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이자성)16 이자성은 북경의 실패후 왜 남경으로 가지 않았는가? 글:천애간점(天涯看點) 1644년, 이자성은 산해관에서 패배한 후 북경에서 퇴각한다. 1년도 되지 않아, 이자성의 근거지인 섬서는 청군에 의해 남북에서 협공을 받는다. 이자성은 할 수 없이 대순군을 이끌고 대본영 서안에서 퇴각한다. 처음에 이자성의 생각은 하남을 거쳐 남경으로 가는 .. 2019. 1. 7. 이자성 행방의 수수께끼. 글: 역사변연(歷史邊緣) 이자성은 섬서(陝西) 미지(米脂) 사람이다. 그의 집안은 아주 가난했고, 역졸(驛卒)을 지낸 바 있고 변방의 병사로도 있었다. 나중에 그는 농민반란군에 참가하여 명나라에 대항한다. 그리고 반란군의 우두머리가 된다. 그때 명나라는 이미 정치가 부패하고, 경제.. 2018. 6. 26. 이자성의 부인들... 글: 장계합(張繼合) <명사>혹은 <청사고>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아마도 요설은(姚雪垠) 선생이 창작한 장편역사소설 <이자성>은 읽어보았을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틈왐(闖王)"이라 불리는 이자성은 일을 계속하여 벌이는 반란군의 우두머리로 나온다. 만일 그의 곁에 있는.. 2018. 3. 2. "이자성"은 어떤 사람인가? 글: 양청균(楊淸筠) 명나라말기에는 '지구최후의 날'과 같은 재난이 닥쳤고, 젊은 나이의 숭정제는 관외에서 만주족과의 싸움으로 마음이 조급해 있을 때, 다시 기황으로 갈 곳이 없어 반란을 일으킨 농민군을 맞이해야 했다. 이 이러한 농민군의 난이 가장 심했던 지역은 섬서이다. 섬서.. 2015. 1. 13. 이자성 생사의 수수께끼: 만청과 남명은 모두 그의 수급을 얻지 못하다 글: 감홍류(闞紅柳) 이자성이 석문협산으로 도망가 선승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호남성의 석문현은 풍양이라고 불렀고, 풍주라고보 불리웠다. 청나라 건륭년간의 <풍주지림>에 수록된 풍주지주의 <이자성전>에 따르면, 이자성은 전투에서 패배하고, 홀로 석.. 2013. 4. 27. 이자성은 보물을 어디에 숨겼을까? 글: 문재봉(文裁縫) 천문산 천문산(天門山)은 해발 1,517.9미터이고, 산아래의 시가지와는 상대표고차가 1300여미터나 된다. 호남서부 장가계시의 남쪽 교외 8킬로미터에 위치하고, 무릉산의 남쪽지맥에서 높은 봉우리의 하나로, 장가계시의 천연벽화이며, 상서제일신산이라는 별칭을 지니.. 2012. 2. 29.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