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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중국의 기업가

중국의 삼대 상방(商幇)

by 중은우시 2005. 11. 26.

중국에서도 상인의 역사는 길다. 특히, 명청시대에는 전국에서 개략 10개정도의 큰 상방(商幇)이 나타나는데 그 중 가강 세력이 크고, 영향력이 컸던 상방은 세군데이다. 바로 진상(晋商), 휘상(徽商), 조상(潮商)이 그들이다.

 

진상

 

진상의 흥망성쇠는 장예모 감독이 만든 공리 주연의 <<홍등>>을 보면 알 수 있다. 영화속에 나오는 산서의 교가대원(喬家大院)은 청나라때 부상의 집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다. 진상은 "산서방(山西幇)", "서상(西商)"), "산고(山賈)"라는 명칭으로도 불리웠다. 진상은 산서성의 풍부한 소금, 철, 보리, 면, 피, 모, 목재, 담배등의 특산을 활용하여 장거리무역을 하였으며, 강남의 비단, 차, 쌀을 다시 서북, 몽고, 러시아등에 가져다 팔았다. 산서는 장거리무역의 필요에 따라 표호(票號)라고 불리는 일종의 금융업체를 만든다.

 

휘상

 

휘상은 진상과 더불어 이름을 떨치며, 홍정상인 호설암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휘상은 "신안상인(新安商人)", "휘주상인(徽州商人)"이라고도 부른다. 그들은 구 휘주부에 속하는 상인집단을 통칭하여 부르는 것이다. 이들은 명나라때 최고의 성세를 누리다가 청나라가 들어서면서 쇠락하기 시작한다. 휘상들은 소금, 차를 운성하는 무역노선을 개척한다. 휘상의 전성기에는 "무휘불성상(無徽不成商, 휘상이 없으면 장사가 되지 않는다)". 휘상의 특징은 돈을 버는 것은 일종의 수단으로 생각하였고, 관직에 나가는 것을 최종목표로 삼았다는 점이다. 청나라 건륭제 때부터 가경제 때까지의 70년간 진상과 휘상은 모두 소금장사를 하였으나, 휘상의 자제들은 265명이 과거를 통과하여 벼슬을 하였다. 진상은 단지 22명에 불과하였다.

 

조상

 

조상은 "조주상방(潮州商幇)"과 "광동상방(廣東商幇)"의 공동칭호이다. 조상은 원래 진상이나 휘상에 미치지는 못하였다. 조상은 명나라 이후에 나타나서 사적으로 해외무역을 시작하였다. 청나라 이후 홍두선(紅頭船)은 조상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조상을 "홍두선상인"이라고도 부른다.  조상이 이름을 떨친 것은 근,현대이다. 근대에 외국경제세력의 침입으로 진상과 휘상이 몰락한 후, 조상은 해외이민을 통하여 동남아, 홍콩, 조주, 산두지구에서 세력을 키웠다. 이가성(李嘉誠), 진필신(陳弼臣)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