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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건륭제)

건륭제는 왜 자질이 평범한 가경제를 후계자로 선택했을까?

by 중은우시 2020. 3. 3.

글: 역사변연(歷史邊緣)


가경제(嘉慶帝)는 청나라의 제7대황제이다. 가경제는 청나라역사상 비교적 평범한 황제이다. 재위기간동안 특별한 업적도 없고, 그 이후부터 청나라는 쇠락기에 접어든다. 가겅제는 이처럼 평범했는데, 왜 건륭제(乾隆帝)는 그를 후계자로 삼아서 황위를 잇게 하였을까?


첫째, 건륭은 재위기간이 중국역사상 가장 길다. 그가 나중에 태상황으로 물러났지만, 그는 여전히 대청황조의 실질적 통치자였다. 그래서 그의 여러 아들들 중에서 그가 죽을 때까지 살아남아서, 황위를 전하려 할 때는 오직 4명의 황자만이 남아 있었다. 그중 황팔자는 생활작풍에 문제가 있었다. 황십일자는 서화가로 예술에 온 마음을 쏟고 있었다. 황제가 될 능력이 아예 없었다. 황십칠자는 나이가 가장 어렸기 때문에 좋은 후보자가 아니었다. 이리저리 생각을 해보아도 가경제가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다.


둘째, 가경제의 모친인 영비(令妃)는 건륭제가 비교적 총애한 후비이다. 황궁에서 모이자귀(母以子貴), 자이모귀(子以母貴) 즉 아들이 귀해지면 모친도 귀해지고, 모친이 귀해지면 자식도 귀해진다. 이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황실의 잠규칙이다. 영비는 후궁중 지위가 아주 높았고, 한때 후궁의 모든 사무를 관장했었다. 그래서 자신의 모친의 우세에 의지하여 가경제는 건륭제에게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었다.


셋째, 또 다른 원인으로는 가경제가 인품이 착실하고 효성스러웠다. 그는 표준적인 수성지군(守城之君)이다. 수성지군이 무슨 뜻인가? 바로 강건(강희,건륭) 양대의 집정방침을 계속 유지하고, 마음대로 뜯어고치지 않을 인물이라는 것이다. 솔직히 얘기하면, 건륭제는 일생동안 큰 일을 벌이는 것을 좋아했고, 자신의 정치적 업적에 아주 만족해 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후계자가 계속하여 그와 그의 할아버지의 정치방침을 그대로 유지해주기 바랐다. 가경제는 이런 측면에서 보더라도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