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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고고13

명십삼릉의 정릉(定陵): 가장 참혹한 고고학적 비극 글: 이상국(理想國) 지나간 세월에서 고고학은 일찌기 영웅의 사업이었다. 그리고 일찌기 적막한 사업이었다. 대다수의 고고학자들은 휘황한 인생경력을 누릴 수 없다. 그래서 하나의 중대한 고고학적 발견은 그들에게 있어서, 상상할 수 없는 흡인력이 있다. 이런 감정은 많은 기적을 만.. 2018. 9. 27.
돈황학(敦煌學)이란? 글: 자주군(煮酒君) 많은 사람들은 여추우(余秋雨)의 문화고려(文化苦旅)를 읽어보았을 것이므로, <도사탑(道士塔)>에 대하여 기억이 생생할 것이다. 그래서 왕도사(王道士)에 대하여는 불만이 클 것이고, 그는 민족의 패류(敗類)라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문학창작과 역사진상이 반드.. 2015. 12. 14.
서주왕릉(西周王陵)은 왜 하나도 발굴되지 않았을까? 글: 유준용(劉俊勇) 구석기시대부터 신석기시대까지, 묘장의 변화는 사회분층과 문명서광의 출현을 반영한다; 상나라의 묘장은 선명한 계급제도를 보여준다. 왜 지금까지 서주왕릉으로 확정된 것이 하나도 없을까? 서주의 묘장은 어떤 특징이 있었을까? 예제는 어떻게 발전하고 완비되.. 2013. 11. 10.
"상관완아묘(上官婉兒墓)"에 대한 6가지 의문 글: 배광휘(裴光輝) 1. 장지(葬地)에 대한 의문 상관완아는 생전에 당중종의 소용(昭容), 즉 이현의 비빈이다. 경룡4년 육월 이일(710년 7월 3일) 이현은 위후에게 신룡전에서 독살당한다. 향년 55세이다. 십일월 당중종을 정릉(定陵, 지금의 섬서성 부평현 서북 15리에 있는 용천산 남록)에 장.. 2013. 11. 10.
반포(半坡)유적지: 7천년전 17세소녀유골의 수수께끼 글: 조건란(趙建蘭) 약17살된 소녀의 유골에 35곳이나 상처가 나 있다. 그리고 사자의 사지의 뼈는 어긋나 있거나 빠져있지 않으면, 끊어져 있다.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기괴한 상태를 이루고 있다. 더욱 놀라운 점은 그녀를 죽인 흉기들 중 18개는 아직도 유골안에 남아있다는 것이다. 어.. 2013. 8. 4.
병마용갱은 누가 불태웠는가? 글: 진경원(陳景元) 고고여론몰이는 인심을 얻을 수 없고, 부도덕한 짓이다. 문제는 이렇게 발생해서는 안되는 일이 지금 다시 한번 세상 사람들의 앞에서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CCTV와 섬서TV의 현장중계를 통하여, 곧이어 각 매체의 제1면 뉴스를 통하여, 가장 높은 빈도로 계속.. 2012. 6.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