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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건륭제)41

옹정제(雍正帝)는 왜 연갱요(年羹堯)를 죽였을까? 글: 진휘(陳輝) 옹정은 왜 연갱요를 죽였을까? 지금까지 역사학자들은 여러가지 설이 분분하다. 역사학 박사인 정소유(鄭小悠)가 최근에 출간한 <연갱요의 죽음>(한당양광.산서인민출판사출판)에서는 여러가지 상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연갱요는 한번도 옹정의 적계(嫡係.. 2018. 6. 19.
건륭제는 왜 6번이나 강남으로 내려갔는가? 글: 기점문사(起點文史) 청나라 300년역사중에서 단지 2명의 황제만이 6번 강남을 내려갔다. 한 명은 강희제이고, 다른 한명은 그의 손자인 건륭제이다. 강희제가 강남으로 6번이나 내려간 것은 국계민생을 위해서였고, 적지 않게 실질적인 일들을 했다. 그러나, 건륭제가 6번 강남으로 내.. 2018. 2. 4.
건륭제의 후계자 선정은 왜 그리 힘들었을까? 글: 역사산인(歷史山人) 건륭(乾隆)은 청나라 입관(入關, 산해관을 들어와 북경을 수도로 삼은 일)이후 4번째 황제이고, 88세까지 살았다. 동시에 그는 중국봉건제왕중 장수의 기록을 세운다. 특히 그의 일생은 아주 순조로와서 그다지 큰 재난도 없었다. 그와 조부 강희(康熙) 부친 옹정(雍.. 2017. 10. 18.
건륭제는 차를 끓일 때 어떤 물을 썼는가? 글: 진령신(陳令申) 역대제왕중에서, 건륭제는 차를 마시는 것을 아주 좋아한 편이다. 그는 차를 끓이는 물도 아주 중시했다. 그는 강소성 진강의 "중냉천(中冷泉)"이 가장 좋아서, "천하제일천"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일찌기 '중냉천'을 칭송하는 시편을 2개나 지은 적이 있다. '중냉천'은 .. 2015. 5. 4.
건륭(乾隆)은 향비(香妃)를 어떻게 금옥장교(金屋藏嬌)했는가? 글: 홍촉(洪燭) 원명원(圓明園)을 보고나서 필자는 중화민족의 수난일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 텅비고 넓은 공원은 필자의 눈에 그저 노천 장례식장같다. 가슴아픈 공원이다! 원명원의 장춘원(長春園)내에 대수법(大水法)과 마찬가지로, 방외관(方外觀)도 그저 약간의 잔재만 남았다. 몇 개.. 2013. 12. 4.
건륭제때 탐관오리와 석장(石匠) 유군필(兪君弼)의 사망 글:소랑(小浪)3 건륭이 재위할 때, 거액의 부정부패를 저지른 탐관오리사건이 자주 발생했다. 건륭제는 비록 관대하고 인자하였고, 말년에 대탐관 화신(和珅)을 총애하여 비극의 씨앗을 남기긴 했지만. 건륭제는 관료사회의 정리정돈에서는 절대로 봐주는 법이 없었다. 어떤 측며네서.. 2013. 11. 9.
건륭제는 무슨 물로 차를 끓였는가? 글: 도몽청(陶夢淸) 역대제왕들 중에서 건륭은 차를 아주 좋아했다. 차를 끓일 때 쓰는 물에 신경을 많이 썼다. 그는 강소성 진강(鎭江)의 "중냉천(中冷泉)"이 가장 좋다고 여겨서, "천하제일천(天下第一泉)"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일찌기 시를 두 편이나 지어서 '중냉천'을 칭송한 바 있다. .. 2013. 6. 26.
건륭연간의 염세(鹽稅)사건 글: 장영구(張永久) 역사상 염업전매(鹽業專賣, 소금전매)는 국가가 독점경영했다. 이 조치를 처음 시작한 사람은 춘추시기의 관중(管仲)이며, 진나라 및 서한 초기에 전국에서 염업관매(鹽業官賣)제도를 시행했다. 소금을 생산하는 군현에 염관(鹽官)을 설치하고, 정부에서 제공한 "뇌분(.. 2013. 5. 18.
건륭제의 모친은 누구인가? 작자: 미상 건륭의 모친은 누구인가? 청나라의 황제 12명중에서 건륭제의 모친만 문제가 있다. 다른 황제들은 없다. 다른 황제들의 모친이 누구인지는 아주 명확하다. 건륭의 모친에 대하여만 의문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몇 가지 견해가 있는가? 주로 4가지이다. 첫째 전설은 이렇다. 즉.. 2013. 5. 5.
건륭제(乾隆帝)의 후계자선정: 아들을 보지 않고 모친을 보다 글: 자일(子逸) 옹정은 비밀건저(秘密建儲)제의 창시자이다. 건륭은 제도의 첫번째 수익자이다. 그는 즉위한 이후, 여전히 이 제도에 따라 후계자를 지정했다. 건륭은 일생동안 3번 후계자를 선정했다. 이전 두 번은 모두 후계자의 요절로 실패했고, 마지막에 건륭은 황위를 황십오자 영염.. 2013. 4.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