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호해(胡亥)
중국의 장후시대(江胡时代, 장쩌민, 후진타오시대)의 "구룡희주(九龙戏珠, 아홉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가지고 놀다. 아홉마리의 용은 9명의 정치국상위, 여의주는 권력을 의미함)", "칠룡희주(七龙戏珠)"를 얘기하면 해외여론은 그것을 집단지도체제의 상징이라고 여긴다. 그러면서 이를 중공이 정치체제방면에서 '진보'한 상징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는 지극히 잘못된 것이다. 실제로, 이는 장쩌민이 조직의 인원수에서의 우세를 이용하여 상대방을 억누르며 대권독점을 확보하려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구룡희주"는 집단지도체제가 아니고, 각각 자신의 업무를 책임지거나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던 것도 아니다. 더더구나 핵심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 본질은 허수아비 후진타오를 집단으로 압박하며, 포위공격태세를 유지하는 동시에 근본적으로 태상황(장쩌민을 가리킴)이라는 핵심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서태후가 청나라조정의 최고권력을 장악했던 것과 유사한 훈정체제(训政体制)가 형성된다.
등소평(邓小平)이 중공에 남긴 최대의 정치유산은 수렴청정체제를 실행하는 관례, 잠규칙등 일련의 제도경험이고, 이는 중공고위층이 계속하여 보배로 떠받들어졌다. 또한 장쩌민이 장기간 밀실에서 정치를 조종하는 유력한 핑계이자 합리적인 근거로 작용했다. 장쩌민은 등소평의 경험과 교훈을 흡수하여, 수렴청정을 진행하면서 인력배치를 엄밀하게 하고, 운용을 교묘하게 하면서, 수단이 뛰어나서 노화순청(炉火纯青), 등봉조극(登峰造极)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이는 공산당역사상 전무후무한 것이고, 전체 역사로 보더라도 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장쩌민이 당정군의 대권을 장악한 구체적인 방법은 이러했다: 정치국상위에 자신의 심복을 여럿 배치했을 뿐아니라, 당정군의 수직계통에서 후진타오,원자바오에 대하여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는 동시에, 사대금강(四大金刚)을 이용하여 각각 수평적으로 수도안전, 군대간부임면, 공안법정 그리고 은행금융의 4대 핵심부문을 장악한다. 이런 체제하에서, 후진타오는 군권도 없고, 인사권도 없고, 재정권도 없었다. 거의 아무런 기회도 없었고, 거의 허수아비라고 할 수 있었따. 비록 몇 군데 변방의 성은 공청단파가 성위서기를 맡았지만, 중앙에 권력이 고도로 집중되어 있어서, 중앙의 의사결정에 아무런 영향력도 끼칠 수 없었다.
장쩌민이 후진타오,원자바오시대에 했던 것과 비교하면, 시진핑은 수렴청정체제를 취하지 않았지만, 권력구조에서는 장쩌민시대의 경험과 교훈을 흡수했고, 그 구조를 더욱 완비하고 공고히 한다.
먼저, 장쩌민은 수렴청정을 하였기 때문에 명분이 약했다. 허수아비인 총서기와 총리를 두어 리스크와 책임을 부담하게 하였지만, 부작용은 많은 자원을 이들 허수아비의 언행을 감시감독하는데 써야했고, 관료사회의 업무규칙을 새로 만들어야 했다. 그러다보니,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효율이 저하되는 문제가 있었다. 이로 인하여 권한은 있으나 책임을 지지 않고, 책임은 있으나 권한은 없는 분열상태가 초래된다. 그리하여 전체적으로 점점 부패하고, 정부의 공신력과 집정합법성이 점차 소모되여 결국 돌아오지 못할 길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시진핑시애에는 집정자의 문제를 감출 필요가 없어졌따. 총서기는 시진핑 자신이 맡고, 총리는 오랫동안 심복으로, 기꺼이 국무원의 격을 낮추고, 금융등 핵심경제권한을 내놓아, 자신을 약화시키고 충성심을 가지고 '양개유호(两个维护)'를 실천할 수 있는 인물이 맡는다. 20대이후 주요 핵심직위에 시진핑은 모두 자신이 믿을만한 심복들을 배치했고, 대권을 독점했으며, 지휘계통을 일사불란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자신의 팔처럼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장쩌민시대의 여러 폐해를 피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으로, 비록 여전히 7명의 정치국상위를 두었지만, 장쩌민시대와는 달리 이렇게 많은 상위를 둔 것은 그저 부하들을 배치하고, 논공행상하기 위한 것이었다. 상위의 직권은 대폭 축소되어, 총서기의 절대적인 부하나 참모가 된다. 마치 하급관리처럼 정기적으로 시진핑에게 업무보고를 하며, 점검받고, 지시를 받는다. 시진핑은 자주 정치국회의를 개최하여, 상위들을 형해화시킨다. 가끔 상위회를 개최하더라도, 정치국을 무시하고 필요에 따라 임의로 처리해버리며, 아무런 구속을 받지 않는다. 시진핑의 체제내에서, 정치국상위와 정치국위원의 직능은 점차 위축되었고, 기본적으로 고무도장의 역할로 바뀌었다.
셋째, 시진핑은 상위회와 정치국의 수직관리외에, 장쩌민시대의 '사대금강'의 방식을 이어받는다: 단지, 수도금위와 군대관리기능을 한 사람에게 맡겨서, 3대금강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들은 각각 중앙군사위판공청주임 겸 중앙경위국의 실제지휘관인 종샤오쥔(钟绍军) 중장. 중앙서기처서기이며 공안부장인 왕샤오홍(王小洪), 그리고 국무원부총리인 허리펑(何立峰)이다.
종샤오쥔은 현재 나이 56세이고, 2002년에 저장성위서기 시진핑의 비서를 맡은 후 나중에 상하이를 거쳐 계속 시진핑이 중앙으로 진출할 때까지 곁을 지킨다. 18대이후부터 시진핑의 군사비서가 된다. 2017년이후 중앙군사위판공청주임 겸 중앙군사위주석판공실주임을 마는다. 그리고 연이어 중앙군사위개혁및편제판공실주임, 중앙군사위심화국방과국대개혁영도소조판공실주임, 중국인민해방군선거위원회위원등 요직을 맡는다. 관련 채녈을 통하여 알아본 바에 따르면, 종샤오쥔은 20대이전에 이미 중앙경위국 국장, 중앙경위단 단장등의 요직도 맡았다. 장쩌민시대에는 중앙경위국국장과 총정 정치부주관간부의 부주임을 각각 여우시꾸이(由喜贵) 상장과 자팅안(贾廷安) 상장이 각각 맡았었다. 그러나 시진핑시대에는 종샤오쥔 혼자서 모든 군대내의 요직을 차지한 것이다. 이를 보면, 종샤오쥔은 당금 당정군계통중 가장 두드러진 강권철완인물이다. 시진핑의 곁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권한을 장악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작년에 일어난 군대내의 변혁을 보면, 먼저, 전 중앙경위국 국장 왕샤오쥔(王少军)이 급사했다. 그후 로켓군지휘관들이 모조리 낙마한다. 최종적으로 국방부장 리샹푸(李尚福), 전국방부장 웨이펑허(魏凤和) 전공군사령관 딩라이항(丁来杭)등 상장들이 속속 수사대상이 된다. 시진핑은 군대내의 반부패행동을 대규모로 진행하면서, 많은 장군들이 조사를 받게 된다. 시진핑의 위풍을 드러내며 큰 칼을 휘둘러, 일시에 군대내는 비바람이 몰아치고, 모든 사람들이 안위를 장담할 수 없게 된다. 예전 장쩌민시대의 중앙경위국 국장 여우시꾸이는 비록 발호했지만, 그렇게 수단이 악독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장쩌민의 후기에 그는 차오칭(曹清), 왕샤오쥔을 허수아비 국장으로 내세우고, 자신은 경위국 제1서기를 맡는다. 그후 은퇴한 후에 막후에서 조종하면서 암도진창(暗度陈仓)한다. 그러나, 지금 종샤오쥔은 이렇게 나대면서 살벌하고 과감하게 철혈수완으로 시진핑의 앞잡이가 되었다. 그의 담량, 박력은 일류라고 할 만하다. 시진핑의 군대개혁을 순조롭게 추진하면서 반대세력을 겁주어 꼼짝 못하게 만드는데 큰 공을 세웠다. 최근 종샤오쥔이 국방대학정위로 옮겨간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분명 시진핑이 그의 무거운 부담을 줄여주기 위함일 것이다. 동시에 그를 상장으로 발탁하기 위한 특수한 안배일 수도 있다.
시진핑의 두번째 금강은 공안부장 왕샤오홍이다. 장쩌민시대에 정법공안을 장악한 멍젠주(孟建柱)는 중앙정법위서기를 맡아, 정법, 공안, 국안, 법원, 검찰등을 모조리 통제했다. 시진핑은 정법을 공안, 국안의 둘로 나눈다. 국안은 천원칭(陈文清)으로 하여금 정치국위원, 정법위서기를 맡게 했다. 형식상으로는 왕샤오홍의 상급이다; 다만 왕샤오홍은 서기처에 들어가 있어, 직접 정치국상위 차이치(蔡奇)의 지시를 받는다. 천원칭이 비록 정법위서기라는 신분을 지니고 있지만, 왕샤오홍에게 명령을 내리기는 거북하다. 왕샤오홍의 공안부장 직위는 천원칭의 권한에 제약을 받는다. 그리하여 정법의 다른 분야에까지 손을 뻗치기는 어렵다; 다만, 차이치는 중앙의 일상사무를 주관하고, 안정유지업무가 갈수록 중요해지면서, 왕샤오홍이 그 직계부하이다. 날이갈수록 안정국면의 핵심인물이 되어가고 있다; 서로 비교하자면, 왕샤오홍은 이미 시진핑정권에서 중요한 하나의 금강으로, 천원칭보다는 훨씬 무게가 있다. 심지어 서기처 차이치의 부수(副手)라 할 수 있다. 얼마전 어떤 사람은 왕샤오홍이 중앙판공실주임을 맡게 될 것이라는 소문까지 돌았는데, 이를 보면 그의 중앙에서의 지위는 다른 서기처의 인물들을 넘어선다고 할 수 있다.
시진핑의 세번째 금강은 푸젠출신의 국무원 부총리 허리펑이다. 장쩌민시대에 총리의 권한을 분산시키기 위하여, 상무부총리외에 금융을 주관하는 부총리를 별도로 두었다. 각각 왕치산(王岐山), 왕양(汪洋)이었다. 이 자리에 앉은 부총리는 금융을 주관하여 총리로부터 금융관련권한을 가져왔을 뿐아니라, 미중관계를 주도하며, 미국의 정계요인을 접대하고, 미국으로 가서 협상에 참여하는 것도 이 부총리가 책임진다. 목적은 총리가 미중관계사무에 관여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이런 전통은 시진핑시기에도 남아 있었다. 총리 리창(李强)은 금융권이 없다. 상무부총리 딩쉐샹(丁薛祥)은 직권이 명확하지 않고, 오직 허리펑만이 금융, 재정을 주관하고, 미국의 재정부장, 상무부장등 경제요인들을 접대하는 것도 그가 책임진다. 이를 보면, 국무원은 여전히 과거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총리는 대권을 이미 이미 놓쳐버렸다. 소귀가 금강을 무너뜨렸다.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전체적으로 말해서, 시진핑의 현행체제에서 리창, 차이치가 선두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뒤가 3대금강이다. 기본적으로 시진핑정권의 중앙권력구조는 이렇게 형성되었다. 당, 정, 군, 법, 재를 각각 1인이 맡아서, 각자 지킨다. 이들 중요인물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한, 시진핑정권은 금성탕지이고, 정상적으로 운행되며, 누구도 이를 흔들 수 없게 된다.
주못할 점은 정치국위원, 광둥성위서기 황쿤밍(黄坤明)이다. 그는 시진핑체제에서 몇 안되는 지방의 실권을 가진 인물이다. 그와 시진핑의 관게는 차이치, 리창과 막상막하이다. 단지 자리가 그렇게 많지 않다보니, 그에게 상위나 정국급의 자리를 주지 못했을 뿐이다. 그리고 나이가 비교적 많아서, 그저 광둥성위서기를 맡았다. 이는 다른 한편으로 그가 호방하고 활달하다는 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광둥에서 그는 대거 부패척결활동을 벌인다. 시진핑의 정책에 호응하면서 왕양(汪洋), 후춘화(胡春华)등의 정치기반을 파괴하면서, 시진칭이 원로파들을 겁박하는데 큰 공을 세운다.
동시에, 황쿤밍은 헝다(恒大) 쉬자인(许家印)의 내막을 공개하는데 아무런 곤란이 없었다. 그리하여 내부상황이 천하에 공개되고, 쉬자인을 성공적으로 체포하고, 헝다를 뒤집어버릴 수 있었다. 이 거동은 심상치않다. 쉬자인사건은 중앙기율검사위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광둥성위가 책임지고 처리했다. 아마도 시진핑은 중앙기율검사위서기 리시(李希)를 막 광둥성위서기에서 중앙으로 발탁해온 것을 고려한 것일 것이다. 과전이하(瓜田李下), 조금 잘못하면 자신에게 화가 미칠 수 있다. 그래서 광둥의 황쿤밍에게 사건처리를 맡긴 것이다. 중앙기율검사위를 배제한 것은 은연중에 리시를 견제하는 뜻도 있을 것이다.
중공의 수십년간의 부패와 관련한 문제는 심지어 미국에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고, 잘못하면 중앙을 건드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쿤밍은 강경하게 처리하였으니 그 박력은 알아줄 만하고, 보는 사람들이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다: 동시에 그가 시진핑에게 충분한 신임을 받고 있다는 것도 말해준다. 지강신군(之江新军)의 해외소식통이자 호주에 거주하고 있넌 장왕정(蒋罔正)의 분석에 따르면, 황쿤밍이 남방에 자리잡은 것은 하나의 비밀사명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민간의 재물을 긁어모아, 장래 대만을 통일하는데 거액의 군비를 조달하는 것이라고 한다. 국가재정계통외의 재물원을 확보하는 것이며, 대만해협전쟁의 군수조달을 순조롭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황쿤밍은 시진핑의 비밀무기로, 광둥에 있지만, 직권이 아주 크다. 마치 황제가 각성을 순찰하도록 보낸 팔부순안과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치 축구경기에서 경기장을 마음대로 오가는 미드필더처럼 여러 분야에 관여하면서 응급구조대역할을 하는 것이다. 황쿤밍은 변방에 있으면서, 중앙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조정의 일에 대하여 더욱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일단 조정에 변고가 발생하면 그는 바로 나서서 시진핑을 도와 대국을 안정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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