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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북경대학 교수들의 집안내력(2): 역사학과, 철학과

중은우시 2022. 4. 30. 19:05

글: 양문리(楊文利)

 

3

 

주일량(周一良)

 

가학을 이어받은 역사학과 교수중 내가 아는 분으로는 주일량 선생이 최고이다. 건덕주씨(建德周氏)는 양(良)자배에 이르러 이미 4대동안 인재들이 속속 배출되어 절강에서 유명한 명문집안이 된다. 증조부 주복(周馥)은 양광총독, 병부상서에 이르렀고, 이홍장(李鴻章)이 발탁하여 중용했고, 일찌기 천진무비학당, 복단대학, 안휘공학의 창립에 참여했다. 조부인 주학해(周學海)는 광서때 진사로 의학(醫學)을 깊이 연구했다. 숙조부 주학희(周學熙)는 실업으로 이름을 떨쳤다. '남장북주(南張北周)'(남쪽은 장건(張謇) 북쪽은 주학희)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부친 주숙도(周叔弢)는 실업에 종사하며, 고적의 감별에 뛰어났다. 당숙 주숙가(周叔迦)는 불학에 정통했다. 한때 북경대학에서 유식학(唯識學)을 강의하고, 중국불학원을 설립하여 원장이 된다. 주일량의 형제자매는 10명인데 모두 뛰어난 인재였다. 주일량은 8살때 가숙(家塾)에서 공부하며 매일 경사를 배웠고, 조금 자라자 일본어를 공부한다. 연경대학을 졸업한 후, 하버드로 가서 박사학위를 받아 영어, 일본어, 범어의 3종 언어에 정통했다. 위진남북조사, 일본사, 아시아사에 대한 연구가 깊었으며 저술도 많았다. 둘째동생 주각량(周珏良)은 북경외국어학원 영어학과 교수이다. 셋째동생 주간량(周艮良)은 천진건축설계원 부원장이다. 넷째동생 주고량(周杲良)은 스탠포드대학 신경학과 교수이다. 다섯째 동생 주이량(周以良)은 동북임업대학 교수이다. 여섯째동생 주치량(周治良)은 북경건축설계원 부원장을 지냈다. 일곱째 동생 주경량(周景良)은 중국과학원 지질연구소 연구원이다. 둘째여동생 주여량(周與良)은 남개대학 생물학과 교수이고, 매부인 목단(穆丹)은 시인, 번역가이다 원래 이름은 사량쟁(査良錚)인데, 해녕사씨집안의 인물로 김용의 친척형이 된다. 당형 주소량(周紹良)은 홍학(紅學), 돈황학, 불학을 깊이있게 연구했고, 감상에 뛰어나고, 서적, 비첩을 많이 소장했다. 당형 주후량(周煦良)은 화동사범대학 외어과 주임으로 번역을 하면서 창작도 많이 했다. 당형 주위량(周煒良)은 홉킨스대학의 수학교수로 아인슈타인의 제자이다.

 

장지련(張芝聯)

 

역사학과 장지련 교수는 관료집안에서 태어났다. 조부인 장가록(張嘉祿)은 광서때의 진사로 관직이 한림원편수, 국사관협수를 지냈고, 저술로 유명했다. 부친 장수용(張壽鏞)은 광서때 거인으로 여러 곳의 재정청장을 지냈고, 나중에 재정부 정무차장에 이른다. 상해에서 광화대학을 창립하여 교장이 된다. 경사를 널리 익혔고, 고적을 많이 소장했다. 장지련은 어려서부터 집안의 가르침을 받아, 학문에 뜻을 세운다. 전후로 연경대학, 광화대학에서 공부하고, 예일, 옥스포드에서 공부하며 프랑스사연구에 전념했다.

 

나영거(羅榮渠)

 

역사학과의 나영거 교수는 시서를 이어받았다. 부친 나문모(羅文謨)는 서화로 세상에 유명했으며, 상해미술전과학교를 졸업하고 회화대가 유해속(劉海粟)에게 배웠다. 서비홍(徐悲鴻), 장대천(張大千)과 뜻이 잘 맞았고 성도예술전문학교 교무장, <사천일보>주필 및 총편집장을 지내고, 나중에 사천대학, 연경대학 교수를 지낸다. 나영거는 어려서부터 공부에 뛰어났고, 시사(詩史)를 많이 공부한다. 전후로 서남연대, 북경대학 역사학과에서 공부하고, 미주사, 미국사에 대한 연구가 깊었다. 특히 현대화이론은 세상에 유명하다. 그는 서예로도 일가를 이루었는데, 부친의 기풍을 닮았다.

 

제문영(齊文潁)

 

역사학과 교수 제문영은 부친의 가업을 이어받아 미국사를 전공했다. 부친 제사화(齊思和)는 연경대학을 졸업하고 하버드대학에서 서양사를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는다. 그후 모교 연경대학에서 교수를 지냈다. 대학교통폐합후에는 북경대학 역사학과 교수가 된다. 

 

하방천(何芳川)

 

역사학과 교수 하방천은 사학의 대가 하자전(何玆全)의 아들이다. 

 

등소남(鄧小南)

 

등소남은 북대역사학과 교수 등광명(鄧廣銘)의 딸이다.

 

4. 

 

풍우란(馮友蘭)

 

철학대가 풍우란은 남양(南陽) 당하현(唐河縣) 사람이다. 당하의 거족으로 당씨를 첫손가락 꼽는다. 조부인 풍옥문(馮玉文), 부친 풍태이(馮台異), 백부 풍운이(風雲異), 숙부 풍한이(馮漢異)는 모두 문학을 좋아하여 세상에 이름을 떨친다. 장인 임지명(任志銘)은 청나라말기의 거인으로 동맹회 회원이고 신해혁명에 참가하며 평생 교육에 종사한다. 풍우란의 동생 풍경란(馮景蘭), 여동생 풍원군(馮沅君)은 어려서부터 집안의 가풍을 이어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전후로 북경대학에 입학하고 이어 미국, 프랑스에 유학한다. 풍우란은 철학가로 일대의 종사이다. 풍경란은 지질학자로 청화대학 지질학과 주임을 지냈다. 풍원군은 작가, 문학사가로 신중국의 최초 여성일급교수가 된다. 형매3인은 널리 이름을 떨쳐 "당하삼걸"로 불렸다. 풍우란 선생의 네명의 자녀들도 각자 분야에서 활약하여 가학에 부끄럽지 않았다. 장녀 풍종련(馮鍾璉)은 서남연대 외문계를 졸업했고, 장남 풍종료(馮鍾遼)는 보일러전문가이다. 차녀 풍종박(馮宗璞)은 저명한 작가이고, 차남 풍종월(馮鍾越)은 우주전문가이다. 매부 육간여(陸侃如)는 북경대학 국문과를 졸업하고, 중국문학사를 깊이있게 연구했다. 처제 임균(任均), 동서 왕일달(王一達)은 경극의 명숙(名宿)이다. 질녀 풍종운(馮鍾芸)은 서남연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학교에 남아 교수가 된다. 그녀는 서남연대 최초의 여성교사이다. 나중에 북경대학 중문과 교수가 된다. 조카딸사위인 임계유(任繼愈)는 북경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중국철학사, 중국불학사를 연구하여 일가를 이룬다. 나중에 국가도서관 관장이 된다.

 

종백화(宗白華)

 

시인, 미학자인 종백화는 관적이 상숙(常熟)으로, 안경방씨(安慶方氏)저택에서 태어난다. 동성노홍방씨(桐城魯谼方氏)는 대대로 명문거족으로 누대에 걸쳐 관직에 올랐고, 풍아를 즐겼다. 외증조부 방종성(方宗誠)은 동성파의 후기대표인물이다. 문장과 이학으로 일대의 종사로 존경받는다. 일찌기 조강현령, 안휘학정을 지냈다. 외조부 방수이(方守彛)는 관직이 태상박사에 이르렀다. 학문이 깊고 저술을 많이 했다. 외숙조부 방수돈(方守敦)은 시를 잘 지었고, 서예에 뛰어났다. 표구(表舅) 방효악(方孝岳)은 음운학자이고, 표구 방효박(方孝博)은 물리학자이며, 표이(表姨) 방령유(方令孺)는 작가이고, 표제(表弟) 방위덕(方緯德)은 신월파 시인이다. 표제 방관덕(方綰德)은 희극 감독이며, 표제 방관(方管, 필명은 舒蕪)은 작가 겸 문학평론가이다. 표매(表妹) 방서(方瑞)는 조옹(曹禺)의 부인이다. 종선생의 부친 종가록(宗嘉祿)은 광서때 거인으로 나중에 일본에 유학하고, 중앙대학, 안휘대학에서 교수가 된다. 종선생은 천성이 총명하여, 외조부의 사랑을 받아 시부를 배운다. 8살이 되었을 때, 남경으로 돌아가 소학교를 다닌다. 동제대학을 졸업한 후, 프랑크푸르트대학에 유학하러 갈 때 외증조부는 "일방천지방관보(一方天地妨寬步), 만리파도장원근(萬里波濤壯遠勤)"이라는 시를 지어준다. 이를 보면 그에 대한 기대가 어떠했는지 드러난다.

 

장대년(張垈年)

 

철학자 장대년은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났다. 부친 장렴(張濂)은 청나라때 진사로 마지막 한림중 한명이다. 민국초기 국회의원에 당선된 적도 있고, 의학에 뛰어났다. 장씨일문의 삼걸이 있다. 큰형 장신부(張申府)는 철학자, 수학자로 일찌기 북경대학에서 공부했다. 처음에 철학을 했으나 나중에 수학으로 바꾸고 프랑스유학을 한다. 북경대학, 청화대학에서 논리와 루쏘철학을 가르쳤고, 중국공산당의 창시자중 한명이고, 중국루쏘연구의 일인자이다. 둘째형 장숭년(張崇年)은 물리학자로 북경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한 후, 학교에 남아 교수가 된다. 장대년은 어려서부터 부친과 형들의 가르침을 받아 공부에 뜻을 둔다. 특히 철학을 좋아했다. 북경사범대학 교육과를 졸업한 후, 청화대학 철학과의 조교가 된다. 27세에 <중국철학대강>을 저술하여 명성을 크게 떨친다. 큰형과 풍우란의 소개로 풍우란의 당매 풍양란(馮讓蘭)과 결혼한다. 풍우란은 말년에 이렇게 회고했다: "장선생이 나의 당매와 정혼했다. 학술적으로도 서로 절차탁마하는 우의가 혼인으로 이어지니 더욱 친밀해졌다." 

 

탕일개(湯一介)

 

철학과 교수 탕일개는 서향세가출신이다. 조부 탕림(湯霖)은 광서때 진사로 나중에 감숙평번지현, 위원지현이 된다. 부친 탕용동(湯用彤)은 청화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가서 공부한다. 진인각(陳寅恪), 오복(吳宓)과 더불어 '하버드삼걸'로 불린다. 중국서양철학에 모두 능통하고, 중국불교사, 위진현학과 인도철학에 대한 연구가 깊었다. 북경대학 철학과 교수, 부교장을 지낸다. 탕일개는 부친의 학문을 이어받아 중국철학연구에 전념한다. 특히 위진현학을 연구한다. 처인 악대운(樂黛雲)은 중문과 비교연구소 소장을 지내며, 중국비교문학연구를 시작하고 탁월한 업적을 세운다. 장인은 귀주대학 영문학과 교수이다. 당시 탕선생은 '중국문화서원'을 주재하면서 양수명(梁漱溟), 풍우란, 계선림등의 석학들을 지도교수로 초청하여 일년내내 각종 강습반, 연구반을 개최한다. 북경대학 교사를 빌려 강의했다. 나도 방청한 적이 있어서 직접 탕선생의 강의를 들을 수 있었고, 얻은 바가 많았다. 학문이 박대정심하고 인품도 훌륭하여 지금까지도 기억에 깊이 남아 있다.

 

홍겸(洪謙)

 

홍겸은 북경대학 외국철학연구소에서 재직했는데, 명가의 후예이다. 홍겸의 증외조부는 왕무음(王茂蔭)으로 도광때 진사로 호부원외랑을 지낸다. 청나라때 화폐이론가, 재정학자이고 <자본론>에 언급된 유일한 중국인이다. 

 

임화(任華)

 

임화의 부친 임가징(任可澄)은 광서때 거인으로 귀주성장, 북양정부 교육총장등의 관직을 지낸다. 처인 진겸(陳謙)은 부의의 스승인 진보침(陳寶琛)의 질손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