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천안문사태때 진압명령을 내린 핵심인물은......?
글: 일진천설(一眞濺雪) 1986년말, 베이징, 상하이, 허페이...등지의 대학생들은 대규모 시위에 나섰다. 학생들은 탐관오리의 부패를 처벌하고, 정치체제개혁을 진행하고, 민주, 자유를 실현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당과 국가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등소평과 그 주위의 완고한 원로들은 등소평의 추종자들인 리펑, 천시통같은 자들과 함께 학생들의 행위는 국외반중세력의 책동에 의한 반당, 반사회주의적인 행동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당시 당중앙주석을 맡고 있던 후야오방등 당내의 개혁파들은 학생들의 행위를 애국행위로 보았다. 그들의 많은 요구는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학생들을 정확하게 인도하고, 설명하고 소통하여 갈등을 해소시키는 것으로 사태를 안정시킬 수 있다고 보았으며, 학생들에 대한 무력진압에 반대했다..
2021. 10. 27.
"사인방"의 상해잔당에 대한 재판: 마천수(馬天水), 서경현(徐景賢), 왕수진(王秀珍)
글: 왕문정(王文正), 심국범(沈國凡) 마천수 강청반혁명집단의 상해잔당중 핵심분자로 당시에 이름이 열거된 사람은 모두 사십여명이다. 그중 제1차로 재판을 받게 된 사람은 모두 9명이다. 그들은 전중공상해시위서기, 시혁명위원회부주임 마천수, 서경현, 왕수진(여), 그리고 진아대(陳阿大), 섭창명(葉昌明), 황금해(黃金海), 대립청(戴立淸), 마진룡(馬振龍), 주영가(朱永嘉)이다. 이들은 '문화대혁명'때 상해에서 앞장선 인물들이다. 마천수가 원래 상해시위에서 지도자의 직위에 있었던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조반파로 관직에 올랐다. 그런데, 당시 재판후의 판결문에는 오직 8명밖에 없고, 이들 잔당중 우두머리인 마천수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왜그럴까? 마천수에 대하여 왜 재판이 진행되지 않았는지를 말하기..
2020. 10.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