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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숭정제)

천계제의 죽음과 숭정제의 즉위

by 중은우시 2007. 4. 13.

글: 염숭년(閻崇年)

 

천계제(天啓帝) 주유교(朱由校)는 16세에 등극하여, 7년간 황제를 지냈다. 천계7년(1627년) 8월 22일 자금성 건청궁에서 사망하였으니, 나이 겨우 23세때였다. 그의 일생은 목수(木匠)와 같았고, 황제같지 않았다. 천계제의 죽음은 명나라나 후금에 모두 중대한 정치적 사건이었다.

 

그렇다면, 천계제는 왜 23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는가? 천계제의 사인에 대하여는 다음의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 물에 빠진 후 놀라서 병을 얻고, 이로 인하여 죽었다는 설. 천계5년(1625년) 단오절에 천계제는 서원(西苑, 지금의 중남해,북해)에서 용주(龍舟)를 타고 물놀이를 하였는데, 갑자기 광풍이 불어 두 명의 환관은 물에 빠져 익사했다. 천계제는 비록 환관들에 의하여 구출되기는 하였으나, 물을 많이 마시고 놀라서 이로 인하여 병을 얻었다. 그리하여 원래 병약했던 그의 몸은 더욱 허약해졌다.

 

둘째, 생활이 황음무도하여 죽었다는 설. 그는 목수일에 재미를 붙여 침식을 잊을 정도였으며 국가대사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바로 이러했으므로, 위충현(魏忠賢)을 위시한 엄당(환관)들이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다. 건청궁의 월대앞의 단계 아래에는 동서로 통로가 있다. 속칭 노호동(老虎洞)이고, 지금도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높이 1.8미터, 너비 1.1미터이며, 돌로 쌓아서 만들었고 양측에 문이 있다. 천계제는 내시들을 이끌고 술래잡기를 했는데 그 안에 숨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노호동은 원래 내시들이나 쓰는 길인데, 황제가 노는 장소로 바뀐 것이다.

 

천계제는 재위7년간 목수같이 살았고, 장난꾸러기같았지, 황제같지는 않았다. 그가 죽은 후에 황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명나라의 가법에 의하면 부친이 죽으면 아들이 승계하는 것이다. 천계제에게는 아들이 셋 있었다.

 

황장자(皇長子) 주자연(朱慈然). 조산으로 요절했다. 이 황장자의 생모에 대하여는 서로 다른 기재가 있다. <<명사. 제왕전>>에서는 "그 생모가 누구인지 불명확하다"고 적었다. <<명사. 후비전>>에서는 그러나, "천계3년, 황후가 임신했다. 객씨.위충현은 궁내에 자기와 뜻이 다른 자를 몰아내고자 했으며,....원자를 해하였다" 여기서 원자(元子)는 바로 황장자이다. 이에 따르면 생모는 바로 장황후가 된다.  그리고, 장황후는 객씨와 위충현의 해를 입어 조산을 하고 남자아이를 낳기는 했지만, 얼마되지 않아 요절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보면 황장자의 생모는 장황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황차자(皇次子) 주자육(朱慈). 생모는 혜비 범씨이다. 황장자보다 10일 늦게 태어났는데, 태어난지 1년도 되지 않아 죽었다.

 

황삼자(皇三子) 주자경(朱慈炅). 생모는 용비 임씨이다. 임씨는 황삼자를 낳아서 황귀비로 봉해진다. 천계제는 두 아들을 연이어 잃은 후, 황삼자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황삼자는 태어난지 8개월만에 역시 요절하고 만다.

 

이렇게 천계제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지만, 그가 죽을 때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아들이 뒤를 이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형이 죽은 후 동생이 이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천계제의 동생중에서 골라야 했다. 천계제의 동생들 상황을 살펴보자. 이는 바로 천계제의 아버지인 태창제(泰昌帝)에게 아들이 얼마나 있었는지를 봐야 한다. 태창제에게는 모두 7명의 아들이 있었다.

 

황장자(皇長子) 주유교(朱由校). 바로 천계제이다.

황차자(皇次子) 주유학(朱由). 생모는 왕씨이다. 천계제와 동모소생이다. 4살때 요절. 간회왕에 추존.

황삼자(皇三子) 주유집(朱由楫). 생모는 왕선시이다. 8살에 요절. 제사왕에 추존

황사자(皇四子) 주유모(朱由模). 생모는 이선시이다. 5세때 요절. 회혜왕에 추존

황오자(皇五子) 주유검(朱由檢). 생모는 유씨이다. 나중의 숭정제.

황육자(皇六子) 주유허(朱由). 생모는 정의비이다. 요절. 상회왕에 추존

황칠자(皇七子) 주유선(朱由[木+善]). 생모는 경비이다. 요절, 회소왕에 추존

 

태창제에게 모두 7명의 아들이 있었지만, 그중 다섯 아들은 요절했다. 모두 8살이전에 요절한 것이다. 어른이 된 사람은 겨우 두 명이다. 한 명이 주유교 즉 천계제이고, 다른 한 명이 주유검 바로 나중의 숭정제이다. 그러므로, 천계제가 죽은 후 승계문제에 있어서 선택의 여지는 전혀 없었다. 그저 천계제의 다섯째 동생인 주유검에게 황위를 넘겨주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숭정제가 즉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