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하나의 민족의 흥망성쇠는 기본적으로 생산에 달려있다. 중화민족이 오랫동안 존속해온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고 노력한데 기초한 것이며, 스스로가 생산한 것으로 충분히 생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의 민족이 다른 민족이 생산한 결과물을 약탈하는 것만으로는 장기적으로 유지할 수가 없으며, 더구나 이를 기반으로 위대한 민족이 될 수도 없다. 많은 침략민족이 역사상 한번 나타났다가 사라진 것은 생산력이 강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민족의 생존경쟁도덕은 스스로 생산하여 스스로 먹고사는 것이고, 그 다음이 외적의 침입을 막는 것이다.
생산은 장기적인 것이고, 무슨 극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비록 모든 사람들의 기본이 되는 것이기는 하나 소설의 제재가 되기에는 부족하고, 특히나 무협소설의 제재가 되기에는 부족하다.
몇 안되는 사람들이 무법천지로 생활하는 것은 큰 일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사회가 무법천지이고 일체의 규범이 전부 파괴된다면 이런 사회는 오랫동안 존속할 수가 없다. 그러나, 바람도 고르고 비도 적당하며, 나라도 편안하고 백성도 안락한 상황은 소설의 제재로서 적당하지 않다. 즉, 남자가 장가가고 여자가 시집가며, 아들딸을 낳아서 기르는 정상적인 가정생활은 소설의 제재로 적당하지 않은 것이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 소설의 첫번째 말은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나, 불행한 가정은 각각 다른 불행을 지니고 있다". 그가 쓴 것은 불행한 가정이다. 그러나, 전세계의 남자가 모두 로미오와 같고, 전세계의 여자가 모두 임대옥과 같으면 인류는 멸종할 것이다.
소설에서 쓰는 것은 통상적으로 특이한 것이고, 비정상적인 사건이나 인물이다. 무협소설은 더욱 그렇다.
무협소설에서의 인물은 절대로 고의적으로 중국의 전통도덕에 반기를 드는 것은 아니다. 길가다가 불공평한 일을 보면 칼을 뽑아들어 도와주는 것은 측은지심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잔악한 자들을 징계하고 좋은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정의지심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기개가 늠름하며 어떤 일은 하지 않는 것은 수오지심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나서서 어려운 일에서 구해주고, 덕으로 원수를 갚는 것은 시비지심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무협소설중의 도덕관은 통상적으로는 정통(正統)에 반하는 것이지만 그렇하고 하여 전통(傳統)에 반하는 것은 아니다.
정통은 단지 통치지가 중시하는 관념이고, 인민대중의 전통관념과 반드시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한비자는 "유가는 글로서 법을 어지럽히고, 협객은 무력으로 법을 위반한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통치자의 입장이고, 유가는 인애와 인정에 호소함으로써 엄격한 통치를 어지럽히고, 협객은 폭력을 수단으로 당국의 진압수단을 침해한다고 한 것이다.
고전소설의 전통은 무협소설이 받아들인 전통인데, 주로는 민간의 것이고, 왕왕 관청과는 대립적인 입장에 선다.
9.
무협소설의 배경은 고대사회이다.
주먹, 다리, 칼, 검은 기관총이나 소총의 앞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중요한 원인은 현대사회의 이익은 법률과 질서를 요구하고, 법률과 질서를 파괴할 것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무협소설중의 영웅의 각종행동은 개인이 폭력으로 법률정의를 집행하는 것이고, 관리를 죽이고 불법단체를 조직하고, 감옥을 털고, 유괴하고, 강도하는 등등 현대에서 보면 반사회적이고 국민대중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테러리스트의 활동과 같고, 정신이 올바르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면, 극소수사람으로부터만 동정을 받게 될 것이다. 현대의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국민과 정부가 일체이다.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그렇고, 실제에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고대사회에서의 의적 로빈훗, 양산박의 사나이의 행동은 백성에게 유리하였으나, 현대사회라면 백성들에게 불리할 것이다. 외부 침략자의 점령에 반항하는 경우나 극단적인 폭정이나 비인도저행위나 대다수백성과 적이 된 독재자에게 반항하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다행히도 사람들이 무협소설을 읽을 때에는 정신상으로는 일종의 정의를 실현하는 감정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하여 어떤 천진난만한 독자가 소설에 나오는 영웅의 구체적인 행동까지 모방하려고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무협소설을 읽은 어린 아이가 산으로 들어가서 스승을 모시고 무공을 연마한다거나 하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모두 총명하므로 비록 무공을 익힌다고 하더라도 권총 하나를 당해낼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고, 굳이 심산에 들어가서 스승을 모시고 고생스럽게 무공을 익힐 필요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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