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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한무제)

복비죄(腹誹罪)에 관하여

by 중은우시 2018. 11. 14.

글: 송지견(宋志堅)


장탕(張湯)도 사마천이 <혹리열전>에 집어넣었다. 실사구시적으로 말하자면, 그 10명의 '혹리(酷吏)'들 중에서 그는 그래도 청렴한 편이다. "장탕이 죽고나서, 가산은 오백금이 넘지 않았다. 모두 하사받은 것이고, 다른 사업은 한 것이 없다." 그러나 공정한 법집행을 가지고 말하자면, 청렴은 그저 필요조건일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장탕의 행적중에서 내가 가장 잘못되었다고 여기는 것은 대사농(大司農) 안이(顔異)사건의 처리이다. 안이는 경제를 담당했고, '청렴함과 곧음'을 가지고 '구경(九卿)'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가 혐의를 받은 것은 '복비죄'이다. 이 '복비'죄는 바로 장탕이 발명한 것이다. 송고종때 악비가 받은 '막수유(莫須有)'죄나 명영종때 우겸이 받은 '의욕(意欲)'죄보다 천몇백년전에 나타났다.


안이의 '복비죄'에 관하여, <강감이지록>에는 간략히 소개하고 있다:


"장탕은 황상과 이미 백록피폐(白鹿皮幣)를 만들었고, 안이에게 의견을 물었다. 안이는 대답했다; '지금 제후들이 창벽에 배알하러 왔는데, 가치가 수천이지만, 가죽은 오히려 사십난이 되니, 본말이 맞지 않습니다.' 그러자 황상이 불쾌해 했다. 누군가 풍이의 다른 사건을 고발하여, 장탕이 심리하게 된다. 안이는 손님과 얘기하면서 법렬이 처음 반포되었을 때 폐단이 있덨다고 하자, 안이는 대답은 하지 않으면서 입술을 약간 삐죽였다. 그러자 장탕은 이를 가지고 황상에게 아뢰기를, '안이는 법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것을 보고도 말은 하지 않고 속으로 비방했으니, 죽여야 합니다.' 긓에 복비라는 죄명이 생긴다. 그러자 공경대부들은 모두 아부를 하고 마음에 드는 말만 하려 했다."


위의 인용문에서 알 수 있듯이 장탕에게는 두 가지 장기가 있다. 첫째는 그는 뛰어난 '정치적 감각'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한무제와 완전히 일치하는 태도를 취한다. 다른 사람을 처벌할 때, 절대로 한무제의 시비를 가지고 시비를 판단한다. 사마천이 말한 것처럼 그가 처벌한 것은 황상이 어떻게 처벌하고자 하면 그는 반드시 처벌했고, 황상이 풀어주고자 하면 가볍게 처벌하여 풀어주었다. 그리고, 그가 보기에 한무제에 대한 불경은 모두 대역무도한 짓이다. 죽음으로 다스려야한다. 둘째는 그가 뛰어난 '정치적 후각'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황상이 불쾌해 했다'는 것에서 그는 바로 냄새를 맡는다. 그리고 '안이가 대답은 하지 않으면서 입술을 삐죽였다'는 것에서도 냄새를 기막히게 맡는다. 이 두 가지 냄새를 합쳐지니 안이에게는 '복비'죄를 뒤집어 씌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복비'를 죄로 삼는 것은 어쨌든 풍자적인 의미가 있다.


무엇이 '비(誹)'인가? '비'는 '방(謗)'과 합쳐서 '비방'이라는 말로 쓰인다. '방'은 공개적으로 헐뜯는 것이고, '비'는 속으로 헐뜯는 것이다. 비방이 죄가 되는 것은 사실을 날조하여 다른 사람에게 실질적인 상해를 입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사람들이 직불의(直不疑)를 비난하여 말하기를 형수를 훔쳤다고 했다. 직불의(한경제때의 어사대부)는 그저 '나는 형이 없다'고만 말했다." 형이 없으면, 당연히 형수도 없다. 그러니 형수를 훔칠 일도 없는 것이다. 직불의는 원래 그들을 비방죄로 고소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가 '형수를 훔쳤다'는 것은 완전히 날조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에게 관직을 구하거나 승진을 바랐는데 도와주지 않아서일 것이다. 반대로 만일 직불의에게 형이 있었고 형수가 있었다면 그리고 확실히 '형수를 훔친' 적이 있다면, 그가 면전에서 얘기하던 등뒤에서 얘기하든 아무런 죄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일이건 사람이건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고, 나쁜 것은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그것에 면전에서 하는 것이건 배후에서 하는 것이건 죄라고 하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 당요(唐堯)때 "조유진선지정(朝有進善之旌), 비방지목(誹謗之木)"이 있었던 일이라든지, 한문제때 소위 '비방' '요언(妖言)'죄를 폐지한 적이 있다든지까지는 말하지 않더라도.


'비(誹)'가 반드시 죄가 되는 건 아니다. 그런데 '복비'가 무슨 죄가 될 수 있겠는가. '복비'라는 것은 누구에 대하여 어떤 일에 대하여 그렇지 않다고 보는 것일 뿐이다. 혹은 체면을 생각해서 혹은 권세를 고려하여, 아니면 어떤 이해관계를 고려해서 말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설사 정말 '복비'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부득이해서 하는 것이다. 중국역사를 살펴보면, 말한 것때문에 죄를 받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특히 황상의 앞에서 그가 기쁠 때는 무슨 말이든 해도 괜찮지만 그가 기분나쁠 때 다시 그의 '역린'을 건드리면 머리가 몇개나 되더라도 살아남기 어렵다. 그러나 사람은 말을 해야 한다. 그 자리에서 하지 않더라도 뒤에서 하고, 그 당시에는 하지 않더라도 나중에 하며, 입으로 하지 않더라도 마음 속으로 한다. 이 마지막 것이 바로 '복비'이다. '복비'했는지 아닌지는 기실 자신만 안다. 다른 사람은 알 도리가 없다. 문인묵객들이 '그 당시에는 그저 속으로 비난했을 뿐이다'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왕왕 한참 시간이 흐른 후의 일이다. '복비'는 사실을 날조할 필요도 없고, 더더구나 다른 사람을 상하게 하지도 않는다. 복비죄의 황당함은 이것만으로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복비죄가 나타난 것은 당연히 남다른 정치적 환경때문이다. 내부적으로 분쟁이 일어나서 서로 헐뜯고 불만을 가지고 서로 공격하는 것은 다반사이다. 누가 속으로 비난하는 것을 가지고 뭐라고 하겠으며, 속으로 비난하는 것을 신경이라도 쓰겠는가. 그러나 안이의 상대는 달랐다. 신하로서 그의 위에는 한무제 유철이 있었다. 다른 일로 그가 고발당했지만 그를 조사하는 것은 혹리 장탕이다. 이 두 사람은 모두 그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 그가 상대하는 것은 거고임하(居高臨下)의 절대권력이다. 한무제는 그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고, 다른 사람을 '복비'한 것은 죄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지고무상의 황제를 '복비'한다면 그것은 용서할 수 없다; 장탕은 그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 다른 사람이 그의 '복비죄'로 모함하면 그가 변명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장탕의 입에서 나온 것이면 어떻게 변명할 수 있단 말인가. 이를 보면, '복비죄'는 절대적인 권력에서만 나타날 수 있는 극단적인 원안(寃案)이다.


장탕이 안이를'복비죄'로 처벌한 것은 아주 나쁜 선례이다. 이후 공경대부는 모두 아부를 하고 황제가 마음에 들어할 말만 하게 된다. 이렇게 되니 관료사회는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게 된다. 침묵을 지키는 것만으르도 부족하다. 왜냐하면 침묵을 지키는 것은 복비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다투어 황상은 현명하십니다를 외쳐야 한다. 공경대부들 중에서도 양심이 남아 있어서 마음 속으로 불만을 품고 마음 속으로 비방을 했는지 아닌지는 오직 하늘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