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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북대와 청화

직접 목격한 북경대학, 청화대학 입학과정의 괴이한 현상

by 중은우시 2023. 4. 18.

글: 청년력(靑年力)

 

입학선발때 나는 계속 생각했다. 우리는 어떤 학생을 북경대학에 뽑아야 할까?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생각해왔다. 학교도 학생을 선택하지만, 학생도 학교를 선택한다. 입학선발위원으로서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한 학생을 북대 혹은 청화로 데려오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일 것이다. 더 해야할 일은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더 많이 학생에게 제공하여, 그로 하여금 정보의 장벽을 넘어 자기가 좋아하는 학교와 전공을 선택하게 하는 일일 것이다. 한 대학선배의 말에 따르면, 초심(初心)을 찾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학선발위원으로 오래 일하다보니 갈수록 많은 괴이한 현상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초심은 어디로 갔을까?

 

괴이한 현상 1: 학생과 가장이 입학선발위원 앞에서 말다툼을 하다.

 

기실 많은 입학업무는 아주 정상적인 일이다. 가장으로서는 항상 경영계통, 컴퓨터계통등 쉽게 취업할 수 있는 학과를 선호한다. 학생으로서 아마도 정말 흥미가 있어서이거나 혹은 단순히 반역심리에 의해서인지 경영계통, 컴퓨터계통을 선택하는데 대하여 저항하는 경우가 있다. 모두 학생에게 좋게 하기 위한 것인데, 가장은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아이 자신도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마지막에는 아마도 이를 두고 감정싸움을 벌이게 될 것이다.

 

극단적인 사례를 얘기해보겠다. 1년전에, 나는 어느 성(省)으로 학생모집을 하러 갔다. 한 아이의 점수가 아주 높아서 이미 북경대학에 입학신청서를 내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그러나 전공에 있어서, 모친은 딸아이가 경영계통에 들어가면 쉽게 취업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지만, 아이는 이과쪽을 전공하고 싶어했다. 당시 학생모집하는 호텔에서 이미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 아이는 말하기를, "나는 북대 물리학과로 써낼 거야", 모친이 말하기를 "네가 물리학과를 써내면 나는 너를 딸로 인정하지 않겠다."  계속 대치하다가 그날 지원학과를 결정하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간 후 딸이 전화를 걸어 그녀를 지지하는 친척들을 찾았고, 모친은 역시 친척들에게 전화를 걸어 자기 입장을 지지해달라고 했다. 아이 부친의 전화를 받고 그녀의 집으로 갔을 때, 정말 친척들이 두쪽으로 나뉘어 대치하고 있었다. 드라마보다도 더욱 드라마같은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내가 이 내용을 인터넷에 올리자, 인터넷에서는 모조리 모친을 비난했다. 그러나 입학담당자로서 나는 아이가 아음 속으로 진정 물리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저 강한 모친에 대한 반역심리가 컸다. 결국 나는 아이를 도와 원배반(元培班, 우리나라의 자유전공학과에 유사함. 2학년때 전공을 결정)으로 신청하게 했다. 그녀에게 먼저 1년을 들여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전공을 알아보고 1년후에 다시 결정하라는 것이다. 며칠전 그녀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는 이미 경제쪽으로 선택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의 입학생모집에는 아주 큰 곤경이 하나 있다. 학교는 학생을 이해하지 못하고, 학생도 학교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학생은 스스로에 대하여도 알지 못한다. 학생이 자신의 초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사회의 관점에 순응하는 것이고, 그렇게 되어 소위 인기학과가 생겨나게 된다. 다른 하나는 많은 학생들이 반역심리를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알고, 결국 대학에 진학한 후 자신이 하고자 했던 것과 달랐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건 더욱 큰 비극이다.

 

괴이한 현상 2: 청화,북대는 점수만 보고 학생은 보지 않는다.

 

입학생모집이래, 지금까지 최대한 이런 현상은 피하고자 했고, 나는 모든 학생들이 자신에게 적합한 전공을 찾도록 해주려 했다. 심지어 어떤 때는 그런 학생을 위해 그의 점수로는 갈 수 없는 전공을 골라주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입학생모집과정에서 비난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내 생각에, 입학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그 학생의 학교선배이거나 형오빠이다. 나는 그들의 스승과 부모에게 떳떳하고 싶다. 나는 언젠가 그들이 후회하면서 그때 어느 대학 혹은 어느 학과를 선택할 걸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다만, 입학생모집이래,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너의 이 점수로는 XXX는 곤란하니, XXX를 시도해보지 않겠니." 처음 이 말을 들은 것은 내가 대학입학할 때였다. 당시에 그 말을 듣고 마음 속에서 뭐라고 할 수없는 비애가 느껴졌다. 북대는 오랫동안 부지불식간이 이런 말을 하는데 습관이 되어 있었고, 오히려 더욱 심하게 말하곤 했다. 우리의 목적은 모든 점수가 그에 대응하는 전공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적합한 것을 찾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 과정은 내가 보기에 신성한 것이고, 채소시장에서 배추를 사고파는 것처럼 공리를 따져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현재, 이런 상황은 갈수록 두드러진다. 금년에 학생모집을 하는데, 한 아이가 원래 나와 화학을 전공하기로 말했었다. 나는 그가 화학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비록 내가 문과출신이어서 그가 말하는 것들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고등학생으로서 스스로 대학수준의 화학을 배우고 그리고 나에게 그것을 반시간이나 조리있게 설명한다면 나는 그가 화학을 정말 좋아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 그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와서, 광화(光華, 광화관리학원은 북경대학의 경영대학의 명칭임)로 가겠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의 부친이 화학은 쓸모가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더욱 슬픈 일은 내 곁에 있던 또 다른 입학처의 인원은 그에게 높은 점수가 아까우니, 광화를 가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나로서 난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괴이한 현상 3: 청화 북대가 고득점자를 다투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청화, 북대가 다투는 것은 점수이지, 학생이 아니라는 것이다. 1년만도 아니고 1번만도 아니다. 내가 들은 입학처의 교수는 어느어느 학생은 성격에 결함이 있어서, 청화 북대에 입학해도 제대로 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하면서도, 그의 점수가 높으면 여전히 우리가 별로라고 생각하지만 그 학생을 데려오기 위해 아부를 떨어야 한다. 그리고 청화대학과 나조차도 별로라고 생각하는 학생을 두고 다투게 된다. 왜냐하면 그는 점수가 높기 때문이다. 점수가 높으면, 각종 전공에서 우대해주고, 다른 혜택도 주며 심지어 돈까지도 준다. 그렇다 누구나 돈을 싫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게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일까?

 

나는 입학생을 모집하는 것이 매매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금년 청화대학은 어느 성의 수석에게 20만위안의 가격을 제시했다고 한다. XX, 이런 돈은 내가 보기에 교육기금회에서 주는 것이다. 교육기금회는 더 학자금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돈을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20만위안이라면 5명의 청화대학의 빈곤학생들의 대학생활수준을 2단계는 높여줄 수 있고, 북경대학의 기숙사 한동의 욕실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줄 수 있는 돈이다.

 

왜 돈을 주는가. 왜냐하면 이웃대학(북대)와 경쟁하기 때문이다. 수석을 하나라도 더 데려가려 하는 것이다. 돈은 물론이고 체면까지 버리는 것이다. 그럴 가치가 있단 말인가?

 

한 학교후배가 단체방에서 투덜거리는 말이 생각난다: "현재 입학사정은 이미 얼굴을 보지 않고, 점수만 본다."

 

괴이한 현상 4: 가장은 앉아서 금액을 제시하고, 양쪽에 돈을 달라고 한다.

 

이런 류의 가장에 대하여 나는 정말 할 말이 없다. 아이를 무슨 카드로 여기는가. 양쪽에 돈을 달라고 한다. 어제는 북대와 연락하니 2.5만위안을 주겠다고 했으면, 다음에 청화에 연락하여 4만을 받아낸다. 다시 북대에 청화는 4만을 얘기했으니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어본다. 그후 북대에서 가격을 올려주면, 다시 북대의 금액으로 청화대학에 요구한다. 이렇게 오가면서 아이를 만족할만한 가격에 팔아치우는 것이다.

 

이런 류의 가장에 대하여는 그의 자식을 위하여 슬프다. 사람은 상품이 아니다. 네가 채소시장에서 가격을 깍고 올리는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람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걸작인가! 얼마나 고귀한 이성인가! 얼마나 위대한 역량인가!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얼마나 우아한 거동인가! 행동에서 얼마나 천사같은가! 지혜에서 얼마나 신같은가? 우주의 정화이고 만물의 영장이다!'

 

그러나 가장으로서의 너는, 네가 보기에 입학처에 그저 우리 아이가 얼마짜리인가만 묻고 있다. 가장이 아이를 우수한 물건으로 생각하여 등수, 가격을 따진다. 그게 아이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될지는 생각해 보았는가? 

 

한 학교후배가 자주 나에게 물어보았다. 선배, 만일 언젠가 내 성적이 나빠지더라도 나는 그래도 우수한 걸까요? 그렇다. 그는 전공에서 GPA1등인데, 그의 모친은 매일 전화를 걸어 성적을 물어본다. 내가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비록 그런 모친은 소수이지만, 내가 접촉해본 가장들은 대부분 그런 경향을 띄고 있었따. 그저 경중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여기에서 여러 가장들에게 스스로 알아서 잘 행동하라고 권하고 싶다.

 

괴이한 현상 5: 두 학교가 서로를 비난한다.

 

나는 지금까지 청화대학이 북경대학을 욕하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중 일부는 나와 자주 술마시고 같이 놀던 친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경우는 심지어 이미 연구생으로 북대에 입학하기로 되어 있다. 그런데 청화대학 입학처에만 들어가면, 그렇게 북대를 비난하는데 하한선이 없다. 청화대학 경영학과에 비하면 북대 광화관리학원은 쓰레기이다. 인민대학 금융학과만도 못하다라는 식이다.(부탁컨대, 먼저 광화의 전공부터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다. 경제학과를 가지고 경영대학의 경제전공과 비교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북대 원배반은 문제가 많다. 북대 문과는 너무 허무하다. 북대의 선배들은 힘을 못쓴다. 북대는 공부하기 너무 복잡하다. 고위관료나 부호가정이 너무 많아서 그저 고관대작의 자손들이나 잘 지낼 수 있다. 북대 사람들은 청화는 무슨 공과학교이라든지, 청화는 천성을 억제한다든지 등등. 이런 말들을 들으면 나는 그저 마음 속으로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사회에 Top 2라고 얘기하는 대학의 아이큐가 실제로 이 정도로 낮은지를 굳이 알려줄 필요가 있단 말인가?

 

북대는 좋은 학교이다. 청화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북대, 청화가 학생을 망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만일 있다면, 스스로의 잘못이다. 나에게는 많은 청화대학 친구들이 있고, 청화대학의 전여자친구도 있다. 심지어 어떤 때는 내가 청화대학생보다 청화를 더욱 잘 안다ㅓ고 생각한다. 나는 청화를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내 입으로 그 좋은 학교에 대한 명성을 학생들 앞에서 깍아내리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그렇지만, 매년의 학생모집뉴스를 보면, 왜들 그렇게 하는지.

 

마지막으로, 내가 가슴아프게 생각하는 두 가지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다.

 

금년 학생모집에서 한 아이가 문과인데 점수가 아주 높았다. 그런데 대학입시기간동안 부친이 폐암말기라는 진단을 받는다. 집안이 아주 힘들어졌다. 우리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눌 때도 아이가 나에게 얘기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나에게 단 한푼의 돈도 요구하지 않았다. 나중에 아이의 모친이 몰래 나에게 얘기해주었고, 우리에게 조금 도와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결국 나는 그 아이와 얘기를 하였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디를 가든 나는 잘 지낼 수 있습니다. 내 점수는 단지 내 능력의 상징이지 돈을 요구하는 꺼리는 아닙니다.

 

그리고 한 아이는 북경대학에서 가점40점을 받았다. 그러나 자신의 점수에 40점을 더해도 겨우 입학신청을 낼 수 있을 정도였다. 아이와 그의 모친은 매일 찾아와서, 우리에게 도와달라고 했다. 한번은 학생모집처에서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다. 아이는 지금까지 북대를 가고 싶어했고, 평소에도 성적이 아주 좋았는데, 대학입학시험을 치를 때 마침 감기에 걸려서 제 점수가 안나왔으니 양해해달라고. 나도 가슴이 아팠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심지어 나는 청화대학에서 그보다 점수가 높은 몇명을 빼내갔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다. 그러면 그 아이에게도 입학할 수 있는 희망이 생길테니까.

 

여기까지 쓰다보니 스스로 발견했다. 많은 말들이 감정적이었다는 것을. 이는 평소에 논문을 쓰던 스타일을 위배한 것을 그래도 나는 고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비록 이렇게 하는 것이 같은 학교의 높은 분들에게 내가 전문적이지 못하다고 비난을 받을지언정. 그래도 이렇게 해야겠다. 내가 하고싶은대로 한번은 해야겠다.  나는 알고 있다 이렇게 쓰더라도 절대 고쳐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내년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단지 한마디만 하고 싶다. 여러 해가 지난 후에 북대는 청화 마음속의 북대가 되고, 청화는 북대 마음 속의 청화가 되기를.

 

마지막으로 나는 입학지원서를 쓰는 친구들이 모두 자신이 가야할 곳으로 가기를 바란다. 지원기간이 마감되기 전에 학교선배로서, 한마디를 해주자면 어디를 가든 초심을 잃지 말라는 것이다. 미래에 가야할 길은 아직 멀다. 북대도 좋고, 청화도 좋다. 복단도 좋고, 무한대학도 좋다.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와 그것을 위해 얼마나 노력할 수 있는지이다.

 

말이 나온 김에 여름방학을 즐겁게 보내길 바라고, 고등학교생활을 마친 후에 더욱 다양하고 재미있는 대학생활을 즐기게 되기를 바란다.(중국은 가을에 입학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