지은 <<아방궁부>>라는 시에는 "초나라 사람이 불을 붙이니, 아까워라 초토가 되었구나"라는 구절이 있고, 사마천이 지은 <<사기>>에는 "진시황은 함양에 사람이 많고, 선왕의 궁정이 작다고 생각하였다. "내가 듣기로 주문왕은 풍에 도읍을 정했고, 무왕은 호에 도읍.. 2006. 1. 13.
삼국시대의 삼대 신동 삼국시대에는 많은 신동(神童)들이 나타났으나, 이러한 신동들중 가장 뛰어난 자들은 모두 요절하였다. 그들은 조충(曹沖), 주불의(周不疑), 하후영(夏候榮)이다. 1. 조충 삼국신동중 가장 유명한 것은 조충이다. 이것은 최근 몇십년간의 일이다. 그 이전까지는 가장 유명한 신동은 건안칠자중의 한 명.. 2006. 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