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범지(王梵誌): 가장 쉬운 당시(唐詩)
당나라때 시인들 중에 특이한 인물이 있다. 그는 시를 쓸 때 어려운 말도 쓰지 않았고, 가장 통속적인 표현으로 가장 쉬운 시를 썼다. 그는 언제 태어나고 언제 죽었는지, 평생 무슨 일을 했는지, 집안내력은 어떠한지조차도 수수께끼이다. 개략 17,8수정도의 시를 남겼고, 시종 정통문학에서는 배제되어 있었다. 심지어 의고학파(疑古學派)의 학자는 그의 존재 자체도 부정한다. 무제(無題) 오부유전시(吾富有錢時), 부아간아호(婦兒看我好) 아약탈의상(我若脫衣裳), 여오첩포오(與吾疊袍袄) 오출경구거(吾出經求去), 송오즉상도(送吾即上道) 장전입사래(將錢入舍來), 견오만면소(見吾滿面笑) 요오백합선(繞吾白鴿旋), 흡사앵무조(恰似鸚鵡鳥) 해후잠시빈(邂逅暫時貧), 간오즉모초(看吾即貌哨) 인유칠빈시(人有七貧時), 칠부환상보(七..
2021. 11. 5.
당선종(唐宣宗) 이침(李忱): 당나라 멸망의 최대 책임자일까?
글: 화운초(和運超) 당선종 이침이 즉위한 후, 자리를 공고히 하기 위해, 사람들을 회유하여, 이덕유(李德裕)에게 악의적인 보복을 진행하며, 그가 했던 것은 모조리 반배하며 회창(會昌)연간의 인원을 축소정비하는 책략을 바꾸어 버린다. 대중원년(847년) 하반기, 이부(吏部)에서 "회창4년에 주현 관내에서 감원했던 383명을 다시 증원했다"고 보고한다. 문학가인 마식(馬植)은 과거에 이덕유에게 중용되지 못했는데, 당선종은 그를 형부시랑으로 삼고, 염철전운사를 맡긴다. 취원식(崔元式), 위종(韋琮)등 신진관리도 대부분 이덕유가 있을 때는 중시되지 않던 자들이다. 위모(魏謨, 위징의 오대손, 대중후기에 서천절도사가 된다)같은 인물이 중용된다. 그는 일찌기 양여사(楊汝士), 이종민(李宗閔), 우승유(牛僧孺)등과..
2021. 9.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