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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학/무협소설

김용 : [위소보 이녀석] (3)

by 중은우시 2005.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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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고전소설은 기본적으로 반교조적이고 반권위적이다.

 

<<홍루몽>>은 과거로 공명을 얻는 것을 반대하고, 부모의 명에 따른 혼인을 반대하고, 자유연애를 찬영하는데, 이것은 당시의 정통사상에 대한 반역이다. <<수호전>>의 영웅은 살인방화, 약탈강도를 저지든다. 비록 최후에 조정에 귀순하지만 책에서 쓰는 것은 관리를 죽이고 반란을 일으키며 조정에 반항하는 내용이다. <<서유기>>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손오공이 천궁에서 난리를 치며 옥황상제에 반항하는 부분이다. <<삼국연의>>가 쓴 것은 역사이야기이지만 기본주제는 "의리"이지 "정통"이 아니었다. <<봉신연의>>는 소설로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민간의 사상풍속에 미친 영향은 매우 컸다. 쓴 내용은 무왕이 주를 토벌할 때 "천하는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며, 덕이 있는 자만이 앉을 수 있다"는 것이고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나타가 부친의 권위에 반항하는 부분이다. <<금병매>>가 쓴 것은 인간의 본성중의 추악(손술우선생이 잘 파악하여 언급하였듯이 주로 인성의 기본적인 탐, 진, 치 3독)으로, "사람은 처음에는 성격이 선량하였다"는 정통적인 내용과는 상반되는 것이다. <<삼협오의>>에서 가장 재미있는 인물은 조정시기의 백옥당이고 관부에 복무한 이후의 어묘전소가 아닌 것이다.

 

무협소설은 기본적으로 중국고전소설의 전통을 승계하였다.

 

무협소설이 중국독자들로부터 보편적인 환영을 받는, 이유중의 하나는 그 중의 근본도덕이 중국대중이 보편적으로 동의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무협소설은 협의소설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협"이라는 것이 정의롭지 않은 일에 격렬하게 반항하는 것이다. 특히 주변 사람이 당한 불공평한 일에 대하여 대항하고 노력하는 것이다. 서방 사람이 중시하는 것은 자기의 권력을 쟁취하는 것인데, 이것은 중국사람들이 생각하는 협의 범주에 들지는 않는 것이다. "의"는 사람과 사람의 감정을 중시하는 것이다. 보통은 자기를 희생한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무"는 폭력으로 비정의의 폭력에 대항하는 것이다.  중국인은 소설중에서 의리를 중시하는 사람을 좋아했다. 정사에서 관우의 성격이나 재능은 제갈량에 비하여 차이가 많다. 그러나, 민간에서 관우는 "정신" "대제"로 숭상받고 있으며, 제갈량은 단지 똑똑한 사람으로 취급되고 있을 뿐이다. <<삼국연의>>에서 관우는 의리의 상징이다. 그러나 제갈량은 단지 지혜의 상징이다. 중국인은 의리를 지혜보다 훨씬 중요하게 생각한다. <<수호전>>에서 무송, 이규, 노지심등은 사람이 조악하고 잔인하며 일체의 규율을 깨뜨리지만, 이건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의리를 중시하기 때문에 영웅인 것이다. 많은 평론가들이 이해를 못하는 것은 송강은 글을 잘하지도 싸움을 잘하지도 않고, 말단관리에 불과할 뿐인데, 왜 많은 영웅들이 그를 공경하고 따르며 그를 두령으로 모시는지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실은 이유가 매우 간단하다. 송강은 의리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의리는 중국인의 도덕관념에서 매우 중요하다. 황제의 조정에 불충하고, 반란을 일으키는 것은 그럴 수도 있다. 왜냐하면 중국인의 반역성은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중을 때리고 부처를 모욕하거나 도사를 저주하고 비구니를 욕하는 것고 가능하다. 왜냐하면 중국인은 종교를 그다지 중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훔치고, 강도하고, 살인하고, 강간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민간에서 이를 싫어하는 정도는 외국사회만큼 강렬하지 않다. 다만 부모에 불효하는 것은 절대 안된다, 친구를 팔아먹는 것도 절대 안된다. 사회학의 관념에서 보면 "효도"는 종족을 번성시키고, 사회질서를 유지시키는데 중요한 작용을 하고 "의리"는 단결시키고 생존경쟁을 진행하는데 중요한 작용을 한다. "인정"은 내부모순을 없애고 내부총돌을 완화시키는데 중요한 작용을 한다.

 

같이 방회를 묘사한 소설이지만, 서양소설중의 <<대부>>, <<천사의분노>>등등에서는 암흑계의 보스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자기의 형제들을 죽인다. 이것은 중국의 소설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다. 왜냐하면 중국인은 의리를 중시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소설가 위고의 <<비참한 세계>>에서 단지 법률을 중시하고 인정을 돌보지 않는 경찰을 중국인들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사대부라고 하여 의리를 중시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좌전>>, <<전국책>>, <<사기>>등의 사서에서 적지 않은 친구간의 의리에 관한 사실을 기재하고 이를 찬양하고 있다.

 

서한 여후가 정권을 잡았을 때, 여씨들이 유씨로부터 황제위를 빼앗고자 할 때, 진평과 주발은 여씨들의 난을 평정하고자 하였다. 당시 여록은 병권을 집고 있었는데, 그의 친구 여기는 그를 속여 출타하게 하고는 병권을 빼았고, 결국 여씨들을 죽여버렸다. 여씨들을 몰아낸 것은 현재로 말하면 사인방을 몰아낸 것과 같은 쾌거였음에도 당시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여기가 친구를 배신한 것을 질책하고 있었다. 한서에서는 여기가 친구를 팔아먹은 것을 하늘이 멸할 것이다라고 기재하였다. 이러한 비판이 불공평한 것이지만, 친구의 우정은 정치대의보다도 상위의 도덕관념이었다. 친구는 절대 팔아먹어서는 안된다는 것은 중국인의 마음에는 뿌리가 깊고 절대 뽑아내버릴 수 없는 것이다.

 

부모를 위하여 국법을 어기는 경우에 전통적으로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유가에는 하나의 유명한 명제가 있는데 "순의 부친이 중죄를 범하면, 대법관 호도는 법에 따라 처리한다. 만일 극형에 처해야 하면, 황제위에 있던 순은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다" 표준답안은 순은 황제위를 버리고, 부친을 업고 도망친다는 것이다.

 

대의멸친 이 말은 듣기에는 좋은 말이다. 그러나 인정을 중시한 중국사람들은 진짜 그렇게 한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법률은 인정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정리와 법률은 같이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 더 와닿았다. 말로는 "같이 고려하는 것"이지만 실제는 정을 중시하고 법을 중시하지 않는 것이다.

 

중국인의 전통관련중에는 "정"은 "법"보다 중요하다. 제갈량이 눈물을 흘리며 마속을 벤 것이 만일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면 평가는 매우 달라졌을 것이다. 중점은 눈물을 흘린데 있는 것이지 벤 데 있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