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숭정제)14 숭정제가 자결한 장소는 어디인가? 작자: 미상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崇禎帝)가 경산(景山)에서 목을 매어 자결했고, 그 유적지는 지금도 남아 있으며, 석비(石碑)까지 세워져 있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숭정제가 그 곳에서 목을 매어 자결했다는 것을 상식으로 여긴다. 그러나, 사실상, 이 주장은 잘못된 것이.. 2012. 3. 27. 숭정제: 강산보다 돈을 중시한 수전노황제 글: 유병광(劉秉光) 근검절약은 중화민족의 전통미덕이다. 다만, 절약도 지나치면, 변질되고, 경우에 벗어나며, 자잘하게 되고, 인색하게 된다. 그러면, 수전노(守錢奴)가 되는 것이다. 명나라의 숭정제(崇政帝) 주유검(朱由檢)은 역사상 보기 드문 인색한 황제였다. 서예를 연습하면서도, 그는 종이를 .. 2008. 12. 31. 숭정제 황자들의 행방 글: 하억(何憶) <<명사. 제왕전>>의 기록에 따르면, 숭정제는 모두 7명의 아들을 두었다. 그중 주황후(周皇后)가 셋을 낳았는데, 황장자 태자 주자랑(朱慈烺), 황이자 회은왕(懷隱王) 주자훤(朱慈烜),황삼자 정왕(定王) 주자형(朱慈炯)이다; 그리고 전귀비(田貴妃)가 넷을 낳았는데, 바로 황사자 .. 2008. 12. 23. 숭정제 군대가 17년만에 완전히 달라진 이유는? 글: 정만군(程萬軍) 명나라말기, 세 갈래의 군사역량이 중원의 패권을 놓고 다투고 있었다. 이 세 군대는 한때 '돌아가며 무서워하는' 국면을 형성했다: 청나라군대는 명나라군대를 무서워하고, 명나라군대는 농민군을 무서워하고, 농민군은 청나라군대를 무서워하였다. 마지막으로 결국, 명나라는 농.. 2008. 10. 30. 숭정제 말년의 남천(南遷) 논의 명나라말기에 명나라조정은 위기에 처해 있었다. 태자감국(太子監國), 천도남경(遷都南京)의 방침은 상당히 써볼만한 유력한 대책이었다. 그러나, 명말의 군신들은 결국 이를 시행하지 못하고, 명나라의 명맥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남천에 대하여 먼저 의견을 꺼낸 것은 기록.. 2008. 7. 16. 천계제의 죽음과 숭정제의 즉위 글: 염숭년(閻崇年) 천계제(天啓帝) 주유교(朱由校)는 16세에 등극하여, 7년간 황제를 지냈다. 천계7년(1627년) 8월 22일 자금성 건청궁에서 사망하였으니, 나이 겨우 23세때였다. 그의 일생은 목수(木匠)와 같았고, 황제같지 않았다. 천계제의 죽음은 명나라나 후금에 모두 중대한 정치적 사건이었다. 그렇.. 2007. 4. 13.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