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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당)

이구년(李龜年): 두보(杜甫)와 왕유(王維)가 모두 그를 그리워하는 시를 쓰다

by 중은우시 2020. 6. 13.

글: 임염청추(林炎淸秋)

 

왕유의 유명한 작품 <상사(想思)>의 또 다른 제목은 <강상증이구년(江上贈李龜年)>이다. 즉, 이구년에게 쓴 것이다. 두보도 <강남봉이구년(江南逢李龜年)>이라는 시를 썼다. 거기에 나오는 "정시강남호풍경(正是江南好風景), 낙화시절우봉군(洛花時節又逢君)"과 "원군다채힐(願君多採擷), 차물최상사(此物崔想思)"는 막상막하라 할 수 있다. 이구년이 도대체 누구이길래, 이렇게 큰 매력을 지니고 있었을까? 두 명의 대시인으로 하여금 그를 좋아하고 그를 그리워하여 시를 쓰게 만들다니.

 

이구년은 당현종(唐玄宗)의 어용악사(御用樂師)이다. 세사사람들은 그를 '악성(樂聖)'이라고 불렀다. 그는 성악, 기악, 작곡에 능했다. 음악천재라 할 수 있다. 이구년은 문화가 찬란한 시기에 태어났고, 또한 지음 당현종을 만났다. "이융기는 다재다능했고, 특히 음율(音律)에 능통했다." 개원성세에 백화제방하였으며 문예게는 자주 궁중에 모여 시를 짓고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하고 춤을 췄다.

 

여러 예술가들 중에서 당현종은 특히 이구년을 좋아했다. 이구년, 이팽년(李彭年), 이학년(李鶴年)의 삼형제는 역사에서 '모두 재능이 뛰어나 명성을 떨쳤다"고 하였다. 그중 이학년은 노래를 잘했고, 이팽년은 춤을 잘 췄다. 이구년은 음악에 모두 뛰어난 천재였다. 그는 당현종과 마찬가지로, 갈고(羯鼓)를 치는 것을 좋아했다. 당현종은 한때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대는 북채를 몇개나 부러뜨려 보았는가?" 이구년이 대답한다: "신은 50개를 부러뜨렸습니다." 그러자 당현종이 웃으며 말한다. "그대는 아직 나만 못하군. 나는 이미 세 상자를 부러뜨렸다네."

 

이구년은 일찌기 이백(李白)의 <청평악(淸平樂)> 세 수의 시에 곡을 붙여 노래한 바 있다. 그리고 여러번 악대를 지휘했다. 그는 당현종의 총애를 받았다. 당현종은 그에게 공후(公侯)의 귀족보다 큰 집을 선물하기도 했다.

 

당시의 기왕(岐王) 이범(李范)과 중서감(中書監) 최척(崔滌)등도 문예계의 인사였다. 한번은 이구년이 기왕부에 손님으로 갔는데, 금(琴)을 연주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즉시 이렇게 말한다: "진(秦)나라의 금소리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금을 연주하는 소리를 듣고는 바로 말했다. "초(楚)나라의 금소리입니다." 기왕은 사람을 시켜 확인하게 했더니 역시 그의 말대로였다. 기왕은 이구년에게 상을 내렸다. 그러나 이구년은 진귀한 보물은 신경쓰지도 않고, 그저 금을 들어 연주해보았다. 이를 보면 그가 얼마나 음악에 미쳐있었는지 알 수 있다.

 

여러 해가 지난 후 안사(安史)의 난이 일어난다. 당현종은 사천으로 피난가고, 이구년은 민간을 떠돌게 되며, 곤궁해진다. 예술을 팔아 생활하고 있었다. 두보는 강남을 떠돌고 있었는데, 이구년과 다시 만난다. 그리고 옛날 일을 생각하니 감개무량했다. 그리하여 시를 써서 이를 기념했다: "옛날에 기왕부에서 자주 그대가 연주하는 것을 들었고, 최구당(최척)의 앞에서도 여러번 그대의 예술을 감상한 바 있다. 지금 강남은 늦봄이어서 꽃이 지는 계절인데, 생각지도 못하게 그대를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한명은 음악계의 대가이고, 다른 한명은 시단의 성인이다. 머리카락도 희어지고 얼굴도 늙어서 이렇게 다시 만난 것이다. '낙화시절'이라는 한 마디는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즉 당시의 경치를 설명하는 것으로 강산이 무너지고 사람들은 떠돌며, 번화와 낙패로 운명이 무상함을 나타내고, 인생의 슬픔도 나타낸다. 함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어떤 사람은 이 시를 이렇게 평가했다: "말하고자 하는 것이 글자 바깥에 있다. 조용히 몇마디를 하는데, 백거ㅣ의 장편 <비파행>과 견줄만 하다"

 

이구년은 그의 유랑생활에서 왕유의 시를 부르기 좋아했다. 난세의 부침으로 스스로 먼지처럼 떠돈다. 오직 옛친구의 시사를 읊으며 고향을 그리고, 옛 일을 생가하며, 위로를 삼는다. 그러면서 지음 당현종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강해진다. 그가 왕유의 <이천가(伊川歌)>를 부를 때 너무나 비통해 해며, 혼절해 버린다. 그리고 4일후에 우울하게 죽는다. 임종전에 그는 꿈에 당현종과 양귀비를 만났다는 말을 했다.

 

이구년은 몰랐을 것이다. 당현종도 장안으로 돌아간 후, 계속 태극국 감로전에 연금되어 있었고, 마지막에는 그와 같이 우울하게 죽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도 같은 해인 762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