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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한무제)

한무제는 왜 구익부인을 죽여야 했을까?

by 중은우시 2018. 1. 9.

글: 동호소주(東湖少主)





무릇 업적을 세운 제왕들은 큰 재주도 지녔지만 큰 재앙도 만들어낸다. 이런 인물이 역사상 드물지 않다. 그 걸출한 대표인물은 바로 진시황과 한무제이다.


이 두 사람은 정치적 풍격이 아주 비슷할 뿐아니라, 개인적인 취향도 거의 비슷했다. 일생동안 장생불로를 추구하고, 이를 위해 큰 댓가를 치른다.


진시황의 장생불로약은 끝까지 찾지 못하고, 자신이 순유도중에 사구에서 객사하고 만다. 사후의 일조차 제대로 안배하지 못하고. 힘들여 얻은 강산을 '만제에 전하지'도 못했을 뿐아니라, 오히려 '이세만에 멸망'하는 역사적 비극을 불러온다. 이는 진시황이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결과이다.


전철이 있었기 때문에 한무제는 진시황보다는 훨씬 이성적이었다. 다만 개인의 장생불로문제에 관해서는 여전히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다. 일찌기 강호술사 이소군(李少君)에게 완전히 속아넘어가서 온갖 해괴한 모습을 연출하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한무제는 그래도 각성하지 못하고, 나중에는 강충(江充)에게 이용당한다.


토끼도 급해지면 사람을 무는 법이다. 비록 태자 유거(劉據)는 성격이 유약하지만, "무고사건(巫蠱事件)"은 그를 모반의 벼랑끝으로 몰고간다. 강충이 그를 해치려고 마음먹은 것을 보자, 그는 아무리 변명해도 통하지 않을 것을 알았다. 한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 법. 강충을 죽여버리고, 병력을 동원하여 모반을 일으킨다. 이렇게 하여 부자간에 서로 칼을 겨누는 상황이 된다. 반란이 평정된 후, 한무제는 깊이 반성하고, 터무니없는 일들에 대하여 어느 정도 의심을 품고 경각심을 일으킨다. 다만 그래도 심각한 반성에는 이르지 못했다. "구익부인(鉤弋夫人)"이 나타나면서 한무제 유철은 다시 미망의 늪에 빠진다.


방관자의 각도에서 보자면, "구익부인"의 입궁은 아마도 아주 큰 사기극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사기극을 누가 설계하고 감독했을지는 당시 사람들이 알지 못했다. 현재의 사람들로서는 더더욱 알 길이 없다. 역사기록에 따르면, "구익부인"은 하간(河間)의 조(趙)씨성을 가진 여인이다. 머리위에는 항상 청자(靑紫)색의 상서로운 구름이 둘러싸고 있었다. 한무제의 술사가 멀리서 그녀를 발견하고, 한무제에게 아뢴다. 즉, 구익부인은 머리위를 둘러쌌다는 "청자상운(靑紫祥雲)"을 한무제는 직접 보지 못했다. 그저 궁중술사가 '발견'한 후에 한무제에게 말해준 것이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술사는 모두 민간에서 왔는데, 어찌 이처럼 신통하고 "구익부인"과 아무런 관계가 없을 것이라고 확정할 수 있을 것인가.


정말로 몰랐는지 알면서도 받아들인 것인지는 몰라도, 한무제는 확실히 이 "사기극"을 좋아했다. 이런 '기인'이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한무제는 즉시 사람을 보내어 그녀를 찾는다. 그녀를 만나자마자 바로 알 수 있었다. 이 여인은 경국경성의 미모를 지녔을 뿐아니라, 두 주먹을 꽉 쥐고 있어서 펼 수가 없었다. 이어서, 기적을 직접 만나는 광경이 벌어진다. 한무제가 손을 가볍게 그녀의 손을 쓰다듬자, 조씨녀의 주먹은 즉시 펴진다. 그리고 손안에는 옥구(玉鉤)를 하나 쥐고 있었다.


이건 더 이상하다. 두 주먹을 아무도 펼 수 없었는데, 유독 한무제가 가볍게 쓰다듬자마자 펼쳐지다니. 이것은 신화이야기 속에서나 나올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더욱 기이한 일은, 이 여자는 손안에 옥구를 쥐고 있었다는 것이다.이는 바로 천명(天命)이다. 이제는 바로 믿을 수밖에 없다. "구익부인"은 하늘이 한무제를 위하여 내려보낸 사람이다.


이런 광경에 한무제는 아주 기뻐한다. 즉시 그녀를 궁으로 들인다. 그리고 그녀를 "권부인(拳夫人)"이라고 부른다. 그녀가 구익궁에 거주했으므로 "구익부인"이라고도 불렀다. 나중에 이 "구익부인"은 더욱 신기한 일을 해낸다. 14개월간 회임한 후에 아들 유불릉(劉弗陵)을 낳은 것이다. 이 14개월을 아무렇게나 봐서는 안된다. 이것은 고의로 한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상고시대 요(堯)임금은 바로 모친의 뱃속에서 14개월간 있다가 태어난 것이다.


고의로 시간을 잘못 기록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다. 혹은 생리상의 우연이 겹쳤을 수도 있다. 어쨌든 한무제는 기뻐해 마지 않았다. 그리고 즉시 유불릉이 출생한 그 전각의 문을 "요모문(堯母吻)"이라고 명명한다. 이를 통하여 유불릉이 평범하지 않음을 나타낸다. 기실 이는 한무제의 혼자 생각일 뿐이다. 혹은 한무제가 알면서도 속은 것이다. 사실은 바로, 나중의 유불릉(한소제)는 겨우 스물몇살에 죽는다. 보정대신 곽광(霍光)은 난감하게 되어, 부득이 황제를 하나 폐위시키고, 대한왕조는 27일간의 권력공백이 발생하게 된다.


모친은 아들로 인해서 귀해진다. "요모문"도 좋고, "권부인"도 좋다. 한무제는 황위를 어린 유불릉에게 전하려 했다. 그러다보니 부득이 후계황제의 모친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리저리 고민했지만, 한무제는 역시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옛날 여치(呂稚)가 권력을 농단한 비극이 다시 발생할 것같았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한무제는 먼저 "구익부인"을 죽이고, 유불릉을 태자로 세운다.


시실은 증명한다. 한무제는 "자소모장(子少母壯)" 자식은 어리고 모친은 한창 나이이다라는 것을 우려했다. 이건 맞는 일이다. 국가의 장기적 이익을 보면, "구익부인"을 죽인 것은 현명한 조치이다. 만일 "구익부인"이 살아있다면, 미래에 분명 사태가 발생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보정대신 곽광이 어찌 국정을 제대로 운영할 수 있었겠는가. 단지 그 아들을 쓰면서, 그 어미는 죽인다. 이런 결말이 젊은 나이의 "구익부인"에게는 너무나 잔혹할 뿐이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이런 이야기도 전해져 내려온다. 한무제는 "구익부인"에게 이 일을 말할 때 고의로 이렇게 했다고 한다. 좋은 소식 하나와 나쁜 소식 하나가 있는데 어느 것을 먼저 듣겠느냐고. 구익부인은 먼저 좋은 소식부터 말해달라고 하니. 한무제는 네 아들을 태자로 세우겠다고 말한다. 구익부인은 그 말을 듣자 기분이 좋아져서 애교를 부렸다. 그때 한무제는 나쁜 소식도 하나가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네가 반드시 죽어야겠다는 것이다. 그렇다 한무제와 같은 남들이 생각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는 황제가 어찌 후세의 황제를 위하여 이런 화근을 남겨둘 수 있단 말인가.


문제는 한무제가 일찌기 '요의 모친"에 구익부인을 비유했는데, 어찌 이제는 그녀를 차마 죽이려 한단 말인가? 아마도 이유는 바로 그녀에 관한 말도 안되는 전설을 한무제 자신도 그다지 믿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생동안 천하를 다스리다가 죽을 때가 된 사람이 무엇을 제대로 보지 못하겠는가? 그래서 생전에는 극히 은총을 베풀고 사랑했지만, 그것은 그저 미인의 웃음을 얻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