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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북대와 청화

내가 아는 북경대학 교수들의 집안내력(3): 기타학과

by 중은우시 2022. 4. 30.

글: 양문리(楊文利)

 

진대손(陳垈孫)

 

경제학원 교수 진대손은 복건 민후(閩侯) 사람이다. 나강진씨(螺江陳氏)는 명문거족이다. 과거에 급제한 사람도 계속 이어지고 관료가 끊임없이 배출되었다. 증조부 진승구(陳承裘)는 함풍때 진사로 아들 7명을 낳았다. 한명이 요절한 외에 나머지 6명은 모두 인재로 자란다. 장남 진보침(陳寶琛), 차남 진보진(陳寶瑨), 삼남 진보로(陳寶璐)는 전후로 진사가 된다. 사남 진보기(陳寶琦), 육남 진보선(陳寶瑄), 칠남 진보황(陳寶璜)은 모두 거인이 된다. 세칭 "부자4진사, 형제7과갑'이 된다. 집안의 전성기라 할 수 있다. 조부 진보로는 형부주사를 지냈고, 박학통경했다. 부친 진무예(陳懋豫)는 광서때 거인으로 경방효율학당을 졸업하고, 해군학교에서 재직했다. 진대손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였고, 6살때 사숙에 입학하여 서사를 배운다. 그리고 영문, 수학을 배우고 서학에 대한 조예가 깊었다. 경제학설사를 연구하는데 견실한 기초를 세운다. 필자가 대학을 다닐 때, 연남원(燕南園, 북경대학 캠퍼스내의 노교수들 주택이 있는 곳)에서 진선생이 산책하는 것을 보곤 했다. 깔끔한 중산복을 입고 훤칠하고 수척한 모습은 세가귀공자의 풍도였다.

 

왕철애(王鐵崖). 

 

진대손의 고향사람이자 제자인 법률학과 교수 왕철애도 시례지가(詩禮之家)에서 태어났다. 조부인 왕갱매(王羹梅)는 도광때의 거인으로 광동지부를 지낸다. 부친 왕수창(王壽昌)은 마미선정학당을 졸업한 후, 프랑스로 가서 법률을 공부하여, 중국과 프랑스의 문학에 정통했고, 시, 서, 화에 뛰어나 '시서화삼절'로 불리웠다. 경한철로 총번역, 복건성 교섭사 사장을 지낸다. 일찌기 임서(林紓)와 함께 <파리차화녀유사(巴黎茶花女遺事)>(한국에서 '차화녀'는 '춘희'로 번역됨)를 번역했다. 그가 구술로 말하면, 임서가 문언문으로 기록했다. 출판된 후에 인기리에 팔린다. 백부 왕복창(王福昌)은 마미학당을 졸업하고, 프랑스유학을 간다. 마미선정국에서 프랑스어번역을 맡았다. 왕철애는 어려서부터 사숙에서 배웠으며 사서오경을 익힌다. 교회학교에 들어가서 서양글과 서양학문도 배워 중국어와 영어에 모두 뛰어났다. 부친의 외교업무경력은 그로 하여금 국제법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청화연구원을 졸업한 후, 영국으로 유학을 가서 국제법을 공부한다. 여섯째형님 왕매(王邁), 셋째누나 왕진(王眞), 넷째누나 왕한(王閑)은 모두 가학을 이어받아 시문으로 이름을 떨친다. 조카 왕문흥(王文興)은 대만의 소설가로 유명하다.

 

비효통(費孝通)

 

사회학과 교수인 비효통은 오강(吳江)의 선비집안 출신이다. 외조부 양돈이(楊敦頤)는 도광때 거인으로 강소학정을 지낸다. 나중에 상무인서관 편집이 되고, <사해(辭海)>의 편찬업무에 참여한다. 사상이 개명하고 서양문화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부친인 비박안(費璞安)은 일본으로 유학하여 교육학을 배운다. 강소성 교육청시학이 되고 교육사업에 종사한다. 모친 양초란(楊初蘭)은 상해무본여학교를 졸업하고, 평생 유아교육에 투신한한다. 외삼촌 양좌도(楊左匋), 양석류(楊錫鏐)는 모두 미국유학을 했고, 한명은 동화전문가, 한명은 건축설계사가 된다. 외조부의 영향으로, 비씨형제 4명은 어려서부터 서양식교육을 받았다. 큰형 비진동(費振東)은 남양공학을 졸업하고, 인도네시아의 중국어신문사에서 주필을 맡는다. 누나 비달생(費達生)은 일본유학을 하여 잠사(蠶絲)전문가가 된다. 셋째형 비청(費靑)은 동오대학 법률학원을 졸업한 후, 베를린대학에서 법철학을 공부한다. 귀국후에는 서남연대에서 로마법을 가르친다. 한때 북경대학 법률학과 주임을 맡기도 했다. 넷째형 비곽(費霍)은 토목건축을 전공하여 상해시 공무국의 엔지니어가 된다. 비효통은 청화연구원을 졸업한 후, 런던대학에 유학하고, 인류학자 말리노프스키에게 배운다.

 

반내곡(潘乃谷)

 

사회학과 교수 반내곡은 비효통의 스승인 반광단(潘光旦)의 딸이다. 가학을 이어받았다. 조부인 반홍정(潘鴻鼎)은 광서때 진사로, 한림원편수를 지낸다. 부친 반광단은 청화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유학에서 돌아와 청화대학 및 서남연대의 사회학과에서 교수를 지낸다. 사회학, 우생학, 심리학, 민족학등 분야에 모두 깊은 조예를 보였다. "청화사철인(淸華四哲人)"중 한명으로 꼽힌다. 나머지 세 사람은 섭기손(葉企孫), 진인각(陳寅恪)과 매이기(梅貽琦)이다. 반광단은 교육학을 연구하여 <헉슬리자유교육론>을 번역하기도 했다. 책에서 "교육은 훈련이 아니다" "선전은 교육이 아니다" "말을 잘듣는 것이 좋은 아이가 아니다."는 등의 주장을 했다. 그는 4명의 자녀를 교육할 때 그 취지를 따랐고, 4자매는 자유롭게 성장하여 학문이 크게 발전한다. 반내곡의 큰언니 반내수(潘乃穟)는 북경대학 생물학과 교수이고, 둘째언니 반내목(潘乃穆)은 반내곡과 같이 북경대학 사회학과 교수였다. 셋째언니 반내화(潘乃和)는 소아과의사이다.

 

왕집사(王緝思)

 

내가 대학을 다닐 때, 왕집사는 국제정치학과 부교수였다. 그의 부친 왕력(王力)은 북경대학 중문과 교수였고, 언어학의 대가였다. 몇몇 형제자매들은 부친의 학문을 이어받아, 학계에서 성취를 이룬다. 큰형 왕집지(王緝志)는 북경대학 수학과를 졸업하고, 쓰통(四通)의 타자기발멸가이다. 큰누나 왕집혜(王緝惠)는 청화대학을 졸업하고, 인민교육출판사, 쓰통회사에서 재직했다. 둘째누나 왕집자(王緝慈)는 북경대학 지질지리학과를 졸업하고, 북경대학 도시및환경학원 교수를 지낸다. 동생 왕집헌(王緝憲)은 중국인민대학을 졸업하고, 터론토대학에서 지리학박사학위를 받아, 홍콩대학 지리학과 교수가 된다. 그에게는 동부이모의 형제인 진사(秦似)가 있는데, 원래 이름은 왕집화(王緝和)이다. 작가이며 언어학자이다. 또 다른 동부이모의 형제인 왕집평(王緝平)은 광서의과대학 교수이다.

 

 

허보록(許寶祿)

 

수학과 교수 허보록은 명문집안출신이다. 증외조부 유월(兪樾)은 도광때 진사로 한림원편수를 지냈고, 여러 학문에 능통했으며, 특히 경학에 뛰어났다. 조부 허우신(許佑身)은 동치때 거인으로 관직이 양주지부에 이른다. 부친 허인지(許引之)는 양절염운사, 경봉철로총판를 지낸다. 사(詞)를 잘 지었고, 곤곡(昆曲)을 잘했다. 큰형 허보구(許寶駒)는 북경대학 국문과를 졸업했으며 '민련(民聯)'의 창시자중 한명이다. 둘째형 허보종(許寶騤)은 연경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민혁(民革)'의 발기인중 한명이 된다. 일찍 민혁기관보 <단결보>의 사장 겸 총편집을 지낸다. 허보록은 청화대학을 졸업한 후, 영국으로 가서 공부해 런던대학의 철학박사가 된다. 형제3명은 모두 이름을 떨쳐 세칭 "허씨삼걸"이라 했다. 자형인 유평백(兪平伯)은 유월의 증손자이고, 북경대학 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박학다식으로 유명했다. 홍학에 특히 뛰어났다. 당질 고양(高陽)은 본명이 허안변(許晏駢)인데, 역사소설가로 대만의 문단에 유명하다.

 

정민덕(程民德)

 

수학과 교수 정민덕도 서향(書香)의 후손이다. 부친 정첨여(程瞻廬)는 소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강소성고등학당에서 교편을 잡고 한때 명성을 떨친 장회소설 작가이다. 그는 많은 책을 썼는데, 그중 <당축문주사걸전>, <소기국> <활두국> <건망국> <호도국>등의 작품이 소주상해에서 인기를 끈다. 주수견(周瘦鵑)은 항상 그를 "오늘날의 순우곤(淳于髡), 동방삭(東方朔)"이라고 불렀다. 

 

장공경(張恭慶)

 

정민덕의 제자이며, 수학과 교수인 장공경도 관료집안 출신이다. 장씨성은 풍윤(豊潤)의 명문거족으로 삼대에 걸쳐 관직에 올랐다. 고조부 장인당(張印塘)은 도광때 진사로 관직이 안휘관찰사에 이른다. 경사에 능통했다. 증조부 장패륜(張佩綸)은 동치때 진사로 청나라말기 청류파(淸流派)의 영수였다. 이홍장(李鴻章)의 사위였다. 조부 장지잠(張志潛)은 광서때 거인으로 관직이 내각중서에 이른다. 외조부 진보침(陳寶琛)은 부의의 스승으로 서화에 능했다. 부친 장자미(張子美)는 홍콩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중국,영국문학, 역사, 경제학에 조예가 깊었다. 서적을 많이 소장했고, 선본(善本)이 많았다. 당고모 장애령(張愛玲)은 저명한 작가이고, 사촌형 진대손은 북경대학 경제학과 교수이다. 장공경이 어렸을 때, 부친은 그에게 문학을 가르쳤는데, 장공경은 과학에 뜻을 둔다. 나중에 북경대학에서 수학,역학을 공부해 수학연구에 매진한다.

 

강백구(姜伯駒)

 

수학과 교수 강백구는 학문집안에서 태어났다. 이조부(姨祖父) 황경징(黃慶澄)은 광서때 거인으로 수학을 잘 알았으며 <산학보>를 창간한다. 이는 중국최초의 수학전문정기간행물이다. 부친 강립부(姜立夫)는 하버드대학 박사로 남개대학, 영남대학 수학과를 창설했고, 진성신(陳省身)이 그의 제자이다. 중국연구원 수학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큰외삼촌 호돈복(胡敦復)은 코넬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했고, 청화학당에서 초대 교무장을 지내며, 대동대학을 만들어 초대교장이 된다. 둘째외삼촌 호명복(胡明復)은 전후로 코넬대학과 하버드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하여 중국 최초의 현대수학박사가 된다. 귀국후 대동대학 수학과 교수가 된다. 셋째외삼촌 호강복(胡剛復)은 하버드대학 물리학과에 들어가 졸업후 귀국하여 교통대학, 남개대학등 여러 대학에서 교수가 된다. 강백구는 천성이 총명하고 공부를 좋아했다. 책을 읽느라 침식을 전폐하기도 했다. 수학, 물리, 화학, 생물분야의 책들을 모두 읽었다. 고등학교 졸업후 부친의 권유로 북경대학 수학역학과에 입학하여 수학에 평생의 뜻을 둔다. 이는 부친의 학문을 잇는 것이다.

 

전민협(錢民協)

 

화학과 교수 전민협은 호주전씨(湖州錢氏)의 후예이다. 오월전씨(吳越錢氏)의 한 갈래이다. 근대이래 명사를 많이 배출했고, 지금도 흥성하다. 증조부 전진상(錢振常)은 동치때 진사로, 예부주사를 지낸다. 증백조부 전진륜(錢振倫)은 도광때 진사로 한림원 편수를 지냈고, 관직이 국자감 사업에 이른다. 대학사 옹심존(翁心存)의 사위이고 옹동화(翁同龢)의 자형이다. 조부 전현동(錢玄同)은 신문화운동의 기수이다. 한때 북경대학 국문과 교수, 주임을 지낸다. 부친 전삼강(錢三强)은 핵물리학자로 양탄원훈(兩彈元勳, 양탄은 원자폭탄, 수소폭탄)이다. 청화대학을 졸업하고, 프랑스로 유학했으며, 퀴리부인의 딸에게서 배운다. 당백 전도손(錢稻孫), 전중련(錢仲聯)은 번역가, 고전문학전문가이다. 외조부 하징(何澄)은 과학자집안으로 양도하씨(兩渡何氏)의 후예이다. 일본에 유학했고, 동맹회 회원이며, 소장가이며 감상가이다. 모친 하택혜(何澤慧)는 핵물리학자로 청화대학을 졸업하고, 독일에 유학했다. '중국의 퀴리부인'이라는 말을 들었다. 큰이모 하이정(何怡貞)은 물리학자이고, 작은이모 하택영(何澤瑛)은 식물학자이다. 자매3명이 모두 명성을 얻어 "하씨3자매"로 불렸다. 큰외삼촌 하택명(何澤明), 둘째외삼촌 하택용(何澤涌)은 모두 일본에 유학하여, 금속학, 세포학을 전공한 전문가이다. 외증조부 즉 모친의 외조부인 왕송울(王松蔚)은 관료집안으로 막리왕씨(莫厘王氏)의 후손이다. 광서때 진사로 '소주삼재자(蘇州三才子)'중 한명이다. 목록판본지학에 뛰어났고, 금석고증에 정통했다. 외증조모 사장달(謝長達)은 진화여학교를 만들어, 시대를 앞서갔다. 외조모 왕계산(王季山)은 물리학 번역가이고, 구외조부 왕계열(王季烈), 왕계동(王季同)도 물리학번역가, 수학가이다. 표구(表舅) 왕수경(王守竟), 왕수무(王守武), 왕수각(王守覺)은 물리학자, 미전자학자, 반도체전자학자이다. 표이(表姨) 왕숙정(王淑貞), 왕명정(王明貞)은 산부인과학자, 물리학자이다. 전민협은 가풍을 지켜, 학문에 뜻을 두고, 북경대학 화학과를 졸업한 후 유학을 떠난다. 처음에 독일로 갔다가, 다시 프랑스로 가고, 귀국후에는 모교에서 교수를 지낸다. 동생 전사진(錢思進)은 청화대학 화공과를 졸업하고, 하버드에 유학한다. 유럽핵연구센터에서 20여년간 일하다가 북경대 물리학원의 초청을 받아 귀국하여 교편을 잡는다.

 

오려명(吳茘明)

 

지리학과 교수인 오려명은 명문규수이다. 조부 오정신(吳鼎新)은 경사대학당 사범관을 졸업하고, 광서교육청장, 광주국민대학교장을 지내며 평생 교육사업에 종사한다. 외조부 양계초(梁啓超)는 광서때 거인으로 무술변법의 지도자중 한명이며 일대의 거유이다. 부친 오로강(吳魯强)은 화학자로 청화대학을 졸업하고,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는다. 나이 26살에 북경대학 화학과 교수가 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모친 양사장(梁思莊)은 도서관학자이다. 콜롬비아대학을 졸업하고, 북경대학 도서관부관장을 지낸다. 큰외삼촌 양사성(梁思成), 둘째외삼촌 양사영(梁思永), 다섯째외삼촌 양사례(梁思禮)는 건축학자, 고고학자, 미사일통제전문가이다. 큰이모 양사순(梁思順), 둘째이모 양사의(梁思懿), 셋째이모 양사녕(梁思寧)은 모두 명문대학출신이다. 큰외숙모 임휘인(林徽因)은 건축학자이며 작가이다.

 

장종병(張宗炳)

 

생물학과 교수 장종병은 철학자, 정치활동가인 장동손(張東蓀)의 아들이다. 장씨의 형제자매는 4명인데, 장종병이 장남이다. 연경대학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코넬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곤충독리학자이다. 둘째동생 장종수(張宗燧)는 캠브리지 박사로 북경대학 물리학과에서 교수를 지낸 바 있다. 물리학자이며 중국과학원 원사이다. 여동생 장종엽(張宗燁)은 북경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중국과학원 고능연구소 연구원을 지낸 핵이론물리학자이며, 중국과학원 원사이다. 셋째동생 장종경(張宗熲)은 처음에 서남연대 사회학과에서 공부하다가 나중에 연경대학 연구원으로 옮겨, 비효통의 아끼는 제자가 된다. 문혁때 부친에 연루되어 처와 함께 자살한다. 1952년 대학통폐합으로 원래 연경대학 철학과주임이던 장동손은 북경대학 철학과로 옮긴다. 부자, 부녀 4명이 전후로 북경대학과 인연을 맺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