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지방284 혁흔(奕訢)의 후손들은 어떻게 공왕부(共王府)를 팔아버렸는가? 글: 유강화(劉江華) 모두 알고 있다시피, 십찰해(什刹海) 부근의 공왕부는 원래 청나라때 공친왕(共親王) 혁흔의 저택이다. 지금 그것은 가장 잘 보존돈 청나때의 왕부건축군(王府建築群)이다. 공왕부는 역사적 가치와 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일좌공왕부(一座共王府), 반부청대사(半部淸代史)" 공왕부 한채는 반권의 청나라역사이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청나라때, 공왕부는 건축이 정교하고 아름다울 뿐아니라, 그 안에는 많은 정교하고 아름다운 골동품과 진귀한 고서화가 보관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진당(晋唐)이래의 서화명작이 120종이상이다. 거기에는 왕희지(王羲之)의 와 왕헌지(王獻之)의 이었다. 그는 투명한 종이를 대고 그림을 배껴서 1달의 시간을 들여, 종이, 비단으로 각각 1본씩 임모한다. 계.. 2020. 7. 29. 심하고보군(沁河古堡群): 북방제일문화거족지택(北方第一文化巨族之宅) 글: 손량전(孫亮全) 일찌기 선진(先秦)시기의 에는 산서(山西)라는 이 지역을 "표리산하(表裏山河)"라고 표현했다. 안에는 높은 산이 있고, 밖에는 큰 강이 있다는 것이다. 산과 강의 천험(天險)이 병풍역할을 한다. 황토고원의 동족에 있는 산서의 가장 동쪽은 동북방향으로 이어지고 다시 남으로 뻗어나간 태행산맥(太行山脈)이 있고, 서부는 북에서 남으로 이어지는 여량산맥(呂梁山脈)이 있다. '좌수일지시태행(左手一指是太行), 우수일지시여량(右手一指是呂梁)" 두 개의 산맥 사이에 동북에서 서남으로 뻗은 분지에서 분하(汾河)는 북에서 남으로 흘러, '양산협일천(兩山夾一川)" 두 산이 강 하나를 끼고 있는 독특한 지형의 면모를 보인다. 이 '양산일천'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바로 물길이 거센 황하(黃河)이다. 산서는.. 2020. 7. 10. 자금성과 천안문은 누가 건설하였는가? 글: 동몽지(董夢知) 금년은 자금성 탄생 6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 금벽휘황한 궁전군은 당금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역사가 오래되며, 보존이 가장 완벽한 궁전이다. 자금성의 앞에는 화려하고 장엄한 천안문이 있다. 이는 황성의 정문이고, 국가의 상징이다. 사람들은 자주 묻는다: '자금성, 천안문은 누가 지었지?" 북경토박이는 이렇게 대답한다: "명나라때의 괴상(蒯祥)이다!' 맞다 바로 괴상이다. 만일 괴상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 것이다. 괴상이 자금성을 건축한 것에 관한 자료는 북경의 여러 사적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단지 내용이 많지 않고 간략히 기술되어 있을 뿐이다. 그리고 현존하는 자료들 중에서 적지 않은 것은 서로 모순되거나 잘못 기록된 것이 있어, 이해하는게.. 2020. 7. 10. 북경 향산(香山) 영안릉(永安陵)의 수수께끼 글: 왕밀림(王密林) 전문사택아중승(傳聞舍宅阿中丞) 승사잔료설폐흥(勝事殘遼說廢興) 유갈난심응조석(遺碣難尋鷹爪石) 한무장몰영안릉(寒蕪長沒永安陵) 부증상(傅增湘)의 에서 언급된 영안릉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북경의 서산 지역에 두 개의 황제릉이 있었다. 하나는 명대종(明代宗) 주기옥(朱祁鈺)의 경태릉(景泰陵)이고, 다른 하나는 요선종(遼宣宗) 야율순(耶律淳)의 영안릉이다. 그런데, 경태릉은 아직도 남아 있지만, 영안릉은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이 두 명의 서산에 뼈를 묻은 황제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 국가의 위기때 옹립된 황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후세 사가들에 의하여 '사직을 지킨 공로가 있다'고 인정받는 주기옥과는 달리, 야율순은 '명부정(名不正), 언불순(言不順), 사불성자(事不成者)".. 2020. 7. 8. 안후이(安徽)의 500년된 명나라 고교(古橋) 2개가 홍수에 무너지다. 글: The Paper 7월 7일 오전 10시경, 황산시(黃山市) 신청구(心城區) 툰시(屯溪)의 국가급 중점보호문화재인 명나라때의 진해교(鎭海橋) 일명 둔계노대교(屯溪老大橋)가 홍수에 휩쓸려 무너졌다. 바로 전날, 안휘 정더현(旌德縣)에 있는 명나라때의 고교인 낙성교(樂成橋)도 홍수에 무너져, 노면이 심각하게 파괴되었다. 짧은 이틀만에, 두 개의 고휘주(古徽州) 역사인문의 고교가 홍수에 붕괴되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934년 5월, 저명한 작가 욱달부(郁達夫)가 둔계로 와서 신안강(新安江)가에서 투숙한다. 비록 당시 둔계는 토비 주로오(朱老五)에 의해 불에 탄 이후여서 담장이 무너지고, 집도 쓰러져서 아직 옛모습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이지만 시인은 열정을 가지고 이곳을 찬미했다. 그는 .. 2020. 7. 8. 석천고성(石泉古城): 한때 휘황찬란했던 고용국(古庸國) 글: 상릉(霜凌) 고성(古城)관광은 자연스럽게 '고(古)'자에 끌려서 가는 것이다. 유구한 역사문화는 '고'의 함축과 운치가 있다. 오랫동안 전승되어 내려온 음식을 맛보고, 이 향토에 독특한 풍속문화를 찾아보고,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는 사관이 되어 본다. 평면개념의 사진과 실제 풍경을 비교해 보면서, 다시 한번 억고석금(憶古昔今)의 감개를 느낀다. 그래야 고성을 제대로 느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석천현(石泉縣)은 섬서성 안강시(安康市)의 서쪽에 있다. 북으로 진령(秦嶺)이 있고 남으로 파산(巴山)이 있다 위치는 진파복지(秦巴腹地), 한수(漢水)의 가에 자리잡고 있다. 섬서남부의 유명한 고성이다. 석천고성을 한 바퀴 돌아보니, 코로나바이러스의 영향으로 고성은 현재 상당히 고즈녁하다. 석천은 민속문.. 2020. 7. 3. 이전 1 ··· 5 6 7 8 9 10 11 ··· 4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