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도덕은 문명의 산물이고, 야만인간에는 도덕이 없다.
위소보는 어릴 때부터 기원(妓院)에서 자랐다. 기원은 가장 도덕을 따지지 않는 곳이다. 후에 그는 황궁에 들어간다. 황궁 역시 가장 도덕을 따지지 않는 곳이다. 교양에 있어서, 그는 하나의 문명사회에서의 야만인이다. 생존하기 위하여, 승리하기 위하여 그에게 못할 일이란 없었다. 훔치고, 빼앗고, 유괴하고 속이고, 허풍떨고, 아부하고..뭐든지 다 했다. 이런 일을 하면서도 마음은 편안하였다. 식인부락중에 사는 야만인은, 사람고기를 먹는다고 하여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위소보는 글을 몰랐고, 공자와 맹자가 말한 도덕이 뭔지 몰랐다. 그는 전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공맹의 사상은 모든 중국사회에 영향을 미쳤다. 다르게 말하면, 공자와 맹자는 중국인의 사상중 좋은 부분을 체계적으로 말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위소보는 중국인의 사회에서 생활하였다. 비록 시정과 황궁에서의 야만인이지만, 그도 친구를 사귀고, 자연히 중국사회에서 공인되는 도덕을 받아들였다. 특히 그가 천지회에 가입한 후에는 중국 강호인물들의 도덕관념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러한 도덕관념은 사대부, 선비가 신봉하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사대부가 아는 도덕은 매우 많으나, 실행하는 것은 적었다. 강호인물이 신봉하는 도덕은 매우 적었으나, 신봉할뿐아니라 반드시 지켰다. 강호에서 유일하게 중시하는 도덕은 의리이다. "의리"라는 두개의 글자는 춘추전국시대이래로, 어떤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하든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중국사회에서 또하나 보편적으로 중시되는 것은 정이다. 인정의 정이다.
5.
"인정"과 "의리"를 중시하는 것은 중국전통사회의 특징이고, 특히 민간과 하층사회에서는 그랬다.
통치자는 "원칙"을 중시여겼다. "충"은 통치자에게 복종하고 받드는 원칙이었고, "효"는 가장의 권위를 확립하는 원칙이었다. "예"는 사회질서를 보호하는 원칙이었고, "법"은 통치자가 정한 규율을 집행하는 원칙이었다. 통치계급에게는 총효예법은 신성불가침의 원칙이었다. 황제는 국가의 화신이고, 충군과 애국은 이퀄(=)관계라고 볼 수 있다.
"효"는 본래는 부보를 사랑하는 천성이다. 그러나 통치자는 이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이것으로 사회질서를 고정시키는 권위의 상징을 삼았다. 자연적인 사랑에다가 많은 억지스러운 규율을 덧붙였다. "효도"와 "예법"의 결합은 사랑하고 아끼는 것보다는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더 많도록 만들었다. 중국의 전통문학작품중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쓴 글은 많지만 아버지의 사랑을 쓴 글은 거의 없다. 자기 부친은 "가엄(家嚴)"이라고 부르고 모친은 "가자(家慈)"라고 부름으로써 명칭에서도 아버지는 엄하고 모친은 자애롭다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게 하였다. 주자청이 쓴 <<배영(背影)>>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미창매 부친의 사랑을 감동적으로 그린 글을 맞게 된다. "총효"의 두개 글자가 같이 불리게 된 이후 "효"의 덕이 통치자에 의하여 지나치게 강조된 이후 거기에서 "친"(친근함)을 빼앗기게 된 것이다. 한나라이래로 "효"와 "렴"의 두가지 덕은 인재를 선발하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청말에 이르기까지 과거를 통과한 사람을 효렴이라고 부르게 된다.
민간의 관념에서 "법도 없고 하늘도 없는 것"(無法無天)은 용납된다. 심지어 "법도 없고 하늘도 없는 것"은 권위와 규율을 멸시하는 것으로 영웅호한의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정도 없고 의리도 없는 것"(無情無義)는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 정도 없고 의리도 없다면 사회에서 배척받게 된다.
심지어 무뢰하고 후안무치한 경우(無賴無恥)에도 친구는 있을 수 있다. 의리만 중시한다면...
"법"은 정치규칙이고, "천"은 자연규칙이다. "무법무천"은 정치규칙과 자연규칙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무뢰무치"는 사회규율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다만, 중국사회에서 "정의"는 가장 중요한 사회규율이다. "무정무의"한 사람은 가장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중국 전통사회에서는 원칙은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의(情義)는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6.
인정과 의리를 중시하는 것은 당연히 좋은 일이다.
중화민족은 수천년이래로 계속 성장하고 생존경쟁중에서 계속 활력을 유지하였으며, 외적의 침입을 받아서도 계속하여 다시 일어섰는데, 이것은 중국인이 정의를 중시하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고금중외의 철학자중에서 공자는 가장 교조주의에 반대하고 실제를 중시한 사람이다. "성지시지야"(聖之時者也)(성인은 때에 맞추는 사람이다)", 바로 가장 환경에 적응을 잘하고, 교조주의에 구속을 받지 않는 성인이었다. 공자는 중국인의 성격을 나타내는 위대한 인물이다. 공자철학의 근본사상은 "인"(仁)인데 이것은 일상생활에서 다른 사람을 잘 대하라는 것이고, 이로서 일제의 대소 집단(집안, 고향, 국가)의 화합과 단결을 도모하는 것이다. 인정은 "인"의 일부분이다. 맹자철학의 근본사상은 "의"(義)인데, 이것은 일체의 행동은 "합리"를 기준으로 하라는 것이고, 합리는 본인에게 떳떳하고, 다른 사람에게 떳떳한 것이다. 자신에게 떳떳하기는 쉬우나, 다른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하고 특히 친구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집에 있을 때는 부모에 의지하고, 집을 나서면 친구에 의지한다". 부모와 친구는 인생의 도로에서 두개의 지주이다. 친구는 군신, 부자, 형제, 부부와 병렬적으로 얘기되어 오륜의 하나로 언급된다. 즉, 5대인간관계의 하나라는 것이다. 서방사회, 페르시아, 인도사회에는 친구와의 관계를 이 정도로 높이 끌어올린 경우가 없다. 그들이 중시한 것은 종교 즉 신과 인간의 관계였다.
한개의 집단이 조화롭고 단결하고, 서로 아끼려면 환경이 변화할 때 그에 맞추어 합리적인 방식으로 적응하여야 한다. 이런 집단은 다른 집단과의 투쟁에서도 지지 않으며 오래가게 된다.
고대의 많은 용감하고 강하며, 조직이 탄탄하고, 규율이 엄격하며, 각고노력한 민족이 역사에서 소멸하게 되고,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게 되는데, 주요한 이유는 그들 사회에 탄력성이 부족하였기 때문이다. 사회의 교조와 종교의 교조하에서는 탄력이 없다. 탄력이 없는 사회는 뻣뻣한 시체(강시)와 같은 사회이다. 아무리 용감하고 억센 강시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쓰러지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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