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대지진(嘉靖大地震): 83만명이 사망한 명나라 광세천재(曠世天災)
글: 백년고독(百年孤獨)1556년 1월 23일의 깊은 밤, 인류역사상 사망자수가 가장 많은 지진이 황토고원을 찢어발겼다. 에서 "땅이 갈라지고, 샘물이 솟으며, 건물은 모조리 무너졌다(地裂泉湧, 屋宇盡塌)"라고 한 진도8의 대지진이었다. 섬서성 화현(華縣)을 진앙지로 하여, 83만명의 목숨을 삼켰는데, 이는 당시 중국총인구의 1.5%에 해당했다. 이미 누렇게 된 사료들을 펼쳐보면, 460여년전의 그 겨울밤의 전율을 여전히 느낄 수 있다. "산천역위(山川易位)"의 말일광경지진파는 매초 3킬로미터의 속도로 섬서, 산서, 하북의 3개 성을 석권했고, 600킬로미터에 이르는 단열대를 형성했다. 사료기재에 따르면, "성벽이 모조리 무너지고, 땅이 수십곳 갈라졌다(城垣盡崩, 地裂數十處)" 위하(渭河)는 물길을..
2025. 3. 31.
이자성(李自成)의 개봉공성전(開封圍城戰)
글: 양문찬(楊文燦)숭정14년(1641년) 정월, 이자성은 하남 낙양(洛陽)을 점령한 후, 개봉(開封)의 명나라 수비군의 방어가 비교적 약하다는 것을 알고, 즉시 행동에 들어간다. 그는 이것이 명군의 방어선을 돌파하고, 조정을 무너뜨릴 중요한 기회라고 여긴다. 그리하여, 이월, 이자성은 3만여명의 농민군을 이끌고 밤을 새워 행군하여, 3일만에 개봉성에 도착한다. 하루빨리 성을 함락시키기 위해, 그는 부하들로 하여금 쟁기(犁), 호미(鋤), 도끼(斧)등의 도구를 가지고 성벽을 둘러싸고 터널을 파도록 지휘하여, 이를 통해 공격과 침투를 진행하고자 한다.개봉의 수비군지휘관은 명나라의 순무인 고명형(高名衡)이었다. 그는 틈군(闖軍, 이자성군)이 공격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군대를 지휘하여 수비를 강화하..
2025. 3.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