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지방/홍콩; 마카오

홍콩 "토공(土共)"의 "탈민(脫敏)"문제

중은우시 2023. 4. 13. 14:32

글: 고림풍(古林風)

 

2021년, 베이징의 관영매체는 중국공산당기구의 홍콩에서의 "탈민"에 관한 글을 실은 바 있다. "탈민"이라는 것은 홍콩의 중국공산당 당조직이 신분을 공개하는 문제를 가리킨다.

 

홍콩의 중국공산당 조직은 창당당시부터 존재했다. 진독수(陳獨秀)가 1920년 홍콩으로 가서, 당시 마르크스주의에 흥미를 가진 청년들을 만난다. 1921년 창당이후, 공산당에서는 홍콩으로 사람을 파견하여 활동하기 시작한다. 1924년에는 홍콩에 당지부(黨支部)가 결성된다. 그후 이름을 여러 차례 바꾸었지만, 홍콩마카오의 공산당조직은 지금까지도 계속하여 존속해오고 있다. 토공(土共)은 홍콩에 시위(市委)를 성립한 후, 광주시당위와 광동성당위도 일찌기 홍콩으로 옮겨온 적도 있다. 홍콩인들은 일찌감치 공산당조직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공개하지 않은 이유는, 49년이전에는 홍콩당국과 국민당정부간의 외교관계때문이었다. 국민당은 공산당을 합법적인 존재로 인정하지 않았다. 1949년에 이르러, 중국공산당이 대륙을 해방시키고 정권을 건립한다. 홍콩의 기구는 홍콩영국정부와의 약정으로 중국공산당이라는 간판을 공개적으로 내걸지 못하게 된다. 그리하여, 홍콩의 공산당기구는 '신화사홍콩분사(新華社香港分社)'로 개칭된다. 내부적으로는 '홍콩마카오공위(港澳工委)'라고 불렀다.

 

최근 중국공산당은 중앙홍콩마카오공작판공실(中央港澳工作辦公室)이 이전의 홍콩마카오판공실(港澳辦公室)을 대체한다고 선언했다. 원래의 중앙홍콩마카오영도소조는 실권을 장악한 당중앙행정기구가 된다. 국무원 홍콩마카오판공실은 실질적으로 철폐되었으므로, 홍콩의 중련판(中聯辦)은 당중앙의 공작판공실의 직접 산하기구가 된다. 아마도 중련판이라는 이름도 새로운 상황에 맞추어 변경되어야 할 것같다.

 

97년 홍콩주권이전 전에, 홍콩마카오공위를 공개할 것인지의 문제가 하나의 난제였다. 홍콩사람들은 모두 신화사홍콩분사의 배후에 홍콩마카오공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영국통치기간동안 당을 비공개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했다. 그런데, 주권회복을 대대적으로 선전한 이후에 이미 회귀된 영토에서도 지하활동을 20여년이나 계속해왔다. 국가의 집권당의 파견기구라는 성격으로 볼 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 문제는 일찌기 조자양(趙紫陽)에게 보고된 바 있고, 공개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검토한 바있다. 그러나 그 후에 흐지부지되고 만다. 97년이후, 신화사홍콩분사는 중련판으로 간판을 바꾸어 내건다. 당공위는 여전히 지하당이었다. 지금은 회귀된지 28년이나 되었고 매년 7월 1일이 되면 회귀일이자 건당일이어서 성대하게 경축행사를 연다. 그러나 당위원회는 여전히 지하당상태여서 공개되지 못하고 있다. 이건 비정상적인 상태이다.

 

그러나, '탈민'문제를 불러일으킨 것은 홍콩회귀 25년의 불안정한 역사때문이다. 먼저 홍콩인들이 국가안보법을 반대하는 50만명이 참가하는 시위를 벌였고, 다시 홍콩의 교통요지를 점거하고 거의 반년간 시위활동을 지속했다. 그러나가 반송중으로 장시간 폭란을 겪었다. 베이징의 홍콩마카오공작체계는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된다. 중국인들이 분노했을 뿐아니라, 전세계가 중국당국을 비난하게 된다. 더더욱 대만의 일국양제에 대한 입장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어, 국가통일사업에도 큰 타격을 입었다. 사정이 이렇게 엉망이 되어버리고나니, 바뀌지 않으면 안되게 된 것이다.

 

중련판과 홍콩마카오판공실, 하나는 성급당위(省級黨委)이고, 하나는 장관급 행정단위이다. 공작체계가 지금까지 계속 삐걱거렸고, 서로간에 갈등이 많았다. 97년에 두 부문의 1인자가 동시에 이직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번 홍콩대란이후, 두 부문의 1인자가 다시 한번 모두 자리를 떠났다. 인원은 철저히 개조되어야 했고, 97년 회귀의 큰 기쁨은 그 빛을 잃은지 이미 오래되었다.

 

현재, 당중앙이 직접 나서서 홍콩,마카오를 다스리겠다고 나섰다. 홍콩의 산하기구는 다시 연락판공실이 되니, 체통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그래서 중공홍콩시위를 공개하는 문제가 의사일정에 올라가게 된 것이다. 단지 반공의 습성을 지닌 홍콩인들과 대만인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지도 모르고, 세계각지의 반향이 어떻게 될지도 알 수가 없다. 그리하여 이는 다시 중남해를 괴롭히는 골치아픈 일이 되어 버렸다.

 

97년회귀이전을 생각해보면, 한 무리의 토공(홍콩현지 공산당원)들은 일국양제를 찬성하지 않았다. 그들은 마땅히 상해를 취하던 전법을 써서 병력을 파병하여 일거에 홍콩을 해방시켜고 사회주의를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토공당위가 곧 직접 모습을 드러내어, 자본주의홍콩의 개조를 지휘할 것이다. 앞으로는 레닌주의의 길을 다시 걸을 것같다. 레닌은 세계의 노동자계급정당이 노동자농민을 이끌어야 한다고 보았다. 낡은 국가기구를 타파해야, 비로소 폐허위에서 노동자등의 신성한 국가가 건립될 수 있다고 보았다. 홍콩은 바로 구정권이고, 구제도는 타파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25년간 골치아팠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금까지 명확하게 말로 표현하지 않았던 홍콩의 심층적인 모순인 것이다.