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삼희당은 자금성 양심전(養心殿)내에 있었다. 삼희당이라고 이름을 붙인 이유는 건륭(乾隆)이 삼희(三希, 세 가지 희귀한 물건)라고 불렀던 왕희지의 <<쾌설시청첩(快雪時晴帖)>>, 왕헌지의 <<중추첩(中秋帖)>>, 왕순의 <<백원첩(伯遠帖)>>의 세가지 서예진품을 보관하였다는 데서 유래한다.
<<쾌설시청첩>>
<<중추첩>>
<<백원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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