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문학/시련취화

정판교(鄭板橋)의 난득호도(難得糊塗)

by 중은우시 2006. 2. 9.

 

 

청나라 건륭제때 양주일대에서 활동했던 사람으로 정판교(이름은 鄭燮-정섭-이고 판교는 그의 호임)가 있다. 그는 김농(金農)등과 더불어 양주팔괴(揚州八怪)로 불리웠다.

 

그는 독특한 글씨체로도 유명한데, 그가 쓴 글 중에 가장 유명한 글은 "난득호도(難得糊塗 : 어리숙하기는 어렵구나)"이다. 이 글을 쓰게 된 데에는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정판교가 산동에서 벼슬을 하고 있을 때, 하루는 내주지방의 거봉산으로 유람을 갔다. 원래는 산에 있는 정문공비를 보려고 했는데, 가다가 시간이 늦어 산속에 있는 모옥에서 하루를 지내게 되었다. 모옥의 주인은 유생티가 나는 노인이었는데 스스로 호도노인(糊塗老人)이라고 소개했다. 모옥에는 네모난 탁자크기의 벼루가 있는데, 돌의 질이 매우 뛰어났고, 조각도 잘 새겼다. 정판교는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다음날 아침에, 노인은 정판교를 청해서 글을 하나 써달라고 부탁하면서, 벼루에 새기기 좋게 써달라고 하였다. 정판교는 즉석에서 "난득호도"라는 네 글자를 써서 주었다. 그리고 뒤에는 다음과 같이 썼다.

 

강희수재(康熙秀才) 강희제때는 수재

옹정거인(雍正擧人) 옹정제때는 거인

건륭진사(乾隆進士) 건륭제때는 진사.

 

옛날에 과거는 지방에서 중앙으로 3단계를 거쳐야 했는데, 일단계를 합격하면 수재, 이단계를 합격하면 거인, 황제앞에서 세단계를 합격하면 진사가 되었다. 정판교는 글재주가 뛰어났지만, 과거에는 좀 늦게 되어서, 강희제때 지방에서 시험을 합격하고 옹정제때 성급, 건륭제때 비로소 전시에 합격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벼루가 워낙 컸으므로, 옆에 빈자리가 있어서 정판교는 노인에게 발어를 써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노인은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득미석난(得美石難)

득완석우난(得頑石尤難)

유미석전입완석갱난(由美石轉入頑石更難)

미어중, 완어외(美於中, 頑於外)

장야인지려(藏野人之廬)

불입부귀문야(不入富貴門也)

 

아름다운 돌을 얻기는 어려워라.

짱돌을 얻기는 더욱 어려워라

아름다운 돌이 짱돌로 바뀌는 것은 더욱 어렵구나

아름다운 것은 가운데 있고, 거친 것은 바깥에 있으니.

은거한 사람의 오두막에 숨어있을뿐

돈있고 권세있는 사람의 집에는 얼씬도 않으리라.

 

그리고는 그도 도장을 꺼내서 찍었다.

 

원시제일(院試第一) 원시에서는 일등

향시제이(鄕試第二) 향시에서는 이등

전시제삼(殿試第三) 전시에서는 삼등

 

노인이 쓴 글을 보고 정판교는 깜짝 놀랐다. 그제서야 비로소 노인이 보통인물이 아님을 알아본 것이다. 원래 그는 옛날에 고관을 지내고 은거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정판교는 다시 붓을 들어 글을 썼다.

 

총명난(聰明難)

호도난(糊塗難)

유총명이전입호도갱난(由聰明而轉入糊塗更難)

방일착, 퇴일보(放一著, 退一步)

당하심안(當下心安)

비도후래복보야(非圖後來福報也)

 

총명하기는 어렵구나.

어리석기도 어렵구나.

총명한 사람이 어리석게 되기는 더 어렵구나.

하나를 버리고, 한 걸음을 물러서는 건

마음이 편안해 지려고 하는 것이지,

나중에 복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