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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원세개)32

이진탕(二陳湯): 원세개를 죽음으로 몰고간 세 심복 글: 유계흥(劉繼興) 1915년 12월, 원세개는 돌연 중화제국의 건립을 선포하고, 연호를 홍헌(洪憲)으로 하고, 총통부를 신화궁(新華宮)으로 개칭했다. 1916년 6월 6일, 가까운 심복들도 모두 떠나고 온 국민들이 그를 성토하는 와중에서 원세개는 세상을 떠난다. 원세개의 사인에 관하여, 여러가지 견해가 있.. 2010. 9. 20.
원세개의 후계자는 누구인가? 글: 김만루(金滿樓) 1916년 6월 6일 새벽 6시, 내외적으로 곤경에 처해있던 원세개가 여러가지 스트레스 속에서 조금은 쓸쓸하게, 조금은 불만스럽게 세상을 떠난다. 그의 나이 겨우 57세때의 일이다. 옛말에 틀린 것이 없다. "만반개시명, 반점불유인(萬般皆是命, 半點不由人, 모든 것은 운명이고 사람이 .. 2009. 12. 22.
원세개는 요독증으로 사망했는가? 글: 김만루(金滿樓) 원세개의 옛 부하들이 속속 반기를 들 때, 집안 사람들마저 그의 체면을 살려주지 않았다. 홍헌왕조가 문을 연지 이틀도 되지 않아서, 원세개의 동생인 원세동(袁世彤), 여동생인 원서정(袁書貞)은 신문에 성명을 실어, 황상 원세개와 형제자매관계를 끊는다고 선언해서, 원.. 2009. 8. 25.
세리(勢利)의 역사(歷史) 글: 진원(陳遠) 한 사람이 있다. 근대사상 아주 유명한 사람이고 삼척동자도 다 알만한 사람이다. 역사는 항상 그를 피해가고 싶어하지만, 아쉽게도 그는 근대역사에서 피해갈 수 없는 사람이다. 흥미를 위해서, 그가 누구인지는 말하지 말고, 우선 소거법을 써보기로 하자. 그는 교육자가 아니다. 그러.. 2009. 8. 19.
원세개 사후의 2가지 수수께끼 글: 유계흥(劉繼興) 1915년 12월, 원세개(袁世凱, 위안스카이)는 중국의 군주제 회복을 선포하고, 중화제국을 건립하며, 연호를 홍헌(洪憲)이라 한다. 총통부는 신화궁으로 명칭이 바뀐다. 다만, 원세개가 황제에 오른 것은 시대를 역행한 조치이고, 거국적인 반대에 부닥친다. 손중산, 양계초등이 격렬하.. 2009. 7. 29.
원세개와 미신 글: 동원거사(桐源居士) 20세기초의 중국사회는 복잡다단했다. 한편으로는 낙후된 생산관계와 연이은 재난으로 백성들의 삶은 고달펐고, 다른 한편으로 부패한 상부구조와 군벌할거의 혼란국면이 이어졌다. 혼란한 난세에 역사는 때로 뒷걸음질치기도 하고 반복되기도 한다. 90여년전의 어느 봄날, 손.. 2009. 5.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